RA-1570 사용기 “그래도 로텔은 로텔이다.”
모 사이트에서 가끔 장비 대여 이벤트(?)를 엽니다. 돈도, 시간도 모자란 입장에서 여러 특성이 다른 장비를 내가 익숙한 환경에 들여와서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저런 트윅(극성 맞추기라던가 접지라던가 케이블 교체로 인한 음의 변화라던가 등등 말이죠)을 해가며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저같은 입문자 입장에서는 분명 기회임에 틀림없죠. 바꿈질하기보다 있는 장비로 끝장보는걸 더 즐기는 천성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하여간 그래서 참가 신청을 했고 운 좋게 대상자로 지정되어 1주일여 장비 운용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로텔 앰프, 특히 인티는 이전 버전에 대한 경험이, 솔직히 말하자면 안좋은 경험이 있습니다. 현재 사용중인 ELAC FS247 BE에 물렸을 때의 그 네가지가 안드로메다 밖으로 도망간 듯한 사운드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똘끼로 똘똘 뭉친 생 양아치가 스피커 안에서 난동을 부리는 듯한 그 사운드,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죠. 아마 이번 새 인티가 음결이 이전과 같았다면 신청도 안 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국내외 리뷰들을 찾아보니, 제가 많이 싫어했던 특성이 꽤 많이 제가 좋아하는 쪽으로 바뀐 것 같아 신청을 했죠. 원래 심오디오 계열(?)의 소리에 선입견이 있었는데 최근 심오디오 기기들을 몇개 들어본 후 좋은 인상을 많이 갖게 된 것도 신청한 이유였습니다.
<첫인상>
장비를 받은 첫인상은 좋았습니다. 주력으로 쓰는 온쿄9070 대비 크기는 약간 작지만 옹골차다는 인상을 받았죠. 최근 트렌드에 맞게 DAC가 내장되어 있는데 디지털 입력부가 온쿄 대비 많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소스기 바꿀 때마다 광케이블을 교체하는 것도 은근히 일이거든요. 디자인은 호불호가 있겠지만 적어도 실제 운용하기에는 매우 편리한 디자인입니다. 다만 싼티나는 리모콘은 좀 안습입니다.
<매칭 1 - ELAC FS247BE>
온쿄 앰프를 들어내고 로텔을 연결한 뒤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당황했습니다. 물안개같이 촉촉하고 아름다왔던 고역은 온데간데없고 그레인이 낍니다. 음의 중심점이 저역에서 고역으로 이동한 느낌입니다. 음악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배음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저역은 온쿄 대비 양이 적고 스피드가 빨라졌습니다. 전체적으로 앙칼진 느낌입니다. 오래 듣기 힘겨워 채 1시간을 못 듣고 앰프를 다시 분리했습니다.
<매칭 2 – 힘사운드 북셀프>
다시 앰프를 들어내 서재로 갖고 옵니다. 기존의 진공관 앰프를 들어내고 로텔을 연결한 후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호오, 아주 괜찮은 소리가 납니다. 역시 배음은 많이 줄었지만 상대적으로 깔끔 단정한 소리라고 느껴집니다. 빠르게 치고 빠지는 저역 덕분에 주로 듣던 재즈가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아 이게 매칭이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1주일간 듣고 난 후의 느낌/총평>
로텔은 로텔입니다. 로텔의 음결이 바뀌어봤자 오디오 아날로그나 온쿄가 될 수는 없겠죠. 구입을 고려하시는 분은 그 점을 명확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기존의 로텔 사운드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 앰프 역시 좋아하실 것 같고 로텔 사운드를 싫어하시던 분이라면 이 앰프 역시 좋아하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취향을 많이 탈, 개성이 넘치는 음결입니다.
온쿄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명확해집니다. 고역은 온쿄가 더 예쁜 대신 로텔이 더 직선적이고 그레인이 느껴집니다. 양도 더 많습니다. 중역은 온쿄가 더 풍성해서 훨씬 음악적입니다. 저역의 경우 온쿄가 풍성한 반면 로텔은 양이 적고 대신 스피디하게 치고 빠지는 맛이 납니다. 음의 중심은 로텔이 온쿄보다 고역에 치우친 느낌이고 온쿄의 풍부한 배음을 로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온쿄는 감정을 간질이는 부드러운 여성적 사운드, 로텔은 '나 싸나이야!'라고 외치는 남성적 사운드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저러 짧은 기간이지만 운용해 본 결과, 클래식, 특히 소편성이나 여성보컬류의 재생은 절망적일 정도로 별로였고 반면에 재즈와는 궁합이 아주 좋았습니다. 팝과도 나름 괜찮았는데 특히 스팅의 드라이한, 매력적인 보컬이 이 앰프 특유의 고역의 까실함과 맞물려 아주 좋게 들었습니다. 아마 스팅의 곡들 중 재즈를 기반으로 한 곡들이 많다는 것도 한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앰프를 제가 다른 스피커들과 매칭시켜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사견임을 전제로 짐작해 보건데 모니터오디오나 포컬같은 스피커와는 좀 많이 안 어울릴 듯 하고 PMC같은 스피커 계통과 매칭이 좋을 것 같습니다. 괘짝류(?)의 스피커하고도 잘 어울릴 것 같네요. 파워케이블의 경우 제가 적용시켜본 3~4가지 저렴하지만 성능 좋은 케이블 중에 뻥파 오리지널(벨덴 19364기반)과 궁합이 제일 좋았습니다. 스피커선은 은선종류보다 질 좋은 동선이 좋았고 접지는 필수입니다.
<맺음말>
제가 좋아한달지, 목표로 한달지, 하여간 그런 사운드 특성을 굳이 기기로 말해보자면 소스기는 노스스타 DAC, 인티는 온쿄, 분리형은 모 클럽의 공제 파워앰프 클레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와싸다에 가끔이라도 들르시는 분들은 제가 어떤 사운드를 좋아하는지 짐작하실 수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제 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바탕으로 사용기를 썼음을 유념해 주셨으면 하고, RA-1570은 구동력 측면이나 사용상의 여러 편의성 측면에서 온쿄 대비 강점을 갖고 있다고 보여지니 배음이나 중저역 등 여러 측면에서 풍부하기보다 간결한, 직진성이 강한 소리를 좋아하는 분은 시간 내서 청음 한번 해 보셔도 좋을 듯 싶습니다. 단 앞에도 적었지만 자기 색이 분명해서 취향을 탈 앰프임에 분명하니 구입을 고려하시는 분들은 전 꼭 청음 먼저 하시라고 재삼 강조해 봅니다.
<추가>
며칠전 우연히 해당 앰프에 괘짝을 물려서 재즈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재즈를 괘짝에 물려서 주로 들으시는 분들은 이 앰프 꼭 한번 들어보시라고 강하게 권유드리고 싶네요. 재즈 기가막히게 잘 울려줍니다. 소위 배경이 깔끔한 하이엔드 하이파이는 아니지만 정말 재즈바에 온것 같은 그런 라이브한 분위기를 잘 살려주네요. 재즈 매니아분들에게 강추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