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는 오디오 초보다.
음악 감상이 삶의 가장 커다란 취미가 된 것은 중학교 갓 들어갔을 무렵부터이니까
얼추 20년 정도 되어 가지만 본격적으로 오디오 기기에 관심 갖기 시작한 것은
1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요컨대, 제목은 거창하게 비청기라고 붙어있지만
별 도움이 될 만한 글은 아니다.
최근에 스피커 교체하면서 느꼈던 감상을 끄적인 글인데
글쓴이와 비슷한 수준의 초보 분들이나
초보의 감상문도 나름 귀엽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냥 심심풀이로 훑어봐주셨으면 한다.
소개할 스피커는
윌슨베네시 디스커버리
다인 25주년
토템 마니2 시그너쳐
어셔 BE-718 다이아몬드
프로악 D2다.
디스커버리는 10개월 가량, 25주년과 마니2, D2는 3주 정도 청취했고,
어셔 718은 이제 4주 정도 돼간다.
모두 같은 공간에서 들어봤고,
디스커버리를 제외한 나머지 스피커들은 3주 정도 동시에 비청했다.
A. 외관
가장 눈에 띄는 디자인은 단연 디스커버리다.
아마 얘를 구입하게 된 이유의 반은 바로 이 아방가르딕하면서도
강렬한 자태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릴 씌어놓았을 때 얘가 스피커인지
알아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들 이게 뭐냐는 식인데, 이게 뭐지 하면서 둘러볼 때
슬그머니 플레이 시키면 화들짝 놀라곤 한다.
디스커버리가 워낙 파격적인 디자인이라 나머지 애들은 좀 평범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이건 아마 어떤 북쉘프를 갖다놔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나머지 셋 중엔 어셔 718이 낫다.
아니, 이 정도면 꽤나 훌륭한 디자인이다.
소너스파베르와 비슷해 보인다는 얘기가 있던데
내가 보기엔 과르네리까지는 몰라도 일렉타 아마토르 같은 애들보다는 훨 낫다.
무슨 디자인상도 받았다는 걸 보면 객관적으로 봐도 별 비교대상이 없을 듯하다.
참고로 내가 아는 여자애들은 전에 보던 디스커버리보다 이게 더 이쁘다는데,
뭐 우아함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렇게 보일 것 같기도 하다.
나머지는 딱 스피커처럼 생겼다. 누가 봐도 스피커다.
난 다인 25의 버찌 마감이 꽤 고급스럽다고 느꼈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엔 그냥 저냥인가 보다.
프로악도 마찬가지. 마니2는 솔직히 말해 못생겼다. 마니 못 생겼다.
* 디스커버리 > 어셔 718 > 다인 25 > 프로악 D2 > 토템 마니2
B. 소리
1. 해상도
일단은 하이엔드 스피커의 첫 번째 덕목이라는 해상도부터 비교해보자.
디스커버리, 다인 25, 어셔 718, 토템 마니2 모두 최상의 해상도를 보여준다.
내 귀엔 어느 스피커에선 들리고 어느 스피커에선 안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다이아몬드 트위터를 쓰고 있는
어셔 718이 제일 난 것 같기는 하다.
예컨대 에이미 후지타의 싱가폴 라이브 공연에서 모든 악기의 소리가
자잘한 대목까지 가장 선명하게 들렸던 것은 어셔인데
뭐 그렇다고 독보적인 수준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그냥 재미삼아 순위를 매겨보자면
* 어셔718 > 마니2 = 디스커버리 = 다인25
2-1. 저역의 깊이
예상들 하시겠지만 토템 마니2의 압승이다.
마니2의 최대 매력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저음현 악기들이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부분이나
피아노가 낮은 건반을 터치할 때를 들어보면 금방 티가 난다.
연주 중 저역이 강조된 부분에 이르면
흔히 말하는 대로 마치 해머로 땅을 찍는 듯한 느낌의 저음을 발산한다.
마니2가 워낙 독보적이긴 하지만 사실 얜 이례적인 케이스고,
디스커버리와 다인 25, 어셔 718의 저역 깊이도
북쉘프로선 거의 끝자락에 있는 수준이라고 느껴진다.
*마니2 > 다인25 > 디스커버리 = 어셔718
2-2. 저역의 양감
마니2가 깊이에서 독보적이라면 저역의 양감은 단연 디스커버리다.
다인이나 토템, 어셔의 리뷰에서도 저역의 양감이 톨보이 못지않다는
찬사가 자주 등장하지만
아마 그 말이 맞다면 웬만한 톨보이들은 디스커버리 앞에서 눈깔아야 할게다.
나머지 셋 중에선 다인25와 어셔718의 양감이 비슷한 수준이고
의외로 마니2는 나머지 애들에 비해 양감만큼은 확실히 밀린다.
물론 이건 마니2의 저역 양감이 적다기보다는
나머지 스픽들이 그만큼 풍부한 양감을 보유한 것으로 이해하는 게 맞을 것이다.
* 디스커버리 > 다인25 > 어셔718 > 마니2
3. 타격감
타격감 역시 디스커버리가 제일 우수하고
나머지 셋은 비슷하거나 다인이 조금 밀리는 수준이라고 느껴진다.
난 스피커의 타격감이나 탄력은 존 윌리엄스 등의
스펙타클 시네마 뮤직으로 테스트해보는 편인데,
레이더스 마치나 스타워즈 테마, 캐리비안의 해적 테마음악 등을 들어보면
역시 디스커버리가 확실히 출중하긴 하다.
나머지 셋도 디스커버리만큼은 아니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한 방을 장착하고 있다.
어셔와 다인은 부드럽게 공간을 감싸는 듯하면서도
펀치가 필요한 곳에선 펑펑 터지는 스타일이고,
마니2는 찍어 누르는 듯한, 그리고 탄력은 다소 배제된 조금은
둔탁한 느낌의 타격감이다.
* 디스커버리 > 어셔718 = 마니2 = 다인25
4. 음장감 & 무대감
넷 다 북쉘프로선 최고 수준이라 생각한다.
좀 더 상술하자면 무대의 폭과 깊이는 토템이 근소하게나마 제일 넓었고,
나머지는 비슷한 것 같다.
음이 상하로 퍼지는 느낌은 넷 다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체스키의 오디오테스트 시디에서
합창단이 성당의 2층에서 노래부른다는 트랙을 들어보면
모두들 그다지 실감나진 않는다.
* 마니2 > 어셔718 = 디스커버리 = 다인25
5. 정위감
무대감이나 정위감이나 비슷한 용어인 것 같은데
난 그냥 악기 위치가 얼마나 잘 구분되는지를 비교하기 위해 사용해봤다.
마니2는 뭐 칼 같다. 악기가 눈에 잡힐 듯 구분된다.
나머지들 역시 마니와 대등한 수준이라고 생각하지만
마니만큼의 핀포인트는 아니다.
어쨌든 디스커버리와 어셔, 다인 역시 오케스트라 스트링 섹션 딱딱 구분되고
관악기들 울릴 때 위치 구분해서 뭉치지 않고 또렷하게 울려준다.
* 마니2 > 디스커버리 = 어셔718 = 다인25
6. 밸런스
어셔 718의 승리다.
마니2의 특기가 저역의 깊이, 디스커버리의 특기가 현장감이라면
어셔 718은 밸런스라는 덕목에서 빛을 발한다.
고역, 중역, 저역 어디 하나 치우치는 부분이 없고,
따라서 클래식 음악에 있어서는 넷 중 가상 이상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선 마니2의 밸런스감이 더 좋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느 정도 수긍하긴 하는데 마니2의 낮은 저역 인상이 강렬하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어셔의 밸런스감이 더 좋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디스커버리는 처음 들었을 때부터 중역이 다소 빈 듯한 느낌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건 디스커버리 국내외 유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약점이었다.
해외 유저들의 이야기로는 디스커버리엔 진공관이 잘 어울린다는 의견이 많고,
실제로도 오디오쇼 사진들을 보면
디스커버리에 진공관 앰프를 물린 경우가 자주 보이는데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아이소배릭 우퍼에서 나오는 저역의 양감이
워낙 커서 그런지 음의 중심은 다소 아래쪽에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개인적인 허접 스피커 공학 분석을 덧붙이자면, 디스커버리는 미드 우퍼의 업무량이 다소 과중하지 않나 싶다. 디스커버리는 500hz부터 5khz까지를 미드우퍼가 담당하는데 사실상 대부분의 음성신호를 처리하는 셈이다. 반면 괴물 같은 아이소배릭 우퍼는 500hz 아래만을 한가롭게 담당하고 있으니 중역과 저역의 밀도감에서 밸런스가 조금 틀어지는게 아닌가도 싶다만.......)
다인 25 역시 디스커버리와 마찬가지로
중역이 다소 약하다는 느낌인데, 그 정도는 조금 덜하다.
다른 유저들의 경우 나랑 비슷한 얘기를 하는 분도 있고,
25주년의 중역이 약하다니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는 분도 있던데, 뭐 모르겠다.
다만 비청은 말 그대로 상대적인 것이고
내가 느끼기엔 어셔 718의 밸런스감에 비하면 분명 차이가 난다.
모르긴 하지만, 스테레오파일이 어셔718과 다인25를 같이 평가하면서
어셔는 A클래스, 다인은 B클래스 매긴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로버트 할리가 거품 뿜으면서 어셔 칭찬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 때문인 것 같고.(아시겠지만 이 양반 밸런스 강조 참 많이 한다.)
* 어셔718 > 마니2 > 다인25 > 디스커버리
7. 현장감
스피커 평가 항목에서 현장감이라는 항목은 잘 안 쓰는 것 같은데,
그냥 연주 현장의 공기가 얼마나 잘 느껴지느냐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현장감에서 디스커버리는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스피커의 최대 장점이 바로 현장감인데,
미안한 말이지만 안 들어보면 모른다.
물론 오케스트라 공연장의 분위기까지 그대로 옮긴다고 하면 뻥이겠지만
소규모 밴드 공연이나 가수들의 리사이틀 정도라면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에바 캐시디의 Live at Blues Alley를 플레이시켜보자.
그 조그만 홀 내에서 사람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스피커 밖으로 피어오른다. 진짜다.-_-
아쉽게도 다인이나 어셔, 토템은 현장감에선 결코 디스커버리 못 따라간다.
다른 항목에선 디스커버리와 대등한 부분도 있고 오히려 더 뛰어난 부분도 있지만
현장감이라는 부분에선 한참 못 미친다.
다만 주로 듣는 음악이 클래식이라면 이 부분에 큰 장점을 못 느낄 수도 있겠다.
어차피 오케스트라 공연의 현장감이야 넷 다 한계를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예상 외로 클래식의 실내악이나 독주에서는 뚜렷한 차이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디스커버리가 클래식보단 팝이나 재즈에 더 어울린다는 개인적인 평도
대체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 디스커버리 > 다인25 = 어셔718 = 마니2
8. 음색 & 질감 & 고역
허접한 비청기 지겨우실 테니 몰아 쓴다.
디스커버리는 담백하고, 어셔는 곱고, 다인은 진하다.
음색이나 질감이라면 아무래도 트위터의 영향력이 가장 클 텐데,
디스커버리는 스캔스픽 9700,
어셔는 다이아몬드,
다인은 에소타2를 쓴다.
내 취향엔 어셔와 다인이 비슷하게 좋았다.
다인의 에소타는 소문대로 찐득하고 섹시한 음색이다.
소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이런 음색에 매혹당하지 않기란 쉽지 않지 싶다.
한편 어셔의 다이아몬드 트위터는 달콤하면서도 소리의 입자가 가장 고운데
아마 이런 음색을 비싼 소리라 하지 않나 싶다.
오디오와 여성을 비교하는 얘긴 이제 좀 식상하겠지만,
에소타는 한채영을, 다이아몬드는 손예진을 연상시킨다. 뭐 다 좋다는 얘기겠다.-_-;
디스커버리도 좋다. 약간 까칠까칠한 음색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디스커버리가 더 맘에 들 수도 있겠다.
다만 어셔나 다인의 매력이 좀 더 보편적이지 않을까 싶다.
예컨대 앞서 예로 든 캐시디나 후지타를 플레이시켰을 때
목소리 자체만 따지자면 난 어셔나 다인이 좀 더 매력적으로 들렸다.
바이올린 소리 같은 경우에도 그렇다.
난 디스커버리의 바이올린 독주가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실망한 부분이 거의 없는 스피커지만,
예를 들어 이다 헨델이 연주한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같은 걸
디스커버리로 들으면 프로악 1sc나 어셔 s-520으로 듣던 것만큼의
전율적인 감동이 안와서 참 아쉬웠다.
근데 같은 현악기라도 첼로라면 얘기가 다르다.
첼로는 디스커버리가 넷 중에 가장 매력적인데,
앙드레 레비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같은 걸 들어보면
디스커버리가 보다 절절하게 호소한다.
피아노 소리는 어셔와 다인이 매력적이다.
이미지 때문인지 난 폴리니라면 늘 차갑기만 한 연주자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이 두 스피커로 폴리니 쇼팽 에튀드 음반 들으면서 오랜만에 감동했다.
폴리니의 크리스탈 톤에 이런 온기가 숨어있었단 걸 처음 느꼈을 정도.
아, 마니2도 좋다. 마니2의 트위터는 시어스의 메탈돔 트위터인데,
무척이나 청명하고 깨끗한 음색을 지니고 있다.
비청이라는 피곤한 놀이를 안한다면 충분히 만족하고 즐길 수 있는 음색이다.
다만 많은 오디오 애호가들, 특히 우리나라 애호가들은
마니2보단 다인이나 어셔의 음색과 질감을 좀 더 선호하지 않을까 싶다.
* 다인25 > 어셔718 > 디스커버리 > 마니2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