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가장 길게 느껴지는 달은 항상 11월인 것 같습니다.
쉬는 날도 없고 할 일도 제일 많아 하루하루가 버겁게 지나가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올해는 이 잔인한 11월에 좋은 공연을 두 개나 볼 수 있었습니다.
11월 8일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했던 오페라 '카르멘'을, 어제는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미샤 마이스키' 연주회를 다녀왔습니다.
자리도 제일 좋은 곳으로만 다녀 왔습니다. 카르멘은 VIP(25만), 마이스키는 R(7만). 헉... 30만원이 넘네요. 차비에, 프로그램(팜플렛)값에 저녁값 했더니 35만원 이상 지출된 것 같습니다.
출혈은 완전 크지만 주머니가 좀 얇을 때 가봤던 A석, B석에서 경험한 공연은 대부분 실망 그 자체였었기 때문에 (집에서 DVD 보는게 더 낫다고 느꼈으니까요) '안가면 안갔지 가면 R석 이상에서 보자'는 생각이 있어서 그냥 질렀습니다.
35만원이면 씨디를 몇장살 수 있나... 생각해봅니다. 20장 남짓 살 수 있겠네요. 얼마나 다양한 레퍼토리를 내 입맛에 맛는 연주자의 연주로 들어볼 수 있나하는 생각까지 들면 이 돈을 주고 공연을 가는게 맞는 일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듭니다.
35만원이면 무슨 기기를 바꿀 수 있나... 생각해봅니다. 가지고 있는 앰프를 팔고 좀 더 보태면 '업글'도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잠시 듭니다.
하지만 결론은 '어느 것이 가장 음악적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음악회'라는 답이 나오더군요.
저에게 있어서는 연주자와 호흡을 같이하며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음악과 시간을 동시에 즐기는 일이 언제나 행복하고 설레는 일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음악인가 소리인가 기계인가.
글쎄요.. 60 : 20: 20 정도가 아닌가 싶네요. 뭐 제 기준으로는 적당한 비율이란 생각도 혼자 하고 있긴 합니다만.
가을이 끝나갑니다. 이곳 포천은 무척이나 춥습니다. 이미 겨울이 온 듯 하구요. 올해 가기전에 사랑하는 분들과 좋은 공연 함께 하시면 어떨까요. 업글, 옆글은 잠지 미루셔도 좋으실 것 같네요.
제가 다녀온 공연얘기 잠깐 하겠습니다.
1. 카르멘
러시아에서 홀랑 직수입해서 공연하는 공연이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연출하는 카르멘이 무척이나 궁금해서 고민고민 끝에 카드로 긁어버린 공연이죠.
연출도 좋았고 특히나 무용과 코러스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에스까미요도 훌륭했고 아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돈호세의 약혼녀..도 매우 좋았습니다. 그런데 돈호세와 카르멘이 별로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본전생각 나더군요.
둘 다 성량이 좀 부족하고 전달력도 좀 딸리는 것 같고. 돈호세는 '카레라스'가 나오는 DVD를 하도 여러번 봐서 기준이 높아진 것 같고. 카르멘은 예쁘긴 참 예뻤는데 노래가 좀 별로더군요. 전체적으로는 85/100 정도? ^^
CBS 주관으로 초대된 공연인것 같은데 VIP석 초대권이 좀 풀렸는지.. 제 옆에 앉아있는 부부는 초대권인 것 같더군요. 3막 이후부터는 졸고 떠들고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자기돈 50만원 주고 왔다면 그러지 않았겠죠? ㅡㅡ;;
2. 미샤 마이스키
딸인 릴리 마이스키가 피아노 치고 아버지가 첼로연주를 하는 가족공연(?)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았는데 이런... 미샤마이스키가 10M 앞에 앉아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가슴이 콩닥콩닥 하더군요. 저 세계적 거장이 바로 내 눈앞에.. '이래서 좋은 자리에 앉는 건가' 새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프로그램도 익숙한 곡들이 많아서 더 좋았구요.
(베토벤, 빠야의 스페인 민속음악, 드뷔시 첼로 소나타,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와 엘레지, 쇼스타코비치)
끝나고 펜사인회도 했는데 전 갈길이 바빠서 아쉽게도... 쩝.
역시 오디오에서 나오는 첼로소리와 진짜 첼로소리는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새삼했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습관처럼 생활처럼 들어오는 이 곳 와싸답니다.
소리가 어떻다, 리핑을 하면 데이터가 어찌된다... 이런 논쟁보단 따뜻한 음악 이야기가 좀 더 나눠지는 정겨운 곳이 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막바지 가을... 따뜻한 음악과 함께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