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자유는 누구에게 있나
윤석열 대통령은 사법고시 9수를 했다. 그 나이 또래의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학에 가는 것까지는 '타고난 머리'와 '개인의 노력'에 따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9수를 할 수 있으려면 집안의 도움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이 9수를 하게 된 이유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느라 시간과 체력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러 이야기에 따르면 후배들을 이끌고 산으로, 술집으로 다니며 호연지기를 기르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결국 윤 대통령이 9수를 '선택'할 수 있었던 자유는 그의 의지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만큼 머리 좋은 사람도 아버지가 대학교수가 아니었다면, 9수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사시 9수는 불굴의 의지가 아니라, 8번 실패해도 9번째 일어날 수 있는 넉넉한 집안 사정을 증명한다.
물론 어떤 이들과 조금의 차이는 있다. 3루에서 홈으로 들어 올 때, 누군가는 천
천히 걸어 들어오지만, 누군가는 희생플라이에 전력질주를 하기도 한다. 윤 대통령도 전력질주로 홈 플레이트를 밟았을 것이다. 그래서 노력할 자유란 이렇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청년 윤석열이 2루나 3루에 도착할 때까지, 아웃카운트를 8번이나 쓸 수 있었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것은 누구의 자유이고, 누구의 공정일까?
*그어떤,그 무엇이든-세상에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당연-그럴만한 두뇌가 없는 맷돼지 뚱짜장 개놈한테 우이독경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