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카시오페아 입실론S (2008, 2010)
5년이 되도록 그렇게 잠잠히 지내고 있는데, 그 사이 오디오에 빠진 친구 하나가 오디오쇼에 같이가자 하기에 따라 나온 것이, 전보다 더욱 심각한 오디오열병의 시작이 될 줄이야...
살면서 보면 어떤 전환점에는 항상 계기가 있다. 그 특정 event의 유무에 따라 수년 혹은 수십년 기간동안의 인생의 모양이 바뀌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오디오쇼에서 한번 귀를 버리고 나니, 괜히 집에 있던 시스템에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실제로도 시스템의 5년간의 에이징을 통해 소리가 처음에서 바뀐 것 같았는데...
앰프가 오래되서인지 고음이 좀 거칠어진 듯도 하고, 우퍼의 서스펜션이 물러졌는지 저역의 양감도 늘은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중역이 좀 허전해진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다시 새로운 시스템의 소리가 궁금하기도 하고...
결국 잘 듣던 콘체르토홈과 오디오랩8000A를 방출하고, 카시오페아 입실론S와 제프롤랜드 콘센트라를 들이게 된다.
입실론S는 스캔스픽 레벨레이터 7000 트위터와 스카닝15H 미드우퍼를 채용한 덕트형 2웨이 북쉘프로, 당시 중고 구입가는 185만원이었다.
최고의 유닛으로만 도배를 한 이 스피커를 통해, 스카닝이란 유닛의 대단함을 알게 되었고, 하이엔드 트위터의 섬세함이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저역은 이게 5인치라는 것이 도데체 믿기지가 않는다. 깊이도 내려갈 뿐만 아니라 그 힘이 굉장한 것이다. 총주시 내 허벅지가 떨리기에 이게 무슨 현상인가 보니, 쇼파의 가죽이 우퍼의 저음에 같이 떨리면서 내 허벅지를 두드리고 있었다.
스카닝은 스카닝만의 저음이 있다. 구릉 과르릉 거리는 흡사 천둥의 울림과 같은 것이 그것인데, 약간 공포스러운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느낌은 콘센트라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았고, 이후 장만한 리비도 P35(V4모듈)프리와 M35워에 물렸을 때에 제대로 느껴졌다. 리비도 또한 저역에 특유의 공포감이 서려 있기에(반드시 모듈이 V4 이어야 한다), 스카닝과 리비도, 이 둘이 만나면 곧 천둥의 울림이 만들어진다.
참고로, 입실론S에 사용된 15H는 현재 사운드*럼에서 판매하고 있는 15H와는 스팩이 좀 다르게 저역이 더 깊게 내려간다. 이건 카시오페아에서도 밝히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둘 다 직접 사용해 보아 알고 있다.
스카닝제 5인치는 15H(사운드*럼)와 4H가 있고, 전자가 중역 및 맑음이 우수한 반면 저역은 좀 약한데, 후자는 저역이 강력하나 중역이 두텁되 그리 맑지가 않다. 그러나 입실론S의 15H는 4H의 저역과 15H의 중역을 가진 듯 하다.
크로스오버 대역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으며 자연스럽다.
제프롤랜드의 음은 독특하다. 흔히 제프의 고역에는 광채가 있다고 한다. 동감한다.
제프는 콘센트라 인티와 모델2 파워를 사용해 보았는데 둘 다 마찬가지로, 음결의 끝자락을 예리하면서도 품위있게 그려내는 독특한 재주가 있다. 그 결과, 바이올린 소품을 듣고 있으면, 어느 고급 호텔의 아주 노블레스한 분위기의 연회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며, 그곳에서 잔잔하게 퍼지는 BGM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여기에 스캔스픽 레벨레이터 트위터와, 또 뽀샤시한 호블랜드 콘덴서의 음색이 더해지니, 고역의 고급스런 섬세함이란 정말 감탄할 정도인 것이었다.
모두 잠든 고요한 밤에, 아주 미세한 볼륨으로 듣는 바이올린 소나타의 그 섬세하고도 섬세한 현의 울림은 정말 황홀할 정도였다.
아마도 이런 음은 제프와의 조합에서만 들을 수 있을 듯 싶다.
저역의 천둥같은 울림은 리비도에서만, 고역의 황홀한 섬세함은 제프에서만 나오니,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싶은데 안되는 것이다.ㅠ.ㅠ
저역은 리비도로, 고역은 제프로 멀티앰핑을 구사하지 않는 한, 모두 취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여간 이 뿐만 아니라, 오디오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어 있고, 둘을 모두 취하려면 엄청난 비용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경험이다.
앰프도, 저역을 잘 하면 고역을 잘 못하거나, 또는 고역을 잘 하면 저역을 잘 못한다. 이 둘을 모두 잘 하는 앰프가 있기는 있는데, 소위 하이엔드 대출력 분리형들 중에서나 만날 수가 있었다.
이 입실론S는, 그래도 5인치의 한계인 저역의 깊이에서 아쉬움이 들어, 결국 방출을 하게 되지만...
그 인상적인 기억에 결국 2년후인 2000년도에 다시 들이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단점을 발견한다.
1998년도와 2000년도의 차이는, 내가 스피커 자작을 시작하기 전과 후의 차이로, 곧 나름 좋은 소리에 대한 기준이 정립되고, 소리에 대한 판단 기준이 보다 구체화되고 요령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후 다시 들어본 입실론S는, 밸런스가 저역은 좀 과다하고, 미드우퍼의 2kHz 부근 대역의 음압이 약간 높아 약간의 빈티지적인 음색이 느껴지고, 결과적으로 낮은 중역대는 좀 마스킹이 되는 상태로 들렸다.
이 약간의 빈티지적 튜닝은 스캔스픽7000 트위터 특유의 3kHz 부근의 높은 피크감을 내버려두지 않고 다스리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으로, 다른 이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20. ATC SCM35 (2008)
오디오쇼의 그 친구가 수 개월간 대여해 준 스피커로, 덕분에 실컷 들어볼 수 있었다.
SCM35는 비파의 저가형 소프트돔 트위터에, ATC 고유의 3인치 돔형 미드레인지에, ATC 고유의 두꺼운 페이퍼콘 7인치 우퍼로 구성된 밀폐형 3웨이 스피커이다.
ATC 음은 독특하다. 고역은 롤오프가 심하면서 어둡고, 중역은 두께감과 밀도감이 굉장하고, 저역은 그 윤곽이 불분명한 쪽의 구동이 어려운 성향이면서 굉장히 묵직하다.
그 결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당히 마력적인 중역을 자랑한다.
그 중역은 물론 네트워크 튜닝도 영향이 있지만, 그 돔형 미드레인지 유닛 때문이다.
2웨이의 경우도, 비록 돔 미드는 채용되어 있지 못하지만, 미드우퍼의 더스트캡이 그냥 더스트캡이 아니라 바로 돔형 미드레인지 그 자체인 것이다.
그리고 ATC는 미드이든 우퍼이든 진동판을 무겁게 하여 엄청난 크기의 마그넷으로 구동시키는 방식이다.
SCM35의 고역은 별로 할 말이 없다. 멍청하고 롤오프되어 있고... 그러나 이건 혹여 트위터가 자기를 나타내려다 그 아랫대역인 중역의 빛을 가려버리지 않도록, 고역이 튀지 않게 고의적으로 죽여버린 것이다.
그렇게 살려낸 중역은 참 대단한 것이, 그 보컬음에서의 밀도감과 두께감과 질감은 ATC의 트레이드마크인 것이다.
이 돔 미드의 할당대역은 스팩상 380Hz 부터 2800Hz로, 돔형 치고는 상당히 넓은 중역대를 커버하고 있기에, ATC35의 소리에는 이 돔 미드의 음색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역은 밀폐형이지만 제법 깊게 내려가면서 묵직하고 강력한 편인데, 그 윤곽이 좀 불분명하고 앰프밥을 많이 먹는 것이 단점이다.
오래 들어도 귀가 피곤하지 않고 음악에 몰입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중역의 중역에 의한 중역을 위한 스피커, 취향에 맞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취향에 맞지 않으면 뭐 이런 스피커가 다 있나 할 스피커가 ATC 일 것이다.
다만 전체적인 해상력은 그리 우수하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