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원부가 분리된 ASR 에미터 2 앰프와 윌슨오디오 사샤를 새로 들이고 한참 애지중지 하고 있는 매제녀석 (어릴적부터 친구이기도 합니다)에게 갑작스레 치기가 발동하여 주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가앰프를 사샤에 한번 물려보자아!'
처음에는 실없는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허탈하게 웃더니 곧 왕년의 객기를 회복하고 흔쾌히 저의 장난에 동참해 줍니다.
수치상의 스펙으로 볼 때 사샤가 4옴에 최저 허용 앰프 파워가 채널당 20와트, 사가앰프가 8옴 기준으로 채널당 20와트이므로 뭐 못 울릴 것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이나케 달려가서 우선 사샤, ASR, 코드 MK2로 구성된 레퍼런스급 하이파이 시스템이 뿜어주시는 Antal Dorati의 1960년 판 1812년 서곡의 내장을 저미는 듯한 대포소리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두손모아 경청한 뒤 눈물 한방울을 찔끔 흘리고는 엄지손가락 굵기의 스피커 케이블을 ASR 앰프로부터 분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GL-20의 초라한 바인딩포스트에 간신히 연결하였습니다.
소스는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코드 레드 레퍼런스 MK2 invicta 시디피였는데, 사가앰프에 연결할만한 마땅한 cable이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어딘가에 박혀있던 먼지묻은 LG 미니컴포용 번들 RCA cable을 물렸습니다.
호기심 반 장난 반 둘이서 키들거리며 전원을 넣습니다. 마침 시디피에 걸려있던 트랙이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Eb 장조 (장학퀴즈 배경음악 -_-)였는데, 어땠을까요.
굳이 이렇게 게시물까지 올릴 때에는 예상밖의 결과였기 때문이란 걸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트럼펫 서주가 시작되어 방안에 울려퍼지자 우리는 마주보며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어랏! 괜찬쿠나 이거.'
현 시스템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 매제녀석에게 미안해서 훌륭하다고까지는 못하겠지만 의외로 아주 썩 괜찮았습니다.
LM 계열 파워 IC 칩 딸랑 두알로 구성된 소위 '게인클론' 자작 앰프 급의 15만원짜리 싼마이 녀석 치고는 일단 구동면에서 파워는 전혀 딸리지 않았습니다.
저역도 제법 안정감있게 받쳐주고 고역도 쭈욱 뽑히는 것이 둘이서 아무말 없이 한참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 뒤 현과 피아노 곡들을 차례로 들어보면서 감히 하이파이 레퍼런스 가의 귀공자들 사이에서 주제도 모르고 감히 미스 사샤에게 껄쩍 거리고 있는 헝그리 GL-20의 흠잡을 곳을 찝어내기 위해 귀를 곤두세웠습니다.
찬찬히 뜯어서 들어보니 확실히 기존의 ASR 앰프에 비해 저음에 대한 반응 스피드가 살짝 느린것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15만원짜리 앰프의 댐핑능력 한계라고 해야 하겠지요. 그 밖에 굳이 흠을 잡자면 각 악기파트의 위치에 대한 입체감이 떨어지고 평면적인 감이 있으며, 스테이지가 좁고 저역이 타이트하지 못하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전원부 및 입력부 분리에 배터리 구동부까지 별도로 구성되어 있는 3천만원에 육박하는 ASR에 비해서 말이지요... 비록 잠시동안의 청음이었지만 무려 200배 이상의 가격차이가 나는 시스템간의 차이를 저는 '찬찬히 뜯어' 들어본 후에야 인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그러한 차이가 음악감상에 방해가 되는 수준이었나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무례한 GL-20을 어여어여 내몰고 다시 ASR 에미터2 익스클루시브를 다시 원래자리로 모셔왔습니다.
역시 레퍼런스급 하이파이 시스템은 미려하고 품위있는 음질로 위용을 뽐냅니다.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사샤는 이전 시스템이었던 훨씬 고가의 카르마 익스퀴짓 보다 오히려 한 단계 음악적으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이 번 치기어린 실험 또는 장난을 통해 지극히 상투적인 오디오 격언이 다시한번 진리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시스템의 가격 격차의 갭에 비해 우리가 실제 귀로 느끼는 시스템의 음질상 갭이라는 것이 얼마나 좁은 것인가. 음악을 음악으로 듣지 않고 이상적인 시스템이라는 허상만을 쫓아 고가의 시스템을 전전하느라 정작 음악이 주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이 글은 싼마이 GL-20이 ASR에 육박하는 명기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글의 요지는 극단에 있는 하이파이 앰프와 보급형 앰프의 실제 체감 음질상의 차이라는 것이 가격차이처럼 확연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관한 겁니다.
물론 저의 청음능력의 한계가 레퍼런스 시스템의 진가를 파악하는데 버거운 일천한 것이기에 더욱 그러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더더군다나 저로서는 고가 기기에 욕심을 내서는 안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사가코리아 GL-20 미니인티앰프
윌슨오디오 사샤
코드 레드 레퍼런스 MK2 인빅타
사가앰프를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는 ASR 에미터2 익스클루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