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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 한구석을 비워 두는 일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23-08-23 22: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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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087

제목

내 가슴 한구석을 비워 두는 일

글쓴이

이광윤 [가입일자 : 2003-05-30]
내용
 
 

내가 다니는 동호회의 회원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38년을 애지중지하던 외아들을 잃었다.

늦게나마 소식을 접했지만, 외진 가슴이 무겁다.

어느 날 밤 산책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반쪽이 된 핼쑥한 모습을 알아보기조차 힘들다.

위로의 안부가 오히려 무색하다.

"힘들더라도 몸 잘 추스르세요." 그게 전부다.

느지막에 자식을 가슴에 묻고 말았다.

그 시간이 남은 날보다 더 길어질지 알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유비무환처럼 쓸 수는 없다.

그럴 때 우리는 운명이란 단어를 자주 쓴다.

부디 잘 추슬러서 다시 만나기를 빈다.


불알친구, 소꿉친구, 학교 친구, 직장 친구, 술친구 등,

살면서 우리는 많은 친구를 만나고 거친다.

늘그막에는 모두 친구 타령만 한다.

이 "친구 타령"에는 남·여의 구분이 없다.

그들의 말인즉, 남편(아내)도, 자식도 다 남이라고 한다.

오직 친구만이 인생의 동반자라고 혀가 닮도록 설파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수백 통의 소셜 미디어를 소화하고 있다.

나도 하루에 적어도 수십 통은 받는다.

소외된 늙은 분노를 아직 놓지 못한 것이다.

거기에 동화하지 못하는 내가 더 이상하다.

가족의 해체가 가져온 폐해이다.

몇 해 전만 해도 가장은 자식의 거울이라고

윤리 강령처럼 SNS에 떠들던 사람들도 많았다.

해체된 가족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터진 봇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소셜 미디어(Social Media)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전철을 타 보면 내가 소외된 늙은이란 걸 실감한다.

모두 휴대전화를 열고 무슨 보물찾기라도 하듯 들여다본다.

필사적으로 자신에 집중하는 그 표정들이 바로 나의 소셜 미디어이다.

그 많은 정보 속에서 취사선택은 매우 어렵다.

갑자기 휴대전화가 없어지면 저들은 아마 폭동을 일으킬 것이다.

사는 방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재난과 더위 그리고 추위 등,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이기는 영화가 아닌 이상 거꾸로 가는 법이 없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다.

현대적 해석으로 반추해 보면

3살까지만 가정의 역할을 다해도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때가 이르지만, 그 정착의 단계가 오래지 않다.

인구는 급속히 감소하고 사회가 감당해야 할 몫은 더 커졌다.

복잡한 사회 구조를 표피적 시각으로 볼 수는 없지만,

길거리의 여러 분쟁을 보면 극한 상반된 모순만 작동한다.

우리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서로 책임 전가하는 공간을 좁혀야 한다.

젊은이들이 후세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것은 전적으로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어느 한쪽이 아닌 모두가 다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작금의 허영만 쫓는 방황하는 세대들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결국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 그 수순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매달린 전쟁둥이와 전후 세대들,

척박한 그늘에서 자란 세대들,

살아남은 것에 하늘에 감사하는 세대들,

그들에게 이제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들 스스로 해체의 길을 서두르고 있다.

마지막 여름비가 심술을 부리듯 추적추적 뿌린다.

아직도 무덥지만, 그 끝에 선선한 바람이 들었다.

오늘의 내 삶이 아무리 팍팍해도,


 

내 가슴

한구석을 비워 두는 일이다.


내가 벌써 늙었다니, 어림없는 소리다.

늙었다고 그게 될까?

친구라서 그게 될까?

가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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