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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나 최대 출력 등 앰프를 평가하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앰프가 증폭기의 역할을 하는 이상, 가장 중요한 것은 증폭 방식, 그리고 그 증폭에 활용되는 핵심 소자(예를 들면, 진공관, MOS FET, 캔 TR, 그리고 OP 앰프 등)의 특성이 만들어 내는 증폭된 결과로서의 소리일 것입니다. 이번 와싸다에서 주선하는 공제가 주는 묘미 중의 하나가 증폭 소자의 선택 가능성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증폭 소자의 다름이 소리의 다름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볼 수 있는 재미까지 준다는 측면에서 공제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마케팅 측면에서 유명 증폭소자라고 불리 우는 부품들은 주로 고가의 앰프를 만들 때 사용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저렴한 가격에 명소자들이 내주는 소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 또 한 이번 공제의 가치를 높이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공제의 대상이 되는 두 앰프 모두 출력은 60 와트로 동일하지만, 선택 가능한 옵션은 두 가지입니다. 버퍼, 초단, 드라이브단에 채용된 J-FET인 FMJ 1111, 그리고 진공관과 TR의 중간 정도의 소리를 내준다는 On Semi의 캔 TR이 풀디스크리트 회로 안에 박혀 있는 T60이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MOS FET을 사용한 F60입니다. 저는 라임을 사용해보았던 사용자로서 라임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는 T60을 주저 없이 골랐습니다만, 이왕이면 하는 생각에 MOS FET의 부드러움까지 욕심을 내고 말았습니다. 재미있는 공제가 주는 덫에 걸린 것이지요.
일단, 멋 부리지 않았지만, 근육질의 소리를 내줄 것 같은 튼실해 보이는 외관에 단순하기만 한 center fascia 판넬, 볼륨 노브의 크기와 묵직한 조작감이 만족스럽습니다. 며칠 동안 전기를 먹인 후에 본격적인 청음에 들어 갔습니다. F60을 에이징 시킬 충분한 시간 여유가 아직은 없었던 관계로 라임 때문에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T60에 관해서 먼저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라임과 비교해볼 때 T60의 소리는 훨씬, 아니 아주 훨씬 더 어른스러워졌습니다. 더해진 소리의 굵기나 윤곽의 선명함이 소리의 성숙함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고, 증가된 출력 수치가 대변하듯이 스피커를 장악하는 능력도 출중해졌습니다.
스카닝 4 발과 문도르프의 리본 트윗이 달린 스트라빈스키2에 물려서 듣는 이은미씨의 목소리가 무겁게 공간을 채워 가기 시작합니다. 스카닝이 내주는 찰진 소리에 곁들여서 정말로 무겁게 그녀의 목소리가 깔리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를 잘못 재생하면 그 허스키함이 담배에 쩌들고 피곤한 상태에서 내지르는 갈라짐으로 들립니다. 소리가 메말라지면 목에 걸린 부하와 그 부하로 인한 고통까지 느껴지는데, T60은 예전 라임이 그러했 듯이 아주 촉촉하게 내뱉어 줍니다. 허스키함이 감정으로 승화 되는 연주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전달되는 소리의 “굵은” 에너지감과 다이내믹함은 노래하는 사람이 전혀 피곤한 상태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듯 합니다. 샤프란의 바하 무반주 첼로 연주곡도 첼로의 질감을 한껏 살린 바탕에서 독주 악기 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잔향감이 멋들어지게 표현됩니다. 공간이 음악으로 채워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로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은 재생음이 만들어 내는 가장 커다란 착각 중의 하나라고 새삼 느끼게 됩니다. T60이 갖는 특징 중의 하나인 정숙한 배경은 목소리는 물론, 연주 악기의 두툼하게 잡힌 소리와 묘하게 대비를 이룹니다.
지난 번 아이이어쇼 때 구입해서 한창 듣고 있는 Dusko Goykovich의 Samba Do Mar 앨범도 걸어 봅니다. 삼바 리듬의 다이내믹함과 금속성의 트럼펫 소리가 그 어떠한 자극도 없이 흥을 돋굽니다. 게다가 기타와 드럼 연주의 경쾌함은 삼바의 리듬감을 한껏 높여 줍니다. Richard Yongjae O’Neil의 Winter Journey는 끈적한 여름에 서늘한 시원함마저 줍니다만, 역시 고드름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움은 드러내지 않습니다. 스카닝의 콘지를 흥겹게 떨도록 만들어 주는 구동력, 두툼한 소리, 자극적이지 않지만 선명한 고역과, 소리의 중심을 잡아주는 중역, 단단한 저역을 감싸는 정숙한 배경이 모두 합쳐져 음질 만큼은 현대의 빈티지라고 불러도 될 만한 전형적인 캔 TR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지만, 정작 T60의 장기 자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3 년 넘게 체험해온 라임의 가장 커다란 장기는 공간에 음악을 채울 줄 아는 능력이었고, 음악 감상자로 하여금 음악에 결합된 감성과 교류하도록 만들어주는 능력이었습니다. 검은색으로 칠해진 투박한 샷시에 노브 두 개 달랑 달려 있는 몇 푼 안되는 앰프는 “나 쳐다 보지 말고 그냥 음악이나 들어.” 하듯이 전등을 끈 후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립니다. 그리고 촉촉한 재생음이 연주에 감정을 실어 줍니다. 오로지 싸다는 이유 하나가 “너에게 많은 비용을 들였는데 너는 어느 정도야?” 하는 비교의 잣대를 드리 댈 필요조차 없게 만들고, “그저 음악만 제대로 듣게 해준다면...” 하는 음악 감상자의 비워진 마음이 음악에 정녕 귀기울이도록 해주었습니다. 캔 TR이 자신의 증폭 기능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도록 해주는 회로와 부품 이외에는 별로 화장도, 그리고 단장도 하지 않은 내부가 음악 감상자의 마음을 비우게 하는 것일까요?
라임과 비교하면 기초 화장이라도 한 얼굴, 업그레이드 된 부품 때문에 약간은 높아진 가격 등등이 캔 TR이 만들어내는 고급스러운 음에 쓸 데 없는 트집이라도 잡게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약간의 걱정을 하게 만들었습니다만, 역시 기우였습니다. 한껏 성숙한 모습으로 선을 보인 T60은 그 전의 라임보다 훨씬 능숙한 솜씨로 음악 감상자를 이끌어 갑니다. 타격감, 다이내믹함, 고요함 속의 리듬감 등 그저 음악만 발라내는 능력이 다른 곡으로 바꾸는 움직임조차 미안하게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불이 꺼진 후에는 음악과 감상자만 남겨 놓습니다. 음악이 애절해지면 감상자의 마음도 함꼐 애절해지고, 음악의 진동이 주는 에너지감이 커지면 심장 박동도 함께 빨라집니다. 음악적이라는 말을 이런 때 사용해도 될까요?
여러 음식점을 잘 살펴 보면 주재료의 맛을 중시하는 곳이 있고, 양념이 가미된 맛을 중요시하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주재료 중심인 음식점의 양념은 주재료의 맛을 한껏 살려주는 역할을 할 뿐이지만, 양념을 중요시하는 곳의 주재료는 양념을 묻히는 보조 재료의 역할을 합니다. 양념의 맛이 좋다고 한 들 결국 음식 선택의 기준은 주재료가 무엇인가로 귀결됩니다. 꽃등심은 자주 먹을 수 있어도 주물럭은 자주 먹기 힘들거나 쉽게 물리는 이유가 그런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소리를 내주는 기계도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겠지요. 그리 높지 않은 가격에 J-FET과 캔 TR의 따스하고 힘찬 소리를 들려주는 T60이야말로 바꿈질에 지친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고향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메인 기기 앰프 역할을 하든, 서브 앰프 역할을 하든 말이지요.
오늘 저녁 여러 분은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한 가지는 기억해두셔도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앰프의 가격에 맞춰서 기기를 대접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이 넘은 그것보다 훨씬 비싼 가치를 가진 놈인데, 그냥 멋부리지 않고 수수한 것을 좋아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대접해준만큼 그 능력을 보여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