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즐거움은 계절답다는 데 있다
여름은 혹서일수록, 겨울은 혹한일수록
그래야 계절을 즐길 수 있다
계절이 즐거울 수 있는 건 또한
그 계절에만 어울리는 그 무언가 때문이다
시벨리우스 2번, 좋아한다
이 계절에 더할 수 없이 어울린다
2번 연주의 많은 명연 중 유독 좋아하는 타우노 한니카이넨의 연주
연주가 좋아서라기보단(물론 좋지만) 더 큰 이유는 정이 가기 때문
연주 외적인 까닭일지 몰라도
음반을 걸어 놓은 다음 저 자켓을 정면에 가지런히 얹어 놓고
듣고 보는 그 행위가 정겹고, 즐겁다, 내겐.
그러면 순간 핀란드와 눈밭과 나무숲이 눈으로 귀로 펼쳐진다.
이 오랜 습관은 기술이 진보하기 훨씬 이전부터
내게 완벽한 A/V를 구현해 줬다.
북유럽의 삼림을 그려놓은 표지
시벨리우스의 곡들을 들으며 누구나 떠올리는 풍경이지만,
또 수많은 앨범의 표지를 장식하는 씬이지만
이처럼 절묘한 건 없다
시벨리우스는 춥다,고들 한다
그래서 겨울에 제맛이다,고들 한다
맞는 얘기지만, 타우노의 음반에는 따뜻함도 공존한다
목탄으로 그려낸 북구의 나무 때문이다.
나무는 따뜻하다
그 따뜻한 나무를 가장 뜨거운 불길로 연소시킨 결과물, 목탄은
더 따뜻하다, 아니 뜨겁다.
목탄화로 그려낸 겨울나라의 나무는
그래서 가장 뜨거운 겨울을 그려낸다
차가운 대지를 뜨거운 뿌리로 거머쥔 나무들이 있기에
북구의 겨울은 따뜻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마냥 추운 시벨리우스가 아닌
훈훈한 나무의 숨결이 함께하는 시벨리우스이기에
나는 타우노의 시벨리우스가, 정겹다
소리와 더불어 그림으로써
한번도 가보지 못한 북구의 겨울을
나의 방에서 따뜻하게 펼쳐준
쟈켓 디자이너에게 늘 감사한다
살아서, 죽어서 늘 따뜻한 나무에게도 감사한다
물론 오래전부터 내게 겨울의 즐거움을 선사한
시벨리우스와 타우노에게도 메르씨 보꾸!
*이건 역시 시벨리우스/타우노의 5번 교향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