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영국 스피커 회사 셀레스천은, 1982년 새로운 모델의 스피커를 개발하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책상 위에 놓을 조그마한 스피커로 즐기는 거대한 스케일의 울림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이전까지의 사람들은 꿈꾸기 어려웠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서곡(Overture)은 바로 SL6였습니다. 셀레스천은 SL6이 후에 SL600이라는 모델을 먼저 발표하였는데, SL600은 SL6계열과는 다른 스피커였습니다. SL600과 SL6계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스피커 통(인클로져)의 재질이었습니다. SL600의 재질은 에얼로람(Aerolam)이라 하는 금속물질로 항공산업에 쓰였던 것인데, 이는 상당히 실험적이고 획기적인 시도였습니다.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이 후 SL600를 바탕으로 SL6000, 그리고 그 유명한 SL700을 발표하게 되고, SL700에서 셀레스천은 그 인기의 절정을 구가하게 됩니다. SL6-SL6s-SL6si 계열과, 이제는 전설의 명기로 기억되는 SL700과는 달리, SL600은 그 두 모델 사이에서 자못 사람들의 관심을 덜 받는 느낌입니다. 저는 이 번 글에서, 바로 이 비운(?)의 '명기', SL600에서 대하여 써보고자 합니다.
먼저 제가 사용한 오디오 시스템을 먼저 설명드리겠습니다.
프리엠프 : CYRUS aCA 7.5 pre amplifier
파워엠프 : CYRUS Smartpower amplifier (모노모노)
CD player : CYRUS CD 6SE
제가 사용하는 사이러스 엠프 조합은, 현의 섬유질이 느껴질정도로 그 사운드가 명확하며, 다양하고 풍부한 표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하지만, 울림의 따스함이 덜하여 사뭇 '건조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건조한' 느낌은, 사람들이 속칭 말하는 '공간감'(저는 이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모호함에 불안함을 느낍니다.) 을 까먹게 됩니다. 특히 이런 느낌은, 베를리오즈의 음악에서 각종 악기들이 포효를 하면서 나타나는 울림의 향연을 듣고 있으면, 깨닫게 됩니다. 이런 문제점이 사이러스의 특징인지, 아니면 나의 조합에서 나타나는 단점인지는 모르겠으나, 글을 읽으시면서 참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짧게 언급하여 보았습니다.
다음은, 이번 사용기에서 감상하였던 음반입니다.
(곡 이름/연주자 이름/음반 레이블)
1. 모차르트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게오르그 솔티 경 (SIr Gerog Solti)/Decca
2.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4번/까페 짐머만(Caffe Zimmermann)/Alpha
3. 바흐 피아노 협주곡 1번/마틴 슈타트펠트(Martin Stadtfeld)/Sony classical
(또 다시 개인적인 기호에 치우친 음반편성이 되어버렸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지만 한정된 지면과 시간적 제약으로 다 담아내지 못하여 안타깝습니다. 그리하여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음반만 설명드리고자 하니 양해부탁드립니다.)
나는 왜 피아노를 선택하였나, 프레디 켐프(Freddy Kempf)
영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프레디 켐프.(두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아직 30대 중반) 어느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제작진과 인터뷰를 진행하던 그는, '다른 여러 악기 중에 왜 피아노를 선택하였나' 라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피아노는 저에게 좀 더 자연스러웠던 것(natural) 같습니다."
대단히 치밀하고, 때에 따라서는 계획적이기도 한 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정작 자신의 악기를 선택할 때는 직감적으로 선택하였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였지만, 새삼 사람들은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우리가 음악감상에 있어서, 각기 선호하는 장르가 다른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클래식을 자주듣고, 어떤 재즈나 락에 끌리는 것처럼 말이죠.
한 편, 저는 이번 셀레스천 시리즈(?)를 작성하면서, 다른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감상하는 스피커에 따라서도 듣는 음악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같은 클래식음악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저는 중음과 저음이 풍부하였던 SL6s에서는 첼로 협주곡을, 셀레스천 특유의 음색이 매력적이었던 SL6si는 챔버뮤직을 주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앞서 두 모델, SL6s와 SL6si보다 훨씬 더 강하게 SL600은 그 특유의 개성이 있었습니다. SL600의 개성은... 중음과 저음이 강조된 것은 여느 셀레스천 메이커와 동일 하였지만, SL600은 중음이 조금 더 강조되면서, 소리의 개방감이 뛰어났습니다. 이전에 통안에 갇혀있는 소리가, 금속재질의 인클로저를 만나 한꺼번에 밖으로 쏟아져 나오듯, 그렇게 음악이 '시원하게'들렸습니다. 강조된 중음은 사람의 목소리를 호소력있게 표현해 주었고, 오케스트라의 반주역시 맛깔스럽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SL600을 들으면서 줄곧 오페라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방으로 뻗는 음표들의 분수, SL600
- 매혹적인 욕망과 이성사이의 인간의 영원한 모순, 오페라 코지 판 투테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 모차르트가 한 달도 안 걸려 작곡한 이 명작은, 그의 다른 오페라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그리고 마술피리에 비하여 비교적 덜 알려져 있고, 그 평가도 상당히 낮게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오페라의 핵심 주제가 되는 욕망과 이성사이의 인간의 모순된 감정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매력적이어서, 이제는 많은 인기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젊은 두 커플의 사랑을 시험해보려는 짖궂은 늙은 철학자의 간교로 시작되는 오페라는 줄곧 사랑과 배반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합니다. 사랑과 배반이라는 모순성이 오페라 전반에 걸쳐 계속되고 있으며, 모차르트는 이러한 상반된 주제를 정말이지 지극히 아름다고 조화롭게 음악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언뜻 듣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조화로운 음악 이면에는 사랑의 배반이라는 잔혹성이 감춰져 있고, 육체적 욕망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섬뜩할 정도로 눈부시게 표현되고 있어서, 도무지 믿기지가 않을 정도 입니다. 기악부분의 구성도 매우 탄탄하여, 달콤하고 욕망적인 젊은 남녀의 아리아를 맛깔스럽게 받춰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멋진 오페라, 코지 판 투테는, 내가 SL600로 끊임없이 들었던 작품입니다. SL600을 처음듣는다면, 그 시원스러운 개방감에 놀랄겁니다. 이전의 모델인 SL6s와 SL6si와 비교를 하면 더욱 확실해지는데, 이전의 두 모델은 인클로져의 크기 때문인지, 뭔가 소리가 갇혀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SL600을 듣는 순간, 그 소리들에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 느낌입니다. 소리가 스피커 앞면의 우펴와 트위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피커 사방으로 음들이 뻗어나가는 느낌이라고 하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소리의 개방감이 변화된 인클로져, 금속의 인클로져 덕택일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 시원한 개방감이 오페라 감상에 꼭 필요한데, 오페라는 실제로 오페라 가수가 무대롤 돌아다니면서 부르는, 공연음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강조된 중음은 앞서의 시원한 개방감과 같이 작용하여 사람의 음성에 호소력을 더합니다. 이와함께, 강조된 중음의 뛰어난 표현력이, 오케스트라의 반주도 도드라지게 표현하고 있어서, 오페라의 듣는 재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중음 묘사력, 비올라의 발견
거듭강조하지만, SL600의 중음 묘사력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단순히 중음이 크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중음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음은 표준 4성부 현악기에서, 바이올린보다 한 단계 낮은 성부를 맡고 있는 비올라 성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비올라의 발견! 이것이 SL600의 핵심 개성이라고 해도 과언이아닙니다. 이런 개성은 어느 음악을 들어도 다 느낄 수 있지만, 특히 악기수가 적어 각각의 악기의 음색에 집중하기 쉬운 소규모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소규모 오케스트라 연주의 대표적인 작품인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들어보았습니다. 전체 6곡 중에서 4번을 들어보았는데, 4번은 전체 관현악이 모든 악장에 사용되는 유일한 곡이기도 합니다. 연주는 카페 짐머만(연주 단체 이름). 만약 시대연주가 궁금하고, 바흐를 다이나믹하게 연주하는게 궁금하신 분들은 카페 짐머만 연주의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빠른 템포, 짧은 프레이징, 극적인 강약대비는 여느 시대 연주자들과 다를 바 없지만, 카페 짐머만의 진가는 바로 각각 연주자들의 자신감과 강렬함에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도 않은 곳에서 각각의 연주자들은 악구의 본질을 꿰뚫고 있으며, 그 이해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데, 그 자신들의 목소리는 어느새 다른 악기들과 어울려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고 있습니다. 참으로 카페 짐머만!! 답습니다. (치머만 커피 하우스는 1729년 경에 바흐의 연주모임이 순수한 연주 즐거움을 위해 자주 모임을 가졌던 장소입니다.)
SL600으로 듣는 브란덴부르크 4번의 3악장에서, 특히 그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아름다운 음색에, 셀레스천 특유의 마력과도 같은 매력이 한껏 느껴지면서, 곡의 즐러움을 선사합니다. 106번째 마디 부터 시작되는 솔로 바이올린의 화려한 패시지 아래의 제2바이올린의 화음, 140번째 마디 부터 진행되는 비올라의 강력한 아르페지오는 카페 짐머만 연주의 전매 특허이자, 짐머만 연주의 핵심인데, SL600은 이를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151번째 마디의 비올라의 연속되는 아르페지오는 SL600처럼 중음의 묘사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눈치채기 힘든 악구 입니다. 이렇게 뛰어난 비올라, 제2바이올린의 강조는 뛰어난 묘사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어색하게 들리지 않으며, 곡의 이해를 돕기도 합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비올라, 제2바이올린 음색은 셀레스천 그 어느모델에도 찾기 힘들었습니다. 나는 SL600이 셀레스천이 초기 모델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는데, 아마 이후 셀레스천이 모델의 개량을 거듭하면서 이런 개성이 줄어들지 않았나 상상해봅니다.
SL600의 한계점
SL600은 이렇게 뛰어난 비올라와 제2바이올린의 묘사력이, 음악의 즐거움을 한껏 고취시켜주나, 몇가지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일단 고음의 '침체'(depression)입니다. 사실 이러한 평가는 SL6와 SL600이 출시될 당시 현지의 평가인데, 나 역시도 SL600을 사용하면서 동일하게 느꼈습니다. 다만, 이런 고음은 바이올인보다는 플륫과 같은 금관악기의 고음을 들을 때 나타났습니다. 플륫 특유의 금속성의 투명함과 맑음이 높은음에서는 한층 낮게 들려 악기 고유의 개성이 많이 죽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는 미묘하여 전체적인 감상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는 고음의 묘사력입니다. 제1바이올린, 또는 솔로 바이올린 특유의 날카로움과 민첩성이 많이 상쇄된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전체적인 곡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독일의 젊은 천재 피아니스트, 마틴 슈타트펠트 연주의 바흐 피아노협주곡을 들어보면 그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음반에서, 이 천재 피아니스트는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의 연주가,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재미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리는 음악축제, 루체른 페스티벌. 이 페스티벌의 핵심 중의 하나는 바로 현대적인 사운드입니다. 마티 슈타트펠트와 함께한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은 그 사운드에 긴장이 넘치고, 날카롭고 눈부신 빠르기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그 연주 방식도 대단히 현대적이어서, 마치 바흐 피아노 협주곡 연주 최신지견의 결정판이라고 할만 합니다. 그러나 SL600으로 듣는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은 그 긴장감이 다소 상쇄된 느낌을 받습니다. 고음의 음색이 하늘 끝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다소 뭉뚱그려 진다는 느낌을 받고, 이로 인해 현의 빠르기도 떨어지게 됩니다.
한편 저음의 처리도 아쉽습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주자들이 한껏 자신들의 팔의 무게로 울릴 때는 그에 상응하는 소리를 내어주지만, 팔의 무게를 빼고 통의 울림을 내어야 할 때는 '웅'하고 가끔 공허한 소리가 납니다. 이런 소리는 세련되지 못하게 들리는데, 이런 점은 SL6si 특유의 절제된 저음과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아마 제작자들도 이런 SL600의 한계를 절감하였을 것이며, 이런 아쉬운점으로 SL6000을 개발한 것은 아닌가 짐작하여 봅니다.
숨은 명기, SL600
처음으로 셀레스천이라는 스피커를 접하고, 그 개성에 매료되어 셀레스천 스피커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SL600에 대한 평가를 듣기는 어려웠고, 설령 들었다 하여도, 그 평이 좋지 못하였습니다. SL600을 두달 정도 사용해본 지금, 이제는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SL600이 과소평가되었던 이유는, 첫째는 SL700과 SL6s계열 사이에서 조명을 받을 시간이 충분치 않았고, 두번째는 '세련되지 못한 저음처리'가 사람들에게 아쉬운 인상을 남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매력이 SL600에는 충분히 있고, 그런 이유에서 SL600은 다시 한 번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드라지면서도 굉장히 세밀한 중음 표현은, 그동안 듣지 못하였던 비올라의 음색을 새로이 '발견'하는 수준이었고, 특유의 시원스러운 음색은 중음의 묘사력과 더해져 사람의 음성을 호소력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오페라에 대단히 만족스러운 울림을 들려주고, 아울러 오페라 아리아 뒤의 오케스트라 반주가 인상적으로 들려, 오페라의 재미를 고조시킵니다.
다른 셀레스천과 마찬가지로, SL600은 자신만의 색깔을 잔잔히 간직하고 있고, 이런 빛깔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뛰어납니다. 흔히 말하는 '명기'라는 것이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제각각일 수 있고, 그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명기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가장중요한, 바로 음악의 감동을 선사하는데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셀레스천SL600을 통하여 음악의 감동을 그 어느 때 보다 가슴깊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그 누구라도 저와 비슷한 경험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런 기분 좋은 기대를 안고, 이번 사용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