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던가.
철쭉을 진달래인줄 알고 먹다 독이 올라 죽은
아이들이 참 많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자식을 잃고, 누이를 잃고, 동생을 잃은 사람들에게
철쭉은 해마다 핏 빛 처럼 산자락을 덮으며
놀란 가슴으로 다가왔을게다.
새벽이면 안개가 습기를 감추고 옷자락에 내려앉듯,
저녁이면 어둠을 숨긴 석양이 사람들의 등뒤에
가느다란, 하지만 길게 다가오는 한숨을 내어쉬는 듯,
봄 날 들판은 핏 빛이 한창이다.
미연(Mi-Yeon)의 건반에서는 이러한 핏 빛이 묻어나온다.
아름답도록 붉은 선홍색의 핏 방울이 절벽 한참 아래로
한 방울 씩 떨어져 밑바닥이 훤히 보이는 작은 샘 위에
아주 잠시 말라 비틀어진 장미 꽃 잎을 그려내듯.
단순한 믿음으로 오랜 시간을 견뎌 온 여린 소녀가
부서져 내리는 세상을 보지 않으려
작은 손으로 두 눈을 가리듯.
붉어진 눈 주위를 파르르 떨며
'난 억울해요'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이미 잠겨버린 목소리가 괴로운 듯.
미연의 피아노 소리가 그렇게 힘들게 다가올 때가 있다.
하지만, 첫 곡인 Beyond the Winter가
그렇게 핏 빛을 흐트러뜨리고 지나가면,
수줍은 희망이 풀려나온다.
Simple Trust의 음악들은 그렇게 나약한 사람들이 지닌 신념을
보듬으려 한다.
그 손길이 고마워 고개를 들면,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팔기위해 행인의 옷소매를 잡아당길 때,
그 절박한 손길에서 묻어나오는 힘에 깜짝 놀란,
그러나 자신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다는 분노와 실망으로
이내 곧 평정을 되찾고 쌀쌀한 눈길로 뒤돌아 설 때나 보일
우리의 눈빛이 나이어리고 매마른 한 여성 피아니스트를 향하고,
다시 세상에 맞설 수 있는 매정함으로 우리를 무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