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면서 앰프가 작동하질 않아 허탈감이 컸다.
나름 신경써서 옮긴 물건들이고 그 중량들 때문에 내혼자 셋팅하느라 정말 애먹었다.
앰프를 두 종류를 쓰고 있는데, 하나는 국산 기성품중 최대크기 최고중량의 태광 아너 M-375요, 또 하나는 국내 공제작품 중 최대인 오디오인드림의 레퍼런스-1이다.
M-375는 85KG에 출력 375와트이고, 모노 방식의 레퍼런스-1은 한 쪽무게만 47KG에 축력 500와트이니 둘을 합쳤다면 95KG이 넘을 뻔했다.
방이 하나 더 생격 레퍼런스 원을 책방에 두고 M-375를 거실에 비치했는데 문제는 둘 다 작동하지 않는데서 발생했다. 하이파이게시판에 증상을 이야기 했더니 휴즈문제일 것이라는 도움 글이 있었다.
인켈 모델은 뒷면에 있는 것들이 왕왕있어 커버를 벗길 필요도 없던데, 이건 밖에서 퓨즈 출납하는 곳이 없다. 하여 배를 따기로 결정. 웬 나사가 그리도 많던지...껍데기 벗기는데 나사가 26개던가...손아귀 힘이 다 빠진다.한데..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퓨즈있는 곳이 없다. 30분을 PCB판을 뺏다꼈다하다가 포기.
무거운 걸 낑낑대고 한시간 넘게 가지고 있으니 오가던 마누라는 우리 신랑 못하는게 없다...참 대단하다...라며 추임세를 넣는 통에 그냥 망연자실 30분을 더 앉아 있었다. M-375는 아예 엄두가 더 나질 않아 포기.
이사할 때 마다 버리자...무거운 것 다 버리자...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면서도 막상 버리지 못하다가 그 중량들에 질려 한꺼번에 버리게 되는 물건들이 있다. 이번에 주 대상은 책, 대학때 부터 쓰던 가구들이 버림을 받았다.
그러나 가구제외 단일 아이템 중에 제일 무거운 오디오 관련 제품들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위의 앰프 말고도 90KG짜리 오석 받침대 2개, 50KG짜리 오석2개, 27KG짜리 CDP 등등,.. 이사하는 아저씨들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어도 오디오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품들이라 생각하고 고집스레 들고 다녔다.
한데 앰프들이 반란을 일으키니 한꺼번에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오디오 접고 간단한 AV시스템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년전 아이가 태어난 이 후부터 마누라에게는 100만원짜리요 내 회계장부로는 1000만원짜리인 오디오가 토해내는 음악은 90% 동요일 뿐이다. 아이는 즐거움과 행복의 원천이지만, 오디오 생활을 하는 데는 마누라보다 몇십배 무서운 존재이다.
기기 정리를 하자하고 안쓰던 물건들을 살펴본다. 먹통이된 20KG짜리 파이오니아 LP플레이어, 안쓰던 오디오인드림의 SGT-2튜너, 인켈 프리...
기기들을 버리자니...갑자기 가슴 한 구석이 미어 터진다. 기기도 기기고 이 몇백장 LP판은 어쩔 것인가..이것도 다 버려야 하나...20-30대 없는 돈 탈탈 털어 대학교 앞 레코드 점에서 산 것, 청계천 황확동 시장에서 산 것..생일 선물로 받았던 것.. 하나 하나 모으던 기억들이 반기를 든다.
몇일을 더 고민하다 출장수리기사를 부르기로 결정했다. 용산같은데 들고가서 수리 받는 것이 빠르겠으나 도저히 80-90KG짜리들 들고 다닐 힘이 없다. 이리 저리 수소문해 기사가 왔다.
앰프 두대 고치는데 도합 10분. 쓰지 않던 튜너 안테나 다는 법 강의 5분. 도합 15분도 되지 않아 모든 문제가 사라졌다. 먹통이던 앰프들이 생기있게 음악을 내 뿝는다.
엉망이라 생각했던 SGT-2튜더도 너무 훌륭해 보인다.
앰프가 작동하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 간단했다. M-375는 보호장치가 이중으로 되어 있어 작동단추를 누르고 나서 5초 있다 다시 눌러야 정상작동이 되는데 이사 오면서 이 기억을 잊어먹은 것이다. 몇년을 그렇게 써왔는데, 단추한번 누르고 작동이 안된다고 한탄하고 있었다니.
레퍼런스-1의 상태도 비슷했다.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퓨즈 넣는 곳이 파워케이블 넣고 빼고 하는 곳 바로 밑에 있었다. 파워케이블을 빼는 중에 새끼손가락만한 퓨즈박스도 같이 빠져 버린 것이다.
M-375는 단추한번 더 누르는 것으로 수리끝, 레퍼런스 1은 퓨즈 하나 넣는 것으로 수리 끝. 대략 20분에 수리비 10만원....
이삿짐 센터 아저씨를 원망하고 사라져버리 태광 오디오부서를 원망했던 것들이 결국 내 무지함의 소산일 줄이야...^-^
돈주고 산 기계라도 작동법과 최소한의 AS지식이 없다면, 그 기계는 내 기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있는 것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
책방에는 레퍼런스에 컴퓨터에 물려쓰던 자작 5와트짜리 북셀프를 물렸다. 마루에는 375에 플로어형 스피커를 물렸다. 500와트 출력에 5와트 스피커라..어불 성설..하지만 모두 훌륭하다.
아이도 자고, 마누라도 잠든 밤,
불끄고 창밖을 보면서 케니지와 올리비아 뉴톤존, 뉴트롤스, 헝가리무도곡, 둠키, 김추자, 김세환, 정훈희 노래를 듣는다.
모처럼 음악에 빠져든 밤이다.
그러나, 군고구마를 먹으며 다시 한번 결심한다. 다시는 무거운 기계 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