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던 삶은 아니었지만, 30 대 초반에 몆 년 간 일일용역 일을 다닌적이 있다.
일당에서 10%를 소개비로 떼주고 그날그날 품삵을 받아 생활했는데,
대체적으로 남들이 꺼리는 일이 대부분이라 일이 힘들고 거칠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인데다,
때 마다 현장이 달라지니 언제 어느 때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허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는데,
이게 어느 때 어느 현장에서 다쳤는지 알수가 없더라는거다.
아무튼 통증이 심해지다보니 일을 하지못하는 날이 많아지며 생활도 궁핍해졌다.
치료를 해보려고 근처 병원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는데,
무리해서 그런것 같다 라며 좀 쉬면 나아질 것 같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러나 쉬어도 좋아지지않는 몸 상태는 점점 무기력감에 빠지게 되고 매사에 의기소침해졌다.
이 무렵 아내가 방하나 붙은 가게에서 분식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동네 변두리에 있다보니 손님이 드문드문하니 장사가 시원치않았다.
그런 와중에 나까지 쉬게되니 근근히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였다.
가게가, 오전엔 주로 동네 어르신들이 드나들며 커피마시며 담소하는 사랑방 역활까지 했는데,
매일 일을 나가지 못하다보니,
커피 마시러 온 어르신들이 나와 눈이 마주치면,
"오늘도 쉬나?" 하며 말을 건네었는데,
그 분 들 입장에선 그냥 인사치레로 건네는 말이었겠지만,
자주 듣는 내 입장에선 정말 듣기싫은 소리였다.
그 분들 눈으로 보면, 왜 사지멀정한 젊은 놈이 펀펀히 놀며 마누라 등골을 빼먹나?
물론 실제 그런 생각까지야 안할지라도,
매일 눈이 마주치는 내 입장에선 충분히 그런 쓸데없는 자격지심이 생길수 밖에 없었다.
하여, 이런 곤혹스런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집 근처에 시립도서관이 있었는데,
1990년대 초반 당시 입장료가 100 원 이다.
도서관 지하에 식당까지 있어 라면 한 그릇에 400 원 인가 했던 것 같다.
어딘가 피난처가 필요했던 내 입장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수 있는 장소로 이 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듯 하다.
여하튼 이때부터 아침마다 아내의 옆구리를 툭 치며 손가락 3 개를 펴 보이는 짓이 반복됐다.
손가락 3 개는 3 천 원 만 달라는 뜻이다.
3 천 원을 받아들고 도서관에 입장하여 점심에 지하식당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오후 5 시 마감시간까지 책을 읽었는데 한여름 오후 5 시는 아직도 햇볕이 너무나 쨍쨍하다.
이 시간에 집에 들어가기엔 너무 이르다.
어느 고등학교 도로 앞에 잎새가 무성한 등나무가 있다.
그 등나무 아래 나무결무늬형상의 콘크리트 벤취가 몆 개 놓여져 있었는데,
여기에 누워, 누군가 버린 신문지 한 장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 참 잠이 든다.
해가 서산에 넘어갈 무렵 눈이 떠지지만, 아직도 집에 들어가기엔 시간이 이르다.
시장 언저리에 대폿집이 하나 있었다.
주로 막걸리를 파는 집인데, 특이한 점은 안주로 유일하게 닭을 쪼개어 튀겨 파는데,
막걸리 한 병을 시키고 안주를 시키지않는 사람에겐,
튀김 닭발 두 개를 서비스로 제공 한다는 점이다.
궁핍한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안주는 없다.
이 때 이 튀김 닭발을 얼마나 맛나게 먹었는지 이 후에도 계속 생각이 나,
10 여 년 이 지나 형편이 좋아진 어느날, 그 집을 다시 찾아갔는데 여전히 예전 그 모습이었다.
그 때 맛나게 먹던 막걸리와 닭발이 생각나 그대로 시켜봤는데, 모양은 그 때 그 모양이 틀림 없다.
아... 근데 그때 그 맛이 아니다.
괜히 갔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졌어야 아름다운 것을...
이미 세월이 지나 기름때 잔뜩 낀 목구멍에 넘어가는 그 궁핍함이 어찌 아름다울수가 있으리요.
어쨋든 그렇게 몆 개 월 도서관을 다니며 많은 책을 읽었다.
이후 허리가 마비되는 등 증세가 악화되어 수술을 3 번 이나 받는 고초를 겪었다.
인간만사 세옹지마라 하던가..
그 끝나지않을 것 같던 암흑의 터널도 시간이 지나니, 어느 순간 터널을 빠져나와 햇볕이 보이더라.
세월이 흐르고 흐른 지금 그 때 허리가 아팠던 고통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때 읽었던 수많은 책들의 내용은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어쩌면 그 암울했던 시기에,
그나마 아픔을 이겨내준 유일한 피난처이자 위안처이기 때문이지 않았나싶다.
최근 어쩌다보니 근무하는 곳 근처에 도서관이 있어 관련하여 자주 방문하게 된다.
책 읽을 시간이 많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간간히 한 두 권 씩 빌려다 보곤 하는데,
옛날 생각도 나고, 또한 책을 통하여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지만 그동안 책과 담쌓고 살았는데,
다시 책을 접하며 왜 이 즐거움을 잊고 살았는지 새삼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갑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