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바람불어 좋은 날> 이라는 영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영화를 보지 않은 나로써는 도대체 바람 부는 날이 뭐가 좋은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오늘 강릉의 날씨를 말하자면 바람이 무척이나 많이 불었던 날.
영화식으로 말하자면 엄청 좋은 날이 되겠지?
어쨌든 바람이 불어서 좋았든지 그렇지 않았든지
오늘 내게는 모처럼 한가한 날 오디오에 전기를 잔뜩 먹이고
오후 내내 음악을 듣는다.
먼저 자메이카 출신 Harry Belafonte씨의 1959년 카네기 실황공연.
RCA에서 나온 음반인데 40년이 훨씬 더 된 '옛날'에 녹음 한 것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음질이 뒤어 나다.
10년도 안 된 90년대 후반에 예술의전당에선가 어디선가
실황을 녹음한 최현수의 음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사실 최현수의 음반이 토스티의 가곡이 들어 있어서 사긴 했지만
그 한심한 녹음 수준에 얼마나 실망을 했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음반사에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이런 걸 돈 받고 팔 생각을 했냐'고
가시돋힌 말 한마디 하지 않은 내 인내심을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 였다.
어쨌든 그건 그렇고 하루키식의 표현대로
'축음기 나팔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빅터 레코드사의 개처럼'
온 신경을 곤두 세워서 음악을 듣지 않아도 좋은 편안하게 벽에 반쯤은 기대서
누운듯 앉은듯 애매한 자세로 해리 벨라폰테를 듣는다.
아니 해리 벨라폰테는 꼭 그런 자세로 들어야 제 맛이다.
고전음악이 아닌 대중음악으로 카네기홀에서 처음 공연을 한 해리 벨라폰테의
이 음반에 들어 있는 곡들 하나 하나가 다 훌륭하고 칼립소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압권은 역시 7번 트랙의 JAMAICA FAREWELL
그리고 15번 트랙의 MATILDA가 아닌가 싶다.
약간은 허스키한 해리벨라폰테가 부르는 JAMAICA FAREWELL는
영화로 치자면 <시네마 천국>이 주는 것 같은 향수와 감동을
자아내는 것 같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서도.
MATILDA는 녹음시간이 11분 27초 되는 긴 곡인데
cd를 듣고만 있어도 공연장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관객과 노래를 부르는 해리벨라폰테가 하나가 되어서 노래를 부르는
상황이 참 정겹게 나타난다.
지금은 상황이많이 다르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검정 양복의 정장차림을 하고
공연에 왔을 딱딱한 표정의 관객들을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해리 벨라폰테의
여유가 돋보인다.
뜻밖에 부인이 유대인이어서 그런지 유대민요인
HAVA NAGEELA도 제법 멋들어지게 부른다.
해리 벨라폰테와 같이 들은 또 하나의 음반은
재즈의 대표적인 lavel인 verve에서 나온 Stan Getz와 Joao Gilberto의 음반
해리 벨라폰테가 칼립소였다면 이 스탄겟츠는 두 말할 필요 없는 보사노바.
두 음반 모두 편안하게 듣기에 딱 알맞은 음반이다.
허스키면서도 어떻게 들으면 다소 우울하고 어떻게들으면 낙천성이 느껴지는
해리 벨라라폰테의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그냥 입속에서 웅얼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들으면 다소 몽환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스탄겟츠의 목소리와 섹서폰 연주는 참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의 동료이자 기타리스트인 Joao Gilberto의 아내 Astrud Gilberto가
보컬로 참여했는데 나중에 동료의 아내와 스캔들을 일으켰다는
소문만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어쨌든 노래와 연주는 참 좋다.
한창 스탄겟츠를 들을 무렵
환락의 거리(!)이자 내겐 별천지와 같았던 신천이란 곳을 갈 일이 있었는데
친구들과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차를 마시러 들어 간 카페의 이름이
우연하게도 <스탄겟츠>였었는데 꽤 많은 재즈 음반을 가지고 있었고
그 다음에 몇번 갔을 때마다 주로 스탄겟츠의 음반을 틀어 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슬금슬금 훑어 본 바로는 스피커는 영국제 보급형 셀레스천이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아직도 있을까?
후미진 골목길 모퉁이 4층인가에 있었던 <스탄겟츠>
음악은 역시 추억이라는 양념이 곁들여져야 역시 온전히 제 맛이 나는 것 같다.
* 얼마 전 제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그대로 옮겨봤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