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전 벼르고 벼르던 NHT 클래식 2에서 3으로의 업그레이드를 감행했습니다. 직장이 강남인지라 오디오 매장들이 근처에 많이 위치하고 있어 신품 구입 시에는 항상 매장을 방문해서 오프라인으로 구입하곤 했는데요, 이번 역시 직접 방문해서 청음 후 구입을 했고 어차피 구매를 결정하고 갔던 터라 간 김에 양해를 구하고 NHT 3와 그 매장에 있는 앰프들 다수를 매칭해서 들어보았습니다.
참고로 제 기존 시스템은 프라이메어 i21 인티앰프와 린데만 XMOS DAC + 바쿤 배터리, 그리고 NHT 클래식 2 였습니다. 이 중 신품으로 구입한 건 클래식 2 뿐인데요, 아무래도 스피커가 음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다보니 직접 청음 후 구입하고 싶어서 좀 규모가 있다고 하는 매장들을 들락날락 거리며 제 예산 안에서 선택 가능한 스피커들을 물색하다가 마음에 들어 구매했던 스피커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NHT 스피커들의 매력은 그 가격대 스피커들 중 그레이드가 가장 높은 편이고 흠잡을만한 단점도 적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밸런스 좋고, 음이 높거나 가볍지 않고, 정보량과 밀도감은 많은 편이고, 소리가 차갑거나 메마르지 않고(오히려 약간의 온기감과 윤기감이 돌고), 무엇보다 제가 재즈, 팝, 락, 힙합, 대중가요 등 클래식 빼고는 다 듣는 엄청난 잡식성인데 음악 장르를 가리지 않는 올라운더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반면 단점으로는 밀폐형이라 아무래도 앰프밥을 좀 먹는다는 것, 소리가 상쾌하게 확산되는 타입은 아닌 것, 그리고 사람을 확 잡아끄는 착색이 없는 점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이것도 사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고 이 단점들이 해결되면 저 장점들이 나타나기 어려웠을 것 같지만..)
사실 클래식 2에서 클래식 3로 업그레이드하게 된 이유는 NHT 소리가 마음에 들지만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제 방이 원룸이라 5~6평 정도 되는데 클래식 2로는 약간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클래식 3로 바꾸면 스케일이 커져서 공간을 더 잘 매워주고 대역도 더 넓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죠. 실제로 업그레이드를 해보니 스피커 사이즈가 커져서인지 확실히 스케일도 커지고 대역도 더 넓어졌는데, 예상치 못하게 소리가 한결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나오더군요. 조여진 정도가 조금 풀어졌다고 할까요? 클래식 2의 조여진 정도가 6이면 클래식 3는 4정도인 것 같습니다.(5가 중간) 사람 취향에 따라 일장일단이 있겠죠.
그럼 클래식 3와 매칭했던 앰프들의 청음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 NHT 클래식 3 + 심오디오 250i
밀도감이 꽉 찬 음이 탄탄하고 치밀하게 터져 나오는 느낌입니다. 음이 잘 이탈되고 굉장히 다이내믹 하지만 날아가 버리지 않고 윤곽감이 명확히 잡힌 맥이 뚜렷한 에너지 넘치는 소리더군요. 확실히 북미 제품들은 지네들끼리 엮어줬을 때 나오는 시너지 효과가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둘 다 소리가 메마르지 않아서 이질감은 들지 않고 구동은 굉장히 잘 되는 듯합니다. 심오디오가 조여진 성향이라 개인적으로는 클래식 2보다는 클래식 3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만, 탄탄한 소리 좋아하는 분들은 클래식 2와의 조합을 더 좋아하실 것도 같네요.
* NHT 클래식 3 + 아캄 A19
구동력이 부족한 건지 원래 아캄 성향이 그런 건지 밀어주는 힘과 박력이 많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밀도감과 정보량이 약간 빠지고 음 두께도 약간 얇아지고 중심도 약간 높아지는 게 전반적으로 날렵해집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답답하거나 밸런스가 안 맞지는 않더라고요. 가격을 고려했을 때 앰프 자체 수준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선명하고 단정한 앰프 성향 덕분인 것 같습니다.
매칭은 NHT가 밀도감이 꽤 되고, 음의 중심도 약간 낮고, 특히 클래식 3는 2와 비교 시 한결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주기 때문에 아캄 A19와 매칭시키면 산뜻하고 무난한 그런 조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의외로 괜찮더군요. (A28을 물려봤어야 했는데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 NHT 클래식 3 + 로텔 RA-12
더 풀어지고 소프트하고 도톰하게 느껴집니다. 밀어주는 힘은 아캄 A19나 로텔 RA-12나 비슷한 것 같은데, 그래도 아캄 A19는 선명하고 날렵한 편이라 별로 답답하게 여겨지지 않았다면 로텔 RA-12는 앰프도 선명하기 보다는 두툼하고 밀도감 있고 그리 조여지지 않은 타입이라 이 조합은 약간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대신 음 중심은 더 잘 맞고 배음도 조금 더 살아나는 게 훨씬 편안하게 들리긴 하더군요.
* NHT 클래식 3 + 네임 네이트 5i-2
이래서 직접 청음을 해야 하는 건가 봅니다.
네임은 소리가 대체적으로 약간 거칠고 건조합니다. 대신 모범적인 밸런스와 음의 높이, 개성 있는 타임 앤 페이스 그리고 라이브한 음색을 갖고 있죠. 그런데 네임의 단점을 잘 보완하면서 장점은 그대로 잘 살려주는 스피커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음색 성향이 좀 특이하니까요.
그런데 클래식 3는 제가 네임 앰프에 물려본 스피커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좋은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일단 NHT 스피커들이 밀도감이 꽤 되고 윤기감을 살짝 머금고 있어 소리가 듬성듬성하지도 않고 거칠거나 메마르다는 생각도 별로 안 듭니다. 그리고 윤곽감이 자연스럽게 볼륨감 있는 편이라 타임 앤 페이스를 잘 반영해주고, 마지막으로 음색에 별 착색이 없어 라이브한 음색을 잘 살려주더군요.
유일한 단점이라면 네임의 고역이 약간 롤오프되어 있는 면이 있어 약간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정도? 아무튼 클래식 2던 3던 추천 매칭 삼을만한 조합입니다.
* NHT 클래식 3 + 프라이메어 i22
밀도감과 정보량이 약간 빠지고 음 두께도 얇아지고 중심도 약간 높아져서 전반적으로 살을 뺀 느낌입니다. 아캄과 차이가 있다면 아캄은 기름기를 거의 다 뺀 소리였는데, 프라이메어는 다 빼지는 않고 소량을 남겨둔 채 거기에 은은한 향신료를 추가한 듯한 소리입니다. 굉장히 고급스러운 소리인데 클래식 3에 부족한 윤기감과 색채감을 세련되게 채워주고 더 고가의 스피커들에서나 나올 수 있는 오묘한 표현력을 만들어줍니다. 아캄과의 매칭과 마찬가지로 어차피 NHT 스피커들에 이미 밀도감과 자연스러운 윤곽감이 있기 때문에 밸런스적인 측면에서는 어찌보면 가장 이상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박력 있거나 농밀하거나 선명하거나 하진 않지만 자연스러운 음의 전개와 고급스럽고 세련된 음색, 그리고 세세한 표현력으로 클래식 2보다는 3에 훨씬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이 조합도 강추입니다.
* NHT 클래식 3 + 앤썸 225
일단 앰프 칭찬을 하자면, 급수가 다릅니다. 스테이징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발생하더군요. 좌우앞뒤가 넓어지고 레이어감이 뛰어나집니다. 간단히 말해 무대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다고 했을 때, 다른 앰프들보다 더 멀리서 보지만 엄청 좋은 안경을 써서 각 악기의 정위가 더 명확히 보인다고 할까요? 구동력도 굉장히 좋고 정보량도 많고 밸런스도 좋고 음의 중심도 잘 잡혀있고 공간감도 뛰어나고 다이내믹 레인지도 훌륭합니다. 이 정도면 엄연히 중급기 급수네요.
성향은 캐나다 브랜드라서 그런지 심오디오 250i와 비슷하게 탄탄하지만 스피드가 그만큼 엄청 빠른 편은 아니고(보통 정도) 음 중심이 조금 더 낮으며 급수 차이 때문인지 조금 더 묵직합니다. 문제는 음색이 심오디오 250i가 약간 윤기감 있고 매끈해서 이질감이 없었다면 앤썸 225는 별 착색 없이 약간 메마르고 퓨어한 편이라서 조합이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보통 수준입니다. 하지만 앰프 급수는 가격 생각하면 감사하네요.
* NHT 클래식 3 + 온쿄 A-9000R
온쿄 A-9000R도 급수가 꽤 높습니다. 구동력은 앤썸 225와 비슷한 듯 한데 앤썸 225가 더 직진성 있고 온쿄 A-9000R은 얌전한 편입니다. 소리결이 그렇게 세세하거나 섬세한 편은 아니지만 풍부한 저역대와 도톰한 중역대, 산뜻한 고역대를 가졌고 소리를 잘 가다듬어 예쁩니다. 수수하고 청순한 생얼미인인데 자세히 봤더니 ‘생얼메이크업’ 이었다는 느낌이랄까? NHT 클래식 3와의 조합은 그냥 그렇습니다. 2도 그럴 것 같네요.
이 정도입니다. 메모한 게 아까워서 글을 쓰다 보니 엄청 길어지긴 했는데 막상 다 쓰고 나니 허접하네요.
클래식 3를 들으며 든 생각은 “오히려 클래식 2보다 구동이 쉬운 것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생각만큼 파워헝그리한 넘은 아니더군요. 성향도 클래식 2보다 약간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매칭하기에도 더 용이한 것 같고요. 사람에 따라 더 윤곽감 있고 탄탄한 걸 좋아하는 이라면 클래식 2에, 더 넓고 자연스럽게 이탈되는 걸 원하는 이라면 클래식 3에 마음이 갈 것 같습니다.
스피커 하나 정해서 여러 앰프들 물려보는 게 호기심도 충족시키고 재미도 있어 좋긴 한데, 앰프 욕심이 잔뜩 생겨서 엄한 생각하게 되는 건 피해갈 수 없는 부작용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멀쩡히 잘 사용하던 프라이메어 i21과 린데만 DAC를 처분하고 예산을 더해서 네임 유니티를 한 대 들여볼까 고민 중입니다. 그럼 스압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