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야 즈치 말라 밤살??? 다 도듯가
?? 목지 호고려 님 지슘 ??? 겨??라
그 개도 호고려 개로다 듯고 ???즘 ??노라
(아차! 아래 아 표기가 안되는 것을...,)
<< 개야 짖지 마라. 밤에 다니는 사람이 다 도둑이냐?
저 근처 조선 사람 계신데 다녀올 것이다.
그 개도 조선 개로다. 듣고 잠잠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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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원본 ≪훈민정음≫은 설명문이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다.
처음에 훈민정음 본문이 실려 있고, 다음에 훈민정음 해례가 있다.
해례는 ‘제자해(制字解)’·‘초성해(初聲解)’·‘중성해(中聲解)’·‘종성해(終聲解)’·‘합자해(合字解)’·
‘용자례(用字例)’로 다섯 가지 ‘해(풀이)’와 한 가지 ‘예 (보기)’로 되어 있다.
세종은 일반 민중이 글자 없이 생활하면서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음을 마음 아프게 여겼다.
그들 민중은 관청에 호소하려 해도 호소할 길이 없었고, 억울한 재판을 받아도
바로잡아 주기를 요구할 도리가 없었으며, 편지를 쓰려고 해도 그
어려운 한문을 배울 수가 없었다.
또한, 농사일에 관한 간단한 기록도 할 방법이 없었다.
한글을 일컫는 이름은 여러 가지이다.
세종이 한글을 만들 당시에는 ‘훈민정음’이라 불렀는데,
이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이 때의 소리는 글자와 통한다. ‘바른’이라는 꾸밈말을 붙인 이유는,
한자를 빌려 쓰는 것과 같은 구차한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제대로 적을 수 있는 글자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훈민정음≫은 바로 이 이름을 쓴 책이고, 그 밖의 여러 문헌에도
이 이름은 많이 나타나고 있다. ‘훈민정음’을 줄여 ‘정음’이라고도 하였는데,
이 이름은 훈민정음 해례의 끝에 있는 정인지의 글에 이미 나타나 있다.
‘언문(諺文)’이라는 이름은 최근까지 쓰였는데, 이것은 그 유래가 오래된 말이다.
원래 ‘언’이란 ‘우리말’ 또는 ‘정음’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 해례에 보면, “문(文)과 언(諺)을 섞어 쓸 때는……”
또는 “첫소리(초성)의 ㆆ과 ㅇ은 서로 비슷하여 언에서는 가히 통용될 수 있다. ”라고
하였고, “반혓소리 ㄹ은 마땅히 언에 쓸 것이지 문에는 쓸 수 없다. ”고 하였는데,
여기서‘언’은 우리글·우리말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세종실록≫에는 언문청(諺文廳)이라는 말이 나오고(28년 11월조),
또 바로 ‘언문’이라는 말도 나타난다(25년 12월조). 또, 그 뒤로는
‘언서(諺書)’라고도 하였으니, 이것은 한문을 ‘진서(眞書)’라 한 데
대립시킨 말이다.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 訓蒙字會≫에서는 ‘반절(反切)’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는데, 중국 음운학의 반절법에서 초·중·종성을 따로 분리하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정음이 초·중·종성을 분리하여 표기하는 점에서
이와 비슷하다고 보아 붙인 이름인 듯하다.
‘암클’이라는 이름도 쓰였으니, 이는 부녀자들이나 쓰는 글이라는 뜻이다.
선비가 쓸 만한 글은 되지 못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1908년 주시경(周時經)을 중심으로 ‘국어연구학회’가 만들어졌으나,
일제의 탄압에 못 이겨 바로 ‘배달말글몯음’으로 이름을 고친 후,
1913년 4월에는 다시 그 이름을 ‘한글모’로 고쳤다.
이 때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듯하며,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27년 한글사에서 펴낸 ≪한글≫(7인의 동인지)이라는 잡지에서부터이다.
한편 이근우는 "훈민정음은 한글인가"(2017.1.11)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훈민정음 이전에 창제된 언문이 우리글의 시초이며 훈민정음은 한자 음가를 표기하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언문이야말로 우리글의 원형임을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증명한다.
그러므로 우리글의 공식 명칭은 훈민정음이 아닌 언문이며, 또한 한글의 원형이라는
도발적이기까지 한 결론에 다다른다.
우리글의 원형이라 알려진 훈민정음과 이를 낮춰 부른 것이라고 알려진 언문이 엄연하게
다르다는 전제가 새롭다. 언문이 우리글의 시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역사적
사례를 토대로 세세하게 파고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