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설명하기 전에, 설명 그 자체와 더불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군요..
음악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겠죠..
먼저 작품이 주는 영상이미지와 분위기들을 묘사해봐야 하겠습니다.
자이언트로보라는 거대 로봇 소품이 어린이용 만화를 연상시키지만, 이 작품이 달성해낸
영상미는 실제로 기대 이상입니다.
100미터 이상의 거대한 철 거인의 장엄한 동작 하나하나가... 그 크기답게 압도적인
중량감으로 연출되고, 수려한 장관을 이루는 이 애니매이션 영상에는 실사영상 이상의
에너지가 담겨 있습니다. 작품에 로보의 첫 등장씬에서 이 거인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진동에 깨져나가는 건물들의 창문과 지지직거리는 네온사인 장면은 볼때마다
그 리얼한 중량감의 연출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얼굴로 디자인되어 있는 이 로봇이 주인공인 다이사크 소년의 음성에
의해 조종되고, 공격에 실패해 오른손 주먹이 파괴되었을 때, (메카닉설정상) 내장되어 있는
원자로의 열 폭주를 막기 위해 냉각수를 급속 방출하는 장면에서 마치 로보의 얼굴에서
우는 것처럼 눈(헤드카메라)부분에서 눈물 쏟아지듯 냉각수를 방출하도록 만든, 상황
연출의 감각적 아이디어도 힛트죠.^^
무엇보다도 전에 말씀드렸듯이 죽기 직전의 다이사크 박사가 아들 다이사크 소년에게
살면서 답을 구하기를 바라는 그 질문, '행복이란 진정 희생없이는 얻을 수 없는가?' 라는
질문은 크게 생각해서 세계각국의 역사에서도 그냥 넘기기 어려운 질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극중 주인공 소년과 부렬성의 능력자인 무라세메가 나누는 대화 장면에서 이 소년은 여지껏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그제야 깨닫고, 그 책임성과 알수 없는
죄책감에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왜 자신이 그토록 보호되어야 했는지를 잔인한 현실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이때 흐르는 음악은 이들의 대화 내용이 진실에 접근함에 따라 매우
정확히 고조되고 최고의 고양점에서 무라사메가 충격적인 재현을 하면서 음악이 딱 멎어버리는
정밀한 음악 연출을 볼 수가 있습니다. 관객은 이 장면에서 '얼마든지'희생할 용의를
가지는 무라사메가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대화를 다이내믹하고도
감동적으로 뒷받침하는 음악.. 이 장면의 인상이 기억에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이 자이언트로보-지구가 정지하는 날-의 OVA(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매이션) 시리즈는
많은 생각할 거리와 함께 여러 가지 애니매이션적 업적을 달성한 작품입니다.
이 업적에는 잠깐 설명했듯이 화려한 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트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으로 처음 폴란드의 비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애니매이션 O.S.T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자이언트로보 O.S.T는 전 8권의 앨범으로 발매되었습니다.
스코어 연주는 모두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바르샤바 필하모닉 코러스가
작곡자 아마노 마사미치의 지휘로 맡고 있습니다.
주선율인 [국제경찰]의 테마는 이 작품의 작곡가가 얼마나 의욕을 갖고 작곡에 임했는지를
말해주는 작품입니다. 작곡가 아마노 마사미치는 영국과 미국의 음악원을 수료한 국제파라고
합니다. 그는 이 작품에서 4관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그리고 파이프오르간과 솔리스트들을
활용하면서 특유의 응축된 듯한 사운드를 담아냅니다. 그리고 애니매이션 영상의
로보의 폭발적인 액션에 맞춘 듯한 심포닉 사운드를 유감없이 뿜어냅니다.
그러다가 때로는 현악 4중주 등의 실내악으로, 때로는 바이올린 소나타로, 때로는 기타 5중주.
때로는 피아노협주곡 등의 구성으로 그때그때 영상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이 음악은
이미 이 애니매이션 시리즈의 절반 이상입니다.
예를 들어, 작품중 프랑켄 폰 포그러 박사의 정체를 알게 되는 4부의 내용중 흘러나오는 트랙
중에 타르티니의 소나타 '악마의 트릴'의 쥬 선율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 현악4중주가 흘러나오는데,
영상에 상황을 설명하는 고학인의 나레이션과 오버랩되면서 등장하는 포그러박사의 쓸쓸한 모습에
기가 막히게 아름답게 화하는 그 차분함과 고독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 첫번째 안티필드-정지현상-이 동작하면서 도시의 전원이 차례차례 꺼져나가고
전체가 암흑에 휩싸일 때, 묵시적 장엄함의 파이프오르간 페달음의 지옥 밑바닥까지 닿을 듯한 저음
그리고 지구 정지의 참혹함을 선포하는 듯한 바주의 오케스트라의 외침 속에
다시 한번 포효하는 오르간의 페달음과 합창단이 상황을 종료합니다.
아쉬운 건 이 작품이 좀더 예산이 충분한 극장용 장편으로 다시한번 만들어지면 어떨까 하는
바램인데.. 이미 상당히 오래된 작품이라 실현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지금의 시리즈
애니매이션에서도, 시리즈 애니매이션으로서 너무나 좋은 애니매이팅 퀄리티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 사운드트랙 앨범들은 레코딩에 있어서도 바르샤바 필하모닉 홀의 홀톤을 충분히 살린 녹음으로
주목받습니다. 단 1개의 일본어 트랙도 없으므로 국내출시의 무리없는 실현을 기대해볼만도 한데,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군요. 저도 일본에 가는 친구에게 부탁해 전8권의 앨범들을 장
당 평균 3만5천원 정도의 '보따리 단가'로 구했는데, 한동안 참 많이도 들었던 곡들이었습니다.
이 곡들에 단점이 좀 잇다면 [당시에] 젊었던 작곡가의 정열이 지나쳐 촌스러워지기까지한 부분이
좀 띈다는 것입니다.^^ 또 단기간에 많은 곡을 작곡한 때문일지 모르지만 클래식 명곡들의
선율들을 차용하여 곡을 만든 것들이 발견됩니다. 이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차용을 해냈기 때문에
그다지 나쁜 것으로 인식되지는 않습니다.(유명 헐리웃 스코어들도 그런 곡들은 많이 발견됩니다.)
극중에 프랑켄 폰 포그러 박사의 아무도 모르는 비극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푸치니의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파바로티의 젊은시절 음성으로 배경음악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극의 당사자들인 포그러 집안의 남매들의, 비극의 실상을 알게 해주는 대화가 이어지고,
이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흐르면 어느덧 보는 사람들마저
이들의 슬픔과 절망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 인간사회에서는 메이저, 그리고 마이너리티가 있고, 빛과 그늘이 있습니다.
이런 마이너리티와 그늘을 잊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존재하는, 의미를 가진 모든 걸 인정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작품에 교훈이 있다면, 바로 그 점일 것 같습니다.(정말 교훈도 꽤 있긴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폭발적인 애니매이션 영상의 거대 로봇의 장엄한 액션과, 또 폭발적으로 작렬하는
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트랙! .........이 강력한 매력포인트입니다.
이 [자이언트로보-지구가 정지하는 날]을 주저 않고 "열혈"의 수식어를 지니는 영상물로서
정리해보겠습니다. 아마 실사영화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한 작품이기도 한데..
(돈 많이 들겠죠. 전 세계를 망라해야 하니..) 애니 캐릭터의 이미지가 유지되기 힘들 테니
접어두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