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어 마무리를 지으려 합니다.
제가 가장 인상깊게 들었던 음악은 고3 방학때,
심심해서 방안에서 돌아다니던 싸구려 휴대용 축음판에,
허접스런 베토벤 5번 교향곡 엘피 판을 올려 놓고
볼륨을 최대한으로 해서 들었을 때입니다.
그 때 느낌은 음악의 신천지를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클래식을 향한 열망이 항상 밑바닥에 깔려 있었듯 싶습니다.
다음에는
교회 청년부에서 간 수련회에서 유원지의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던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 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심신이 너무 힘들어었던 상태에서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가을바람 소리와 노래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감동은 어느 기기에서나 느낄 수 있습니다.
질낮은 저음만 쏟아내는 미니콤포넌트에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고
다른 악기들의 소리는 묻혀져 버린채 피아노 소리만 아주 뛰어난 기기에서도 느낄 수 있고,
어느 수리점에서 기막히게 울리던 보스 스피커의 소리에서도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음악적 감동에 대해 아주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실상은 음악을 듣고 카타르시스나,
쾌감을 느끼는 것은는 인생에 몇 번 안될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문제는 그 감동이 실용과 비실용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곧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트로트 음악이 좋아하는 사람이 받는 감동과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받는 감동은 분명히 틀립니다.
두 사람이 느끼는 감동에 그렇게 확연한 차이가 있는데,
단지 감동을 실용과 비실용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일부러 가요나 팝을 안듣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라디오의 가요프로그램을 청취한 적이 있습니다.
며칠 동안은 그래도 들을 만하더군요.
근데 그 이후에는 머리만 아프고, 피곤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에는 가요 프로그램을 더 이상 듣지 않았습니다.
학교다닐 때는 비틀즈 테입 전부를 구입하여 매일 반복해서 듣기도 했습니다.
똑같이 머리만 아프더군요.
결론은 저에게 가장 맞는 것은 클래식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클래식은 대편성의 경우에는 악기 수만 적어도 열 종류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많은 악기들에서 서로 미묘하면서도, 긴밀한 조화를 이루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또 그 음악을 한 두 종류의 기기를 통해서 재생하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반면에 가요나 팝, 재즈 같은 경우는 거의가 사람의 목소리가 주요, 몇 가지 악기들은 사람의 목소리를 보조해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떤 음악을 듣느냐"가 빠져버린 실용이냐 비실용이냐의 논쟁은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기기가 음악적 감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기기를 선택하게 한다는 겁니다.
그에 따라서 만족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곧 "듣는 음악이 실용과 비실용의 기준을 가른다"는 것이 제가 그동안 느낀 음악적 결론입니다.
미니콤포넌트로도 충분한 음악이 있고,
하이엔드로 들어야 비로소 만족감이 생기는 음악이 있습니다.
이 음악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실용과 비실용의 논쟁은 의미도 없을 뿐더러
결론 역시 도출되지 않을 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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