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셀레스천, 그 열정적인 스토리
2012년 7월의 여름, 이탈리아의 조그마한 마을, 페사로(Pesaro)에서 열린 로시니 오페라 페스티벌(Rossini Opera Festival)은 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페스티벌이 열린 극장은 그리 크지 않았는데, 입구는 좁고 앞뒤로 긴 구조였습니다. 그런 구조 때문에 무대는 작았고, 3층까지 있는 객석은 강한 곡선을 그리며 무대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당장에라도 손에 잡힐듯이 가까운 무대, 옆의 관객들의 숨소리까지 들릴정도로 좁은 객석은 답답하기 보다는 오히려 공연에 집중하게 해주었습니다. 이탈리아의 한여름, 무덥고 끈적한 공기 사이로 들려오는 볼로냐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는 투박하면서도 잔잔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숨을 죽이며, 마치 이 극장만 제외하고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라진 것처럼, 그렇게 극도로 집중하면서 오페라로 빠져들었습니다. 나는 오페라 극장과 음악이 보여주는 또 다른 세상의 모습에 깊이 감동하며 몸을 떨었습니다.
이처럼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때론 즐거워하고, 감동하고, 무서워하고, 흥분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때론 지적 희열을 느끼기도 합니다. 특히 각 연주자들 나름의 개성있는 연주를 듣는 것이 커다란 기쁨인데, 각 예술가들의 나보다 한 발 앞서서 보여주는 새로운 세상에 크게 감동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비전을 만들고, 그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음악가들의 모습은 세상 그 어느것보다 아름다고 눈부십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지휘자 니콜라스 아르농쿠르, 그의, 시대연주의 연구와 성과는 바로크 음악의 유행을 일으켰고,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독특한 바흐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세상 널리 알렸습니다. 프랑스인 특유의 화려하면서도 낭만적인 어감이 도드라지는 알렉상드로 타로는 쇼팽 왈츠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음악은 항상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하고, 그 경험이야말로 인간이 신으로부터 받은 축복 중의 축복이라 할 것입니다.
셀레스천이라는 스피커를 처음 알게되고 나는 크게 놀랐습니다. 이제껏 음악을 들어오면서, 나에게 스피커라는 것은 단지, 음악을 큰 왜곡 없이 들려줘야할 기계에 불과하였습니다. 감동과 경험이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은 음악 그 자체이지, 결코 기계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이런 생각에서, 오디오라는 '취미'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음악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접해본 셀레스천의 스피커는 이런 나의 생각을 송두리째 뒤흔들었습니다. 셀레스천, 그것은 단지 소리를 울리는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작자의 의도가 명확하게 반영된 것이었으며, 단순히 소리를 울리는 기계가 아니라, 수년전, 혹은 수십년 전 연주되어 기록된 것을 우리에게 올바르게 전달하려는 소리의 전령사와도 같았습니다.
이 때 부터 나의 수집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음에 들고 대단한 연주자를 발견하면, 그 연주자가 연주한 모든 음반을 사모으는 것 처럼, 그렇게 셀레스천의 모델을 수집하고, 그 모델을 들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셀레스천의 스피커는 이미 오래전에 단종된 모델들이라, 스피커의 구입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중고거래도 하였고, 해외공수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러한 과정에서 예상치 않게 소중한 인연을 만나뵙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이런 인연을 셀레스천이 선사한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들여온 모델이 SL6s, SL6si, SL600, SL700, Kingstone 입니다. 각각의 모델을 들어보면서 일관된 제작자들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셀레스천은 개성과 비전이 뚜렷한 스피커입니다. 셀레스천의 비젼은 바로 '세밀한 표현'입니다. 음악이란 바로 음악가, 작곡가의 의도, 감정을 '표현' 한 것이므로, 스피커는 그 표현을 충실히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셀레스천의 모토입니다. 치우침없이 모든 성부에서 셀레스천은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지 성부를 크게 풍성하게 울리는 것이 아니라, 음의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해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모델에서는 제작자들이 모든 성부를 완벽하게 장악하려 한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각 성부들이 제작자의 손길을 거쳐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어, 마치 페사로 오페라 극장의 세상처럼, 조그마한 인클로저 안의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뚜렷한 비전아래, 셀레스천은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열정적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쯤이면, 굳이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걸작은 항상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와 같은 해묵은 명제를 끌고오지않더라고, 셀레스천이라는 스피커를 단순히 기계 그 이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때부터, 나는 셀레스천에 대해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고, 각 모델별로 사용기를 정리해보자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각 모델별로 느껴지는 차이가 명확하였고, 그 차이는 결국 셀레스천이 열망하는 '음악의 표현'을 좀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셀레스천의 의도와 비전아래 각 모델들이 어떻게 변화하여 왔고, 제작자들의 열망이 어떻게 현실화되었는지 담론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음악에 대한 감상 자체가 굉장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문제점도 많고 허점도 많은 사용기들일 것입니다. 일단 제 자신이 편중되게 클래식 음악만 감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칭된 엠프도 완벽하질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다른 사이트에서 PMC24 스피커에 대한 감상기를 올렸다 혼(?)난 적이 있는데, 엠프도 제대로 매칭도 하질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감상평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청음환경도 문제입니다. 현재 6~7평 남짓한, 조그마한 아파트 거실에서 듣고 있는데, 청음 환경에 따라서도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신경이 쓰입니다. 감안하시고, 다만, 이러한 느낌도 받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보아주시기바랍니다. 아울러 같은 셀레스천 사용자분들과 얘기를 나누는 기회가 된다면 저는 더 바랄것이 없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피커 매입에 물심양면적으로 저에게 과분한 도움을 주신 네이버 까페 PC-FI & Home audio 김진환 매니저님께 감사말씀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