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들었던 자비앙xn125, xn250, 그리고 PMC24 모두 수백만원대의 스피커였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모델도 가격에 비하여 매우 실망스러웠으며, 도저히 신품가격을 주기에는 한참 모자란 듯이 보였습니다.
소위 한 가닥 한다는 스피커에 대한 실망은 다인 스피커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다인 특유의 음색이 매력적이라고는 하나, 클래식 매니아의 입장에서는 그 '특유의 음색'이 왜곡으로 직결될 수 있기때문에 매우 거북한 것입니다. 수 년 전 다인 스피커 컨투어(정확한 모델명이 기억이 안나는군요)로 장귀엔 퀘라스 연주의 하이든 첼로 협주곡을 들었습니다.
이 음반에서 퀘라스는 바로크 활로 연주를 하는데... 바로크 활로 연주하는 첼로의 음색은 매우 독특합니다. 활로 한 번 웅~ 하고 울려도 딱 특정 거리까지 울려버리고 딱 멈춰버립니다. 현대 첼로의 커다란 울림과 다르게 바로크 첼로에서는 통의 크기가 느껴지는 한정된 울림이 생기고, 바로 이런면이 바로크 첼로의 매력입니다.
다인으로 이 연주를 들었을 때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다인 특유의 착색이 들어가서 바로크 첼로의 음색이 현대 첼로와 같이 힘이 들어가버렸기 때문입니다. 끝간데 없는 곳에서 아스라이 나타나는 퀘라스 특유의 프레이징 속에서...엉뚱한 섬유질이 들어가버려, 마치 로스트로포비치같은 울림이 났습니다.
뭐, 어느 대단하신 오디오 전문가 분께서 저의 이런 얘기를 들으시곤, 다인 스피커의 최상위 기종을 들어봐야 그 진가를 안다며, 꼭 다시 들어보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여튼...
옳고 그름을 떠나서, 최소한 지금까지 내가 들어온 스피커는 최소 100만원, 최대200만원은 비싸게 나온듯이 보였고...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그렇게 돈을 낭비해가며 선뜻 스피커를 구입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와싸다 장터를 들락거리며 예전 가격으로 나온 자비앙xn250을 찾기도 하고 이런 저런 사용기를 참고하였으나...
지금까지 들어온 스피커에 대한 다른 분들의 사용기를 보면, 그 어느것도 제가 받았던 느낌과 맞지 않았습니다. 우선은 음악성향이 매우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오로지 클래식만 듣고, 정말 거의 클래식에 미쳐버린 수준이라... 다른 장르의 음악과는 맞지도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렇게 방황아닌 방황을 하던 중... 장터에 우연히 셀레스천 SL6si라는 스피커가 매물로 나온 것이 보였습니다. 애초에 오디오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오디오를 취미로 두는 사람 앞에서는, '나는 기계를 듣는 것이 아니라 진짜 실황음악을 더 듣고 즐긴다' 는 치기까지 부리던 터라... 셀레스천이라는 메이커는 당연히 몰랐습니다.
매물을 올리신 분의 글과 사진에서 뭔가 예사 물건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서둘러 구입문자를 보내고, 재빨리 스피커에 대한 검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당시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PMC, 자비앙, 프로악 세가지 모델 중 하나를 구입할 예정으로 샾에다가 계약금까지 걸어놓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셀레스천에 대한 평이 상당히 좋아, 그냥 들어보고 맘에 안들으면 되 팔자는 심산으로 구입을 결정하였습니다.
밤에 운전을 하여 판매자분의 자택으로 가서, 스피커를 가져가기 전에 청음을 해보았습니다. 다행히 판매자 분의 집에 제가 선호하는 SACD가 있던 터라 그 음반을 들었습니다.
바로 Hilary hahn 연주의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D-major 3악장. 활짝 웃어제끼는 제프리 커헤인 특유의 발랄함이 느껴지는 도입부는 무난하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곡이 시작되면서... 어? 첼로 소리가 도드라지게 들렸습니다. 또하나는 전체적으로 음이 억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튀어나오는 음이 너무 크지 않게 억압이되고, 다른 성부에 비해서 도드라지는 첼로소리는...다른 스피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커다란 개성이었지만... 빈틈을 찾을 수 없는 밀도높은 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위화감이 들지않았습니다! 왜곡도 없습니다. 물고기가 당장에도 튀어오를 것만 같은 힐러리 한의 음색은 과장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표현되고 있으나, 그렇다고 점잖은 소리도 아니었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소리에 무게가 있고, 밀도가 있습니다. 활로 울리는 바이올린 울림의 공간감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정말 눈을 딱감고 들어도 너무나 쉽게 알아맞힐 수 있는, 그렇게 셀레스천 SL6i는 개성이 굉장히 강한 스피커였습니다. 하지만, 그 강렬한 개성이 음악의 본질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는 데에 정말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보통 '개성이 강하다' 라고 하면, 중역이 크거나, 고음이 투명하거나 등등... 스피커의 메커니즘적인 측면에서 강조를 하고 있는데, 셀레스천은 개성의 기반에 바로 음악을 두고 있다는 것이죠.
음 하나하나가 단순히 열심히 노력해서, 돈 많이 써서 만들어진 음색이 아니라, 정말 수십년간 고민하고 연구하고, 또 그만큼, 이 스피커의 제작에 참여한 분들의 가치관과 감성이 느껴지는 그런 음색이었습니다.
스피커를 조심히 가지고 흥분된 마음으로 스피커를 다시 울립니다.
도저히 빈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높은 밀도. 도드라져 있는 중역. 그러나...도드리진 중역은 그냥 무턱대고 소리가 큰 것이 아니라 묘사에 더 치중해있는 느낌...
중역의 현의 묘사력이 너무 세밀해서 첼리스트의 실루엣, 호흡이 느껴집니다. 묘사력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PMC처럼 너무 화려해서 주체를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인 음색은 밀도와 질감을 유지하면서 오히려 음의 표현력에 더 신경썼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개성이 확실한 스피커는 위화감을 불러일으키기 쉽고, 그래서 음악을 들으면 마치 스피커가 음악을 연주하는 듯한 해프닝이 일어나곤 하는데...
셀레스천은 자기 개성이 확실하면서도 음악의 본질로 다가가는 느낌입니다. 단순히 음의 해상력, 강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음을 강조하고 '어떻게' 해상력을 해결해야하는 지 오랜 세월 고민해왔기 때문인 듯 합니다.
아... 셀레스천...
이 스피커만으로도 글로 A4몇장은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제대로 감상기를 쓰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그때는 단점도 객관적으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돌이켜보면...
셀레스천이라는 메이커를 알고 셀레스천SL6si를 업어 온지가 만 하루가 안 되었습니다. 24시간도 안되는 시간 동안, 저는 셀레스천이 고민해온 수십년의 세월과, 그 세월을 안고 내뿜는 스피커의 아우라에 완전히 매료되고 압도되어... 지금도 음악을 들으며 셀레스천을 검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셀레스천 SL6si를 집에 들여놓고 울리면서... 저는 오디오에대한 생각을 아예 처음부터 다시 해야만 했습니다. 셀레스천의 소리로 채워진 거실의 공간은... 마치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걸려있는듯... 그렇게 음색 하나하나가 많은 생각을 하게하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스피커를 만날 수도 있고, 다른 메이커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셀레스천6si는 평생 저와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울리는 셀레스천SL6si의 코지 판 투테는 밤이 어두워저 가는 거실의 공기를 농밀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강종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