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ATA 케이블 교체 사용기를 모집했던 전동환입니다.
몇 분이나 올려주실까 걱정도 했는데, 총 19분이나 되는 회원님들께서 본인의 사용기를 공유해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다양한 회원 여러분의 PC-FI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9명의 사용기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게다가 여러 변인이 통제된 환경에서 실험을 한 것도 아니므로 이 자료를 통해 과학적인 결론을 낼 수는 없습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사용기를 남겨주신 분들의 음질 판단이 플라시보가 아니라 는 전제하게 작성된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설문조사를 근거로 SATA 케이블로 인한 음질 논쟁을 종식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요약 ===
총 19분의 사용기 중에 16분(84.2%)이 음질 차이를 느끼셨다고 했습니다. 단 한 분이 잘 모르겠다 (5.3%), 두 분(10.5%)이 차이가 없었다고 답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84%라는 높은 수치에 놀라웠습니다. 물론 플라시보가 얼마나 섞여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과거 와싸다에서 논쟁이 된 여러 항목들 (USB 케이블, 파워 케이블 등)에 비하면 꽤나 높은 수치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이 차이가 없다고 답하신 분들의 시스템 가격이 차이가 있다고 답하신 분들에 비해 낮은 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신품 가격 200만원 이상입니다.) 경제적 능력이 안되는 저같은 사람에게는 좀 불편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 시스템은 되어야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하신 분들의 이야기와 사용기가 일치하는 부분이었습니다.
=== DAC 인터페이스 ===
다음으로 DAC에 사용된 인터페이스 별로 사용기를 정리해 봤습니다. USB -> DDC -> DAC을 사용하신 경우, DDC -> DAC 인터페이스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동축 및 AES/EBU: 5
I2S (Mulink 등): 5
USB: 4
미확인: 4
광: 1
“미확인”란은 남겨주신 정보만으로 어떤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셨는지 분명치 않은 경우입니다. DAC에서 여러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데 케이블 정보를 남겨주지 않으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설문지 작성을 보다 꼼꼼히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부분은 I2S 사용자가 많았다는 것과 광케이블 사용자가 적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사용기를 남겨주신 분들이 SATA 케이블을 바꿔볼 정도로 열정적인 분이라 일반적인 와싸다 유저분들의 분포와는 좀 다를 것으로도 생각됩니다.
== 두 가지 가설 ==
SATA 케이블이 음질을 바꾼다고 한다면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널리 알려진대로 SATA 케이블은 비트 퍼펙트 전송을 깰 수 없습니다.
가설 1: SATA 케이블은 USB 혹은 SPDIF의 지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SATA를 통한 데이터 전송과 USB 혹은 SPDIF 전송의 클럭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 박도진님께서 재미있는 의견을 내놓으셨습니다. SATA 케이블 교체가 직접 지터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지만, SATA 케이블 교체로 인해 노이즈가 줄어든다면 메인보드에서 생성하는 USB 클럭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게다가 USB 클럭을 생성하는 칩은 일반적으로 메인보드의 SATA 케이블 커넥터와 가까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SATA 케이블 교체가 지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개연성은 있습니다.
가설 2: 김영상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이 제기해주신 가설입니다. 컴퓨터의 노이즈가 동축 또는 USB를 타고 DAC으로 침입해서 DAC의 아날로그 출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럼 이제 두 가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 가설 1: SATA 케이블 노이즈에 따라 생성되는 USB 클럭에 영향이 발생 ===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저는 TX-USB를 사용하신 분들의 사용기를 참고했습니다. TX-USB는 PCI슬롯을 사용하는 USB 카드로, USB 오디오 전송에서 보다 적은 노이즈와 보다 나은 지터 특성을 보인다고 이야기합니다. 일반적인 USB 연결을 사용하는 경우 메인보드에서 USB 클럭을 생성하지만 TX-USB를 사용하는 경우 자체적으로 USB 클럭을 생성합니다. 이 경우 SATA 케이블과의 거리도 멀기 때문에 가설 1이 참이라면 TX-USB를 사용한 분들의 경우 음질 차이를 느끼지 못하셔야 합니다.
사용기를 남겨주신 분들의 37%에 해당하는 분들(7분)이 TX-USB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분의 예외도 없이 7분 모두 음질 차이를 느끼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7분들의 청음기를 근거로 할 때 가설 1은 참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 가설 2: 컴퓨터의 노이즈가 동축 또는 USB를 타고 DAC으로 침입 ===
이론상 컴퓨터의 노이즈가 동축 또는 USB를 타고 DAC으로 침입해서 DAC의 아날로그 출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SATA 케이블이 PC 내부의 노이즈 패턴에 변화가 시켜 최종 음질에 변화를 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컴퓨터 내부에 SATA 케이블 말고도 노이즈를 방출하는 부품들이 매우 많기 때문에 “왜 하필 SATA야?”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PC 내부의 부품들이 각자 어느 정도의 노이즈를 발생하는지에 대한 데이터도 없으므로 섣부르게 이 가설을 기각할 필요는 없겠지요.
가설 2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광케이블을 사용한 시스템에서 케이블을 교체하며 청음해보면 됩니다. 광케이블을 사용하는 경우 전기적으로 컴퓨터와 분리되기 때문에 노이즈가 발생할 가능성이 차단되므로, SATA 케이블에 따른 음질 변화를 못 느끼셔야 합니다.
아쉽게도 전체 19분 중에서 한 분만이 광케이블을 사용하셨습니다. (미확인 네 분 중에 광케이블을 사용하신 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분은 음질 차이를 못느꼈다고 응답하셨습니다만, 샘플이 너무 작아서 섣불리 이에 근거한 어떤 주장을 펴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 요청 사항 ===
사용기를 올려주신 분들의 청음기가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음질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은 컴퓨터의 노이즈가 동축선 또는 USB 선을 타고 DAC으로 침입했다는 것 뿐입니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광케이블을 사용해서 컴퓨터와 DAC의 전기적 연결을 끊어보면 됩니다. 만약 동축 케이블을 사용했을 때 SATA 케이블에 따른 음질 차이가 느껴졌는데 광케이블 사용시 그렇지 않다면 이 가설을 지지하는 유력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사용기를 남겨주신 여러분들의 시스템을 보면 광케이블 연결이 가능한 시스템도 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SATA 케이블에 따른 음질 차이 원인 규명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광케이블을 사용한 상태에서 SATA 케이블을 바꿔가며 청음해보시고 그 결과를 공유해주시면 현재 가설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매우 개인적인 결론 ===
컴퓨터 엔지니어인 제게 있어 SATA 케이블로 인해 음질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당혹스럽습니다. 하지만 꽤 많은 분들이 차이가 있다고 말씀하셔서 데이터를 모아봤고, 그 결과 19분 중 16분이 SATA 케이블 교체로 효과를 봤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용기를 바탕으로 SATA 케이블 변화에 따른 음질 변화를 설명할만한 근거를 찾아내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아직 반박되지 않은 가설이 하나 있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께서 참여해주시면 가설 검증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80%가 넘는 긍정적인 답변으로 볼 때, 저렴한 케이블이라면 ‘재미 삼아’ 교체해볼만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3천원 미만의 케이블 중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케이블이 있다고 합니다.) 결국 즐겁게 살자고 하는 오디오인데, 이런 잔재미 또한 오디오 생활을 즐겁게 하는 요소가 아니겠습니까. 20만원이 넘는 케이블이라면, 저는 안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 개인적 의견일 뿐이죠.
다시 한번 사용기 남겨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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