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Rotel 에게는 “가성비” 라는 단어가 언제나 따라다닌다. 말 그대로 가격에 비해 성능이 뛰어나다는 얘기인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Rotel 이 대만이나 중국 등의 국가가 아니라 물가가 굉장히 비싼 축에 속하는 영국, 그것도 50년이나 된 장수 업체라는 점은 사뭇 놀라운 일이다. (물론 생산은 대부분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현재는 B&W 계열이지만 말이다.)
Rotel 의 2000년대 행보는 그야말로 놀랍다. RA-02 부터 인기몰이를 시작해서, 06시리즈의 RA-05가 2006년 WHAT HI★FI 에서 £500 이하 최고의 앰프로 선정되는가 하면, 10시리즈 에서는 외관부터 출력, 부품까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RA-1070 이라는 제품을 출시했고, 15시리즈부터는 PC와의 연계를 고려해서 DAC나 네트워크 스트리밍 기능을 내장한 제품들을 출시했다. 그 중 대표적인 제품들이 뮤직서버인 RCX-1500, 그리고 여기서 CDP 기능을 제외한 RDG-1520인데, 당시 LINN과 NAIM, 그리고 몇 몇 일본 업체들의 제품들 외에는 이런 기능을 내장한 제품들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발 빠르게 움직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번 12시리즈 에서는 RA-10이 2006년에 이어 2012년 WHAT HI★FI 에서 £400 이하 최고의 앰프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 다루고자 하는 RA-11의 경우, RA-10과 같이 12시리즈에 속해 있으며 RA-10과 RA-12 사이에 위치하는 제품이다.
<만듦새와 구성>
외관을 살펴보면 굉장히 세련되고 깔끔하다는 느낌이 든다. 깔끔하다의 반대말은 “조잡하다” 혹은 ”지저분하다” 정도일텐데, 굉장히 여러 개의 버튼과 LCD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섀시의 마감이 비교적 고급스럽고 버튼들의 위치, 은색, 검정, 파랑의 색상 조합등이 쿨한 느낌을 줘서 그런지 비교적 깔끔하다는 느낌을 준다. 15시리즈 때만 해도 크렐 300i 와 흡사한 디자인으로 약간은 거칠고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12시리즈는 거칠거나 지저분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마냥 차가워 보이지도 않는 게 디자인 컨셉을 매우 잘 잡은 것 같다. 노브가 돌아가는 느낌이나 버튼이 눌리는 느낌 또한 저렴한 기기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리모콘 또한 묵직하고 그립감이 좋으며 앰프와 마찬가지로 깔끔한 느낌이다. 물론 가격이 있기 때문에 섀시가 통주물이라던가 모든 면이 두텁다던가 바인딩포스트가 WBT처럼 생겼다던가 하지는 않지만, 100만원 초반의 가격을 생각하면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만듦새다.
<소리 성향>
앰프의 디자인을 보면 소리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고 했던가? 로텔하면 흔히 “명쾌하고 시원한 소리”를 생각하는데, 이번 시리즈에서는 그런 느낌은 거의 받을 수 없었다. RA-02부터 거칠다는 평가로 인해 계속해서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RA-11의 소리는 로텔의 이미지와는 달리 오히려 편안하고 평탄한 느낌으로 전체적으로 포근한 느낌이었다. 음의 두께도 얇거나 야위다는 느낌은 없었고 피치 또한 적절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음의 거친 정도가 부드러워 졌다는 거지 오디오아날로그나 네임과 같이 저음이 많아지고 잔향감이 많은 성향이 되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여전히 저역은 단정하게 조여져 있는 편이며 음의 윤곽감도 제법 잡혀있고 반응속도는 빠른 편이다. 셈여림 표현도 꽤 좋은 편인데, 이는 로텔 앰프가 비슷한 가격대의 앰프들과의 경쟁에서 빛나는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재미있는 것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중고역대가 거의 못 느낄 정도로 아주 조금 부풀어 있는데, 우수한 셈여림 표현과 중고역대의 부풀음으로 인해 클라이막스 부분에 다다랐을 때 에너지감이 분출되는 것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마 의도된 튜닝이 아닐까 조심스래 추측해본다.
<부가기능>
위에 앰프 성향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사실 RA-11의 장점은 앰프 자체 성능이라기 보다는 부가적인 기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앰프의 성능이야 8옴 기준 40W의 입문형 기기 정도지만 부가적인 기능은 그보다 한참 앞서가기 때문이다. 일단 DAC 칩을 살펴보면 울프슨 사의 WM8740을 사용하고 있는데, 울프슨은 버브라운과 더불어 범용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칩 중 하나로 온쿄, 캠브리지오디오, 아캄 등이 사용하고 있는 칩 회사이다. 게다가 WM8740은 192/24bit을 지원하는 울프슨 사에서 세 번째 상위 칩으로 그 수준 또한 매우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칩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내장 DAC 수준은 앰프 가격을 고려했을 때는 꽤 우수한 수준이다. 성향은 선명하고 명료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적어도 20~30만원대 가량의 외장 DAC 수준은 되지 않을까 싶다.
디지털 입력으로는 동축과 광, 전면에 USB와 블루투스를 지원하는데, USB와 블루투스는 비록 16/48bit 까지 밖에 지원하지 못하지만 Apple사의 제품들은 물론이고 블루투스를 지원하는 모든 휴대용 장치를 지원한다는 점이 매우 편리하다. 집중해서 음악을 듣다가 스피커에서 엄청 큰 볼륨으로 문자 메시지 소리가 흘러나오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맺으며>
위에 이미 언급했듯이 RA-11은 앰프 성능이 가격대를 상회하는 제품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가격대 치고 앰프 성능이 아주 부족한 편도 아니다. 그에 더해 가격 대비 우수한 DAC와 여러 가지 편의성을 갖춘 제품이라고 생각해보면, 역시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음질과 그레이드에 욕심을 낸다면 더 상위 제품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편하게 조그만 북쉘프로 DESK-FI 를 즐긴다거나 서브 기기로 사용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소리 성향과 매칭에 대해 언급하자면, 음색이 자극적이지 않고 포근하고 평탄하면서도 단정한 저역, 빠른 반응속도 등의 현대적인 성향을 띄고 있고, 무엇보다 셈여림을 잘 표현해주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엘락이나 패러다임과 같이 선명도가 좋은 스피커나 KEF, B&W와 같이 유순한 스피커와도 두루두루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소프트돔 트위터를 사용한 제품들보다는 금속재질의 트위터를 사용한 제품들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 청음기기
앰프: Rotel RA-11
소스: Rotel RA-11
스피커: NHT Absolute Zero, Usher Be-718 DMD
파워케이블: Wireworld Stratus 5²
스피커케이블: Chord Company Carnival Classic
◈ 참고
Rotel 공식사이트 (http://www.rotel.com/)
What hifi 홈페이지 (http://www.whathif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