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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대한 상상력
HIFI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2-10 00:30:53
추천수 0
조회수   1,829

제목

이웃에 대한 상상력

글쓴이

성정훈 [가입일자 : ]
내용
물론 또 여담입니다.^^ 엊그제 같은 데 벌써 십 몇 년 전 얘기네요. 야밤에 여의도에서 친구들과 농구 대 여섯 판 입에 거품을 물 때 까지 뛰고 편의점에서 치즈 푼 사발면과 게토레이를 먹습니다. 그리고 집 가까운 친구네 집에 우르르 몰려 가서 나머지 밤을 세우지요. 그 날도 그렇게 같이 땀을 흘리고 사발면을 뺏어먹고 한 자리에 둘러 앉아서 각자 마음 속에 품은 여자 얘기, 그리고 뭐... 다른 얘긴 없었군요. ㅋ~ 부랄친구들이라서 한 놈이 옛날 얘길 꺼내면 그게 곧 자기 얘기가 되고, 그러면 얘기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어지고, 그렇게 서로의 인생을 침범하고 공유하면서 낯간지러운 우정을 확인하는 순간 한 녀석이 갑자기 삼천포로 새는 겁니다. 책장에 가득한 씨디 통을 바라보며 이 친구가 하는 말. 너 저거 다 불법 다운로드 받은 거지? 순간 그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싸악 가라앉으면서 호스트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손가락을 들어 지적하던 친구는 같이 다녔던 교회에서도 유명한 청교도주의자. 예배시간 엄수는 물론이고 그 삶에 있어서도 일점 일획의 과오도 용납하지 않는 그야말로 청교도의 필드 매뉴얼을 그대로 엄수하는 올리버 크롬웰의 화신이였습니다. 교회의 전도사님조차 이 친구의 불꽃같은 눈동자와 가느다랗고 곧게 뻗은 검지를 피하느라 진땀이 날 정도였으니 또래 친구들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뭐 불편하게 여긴 거지요. 그나마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같이 지냈으니 같이 어울리지만 다른 친구들, 특히 여자애들은 걔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쟤는 치마가 너무 짧어, 화장이 너무 진하군, 저건 마녀의 손톱이야...ㅋㅋㅋ



그래서 그 날 우정의 향연은 막을 내리고 불법다운로드와 저작권에 대한 일대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계속해서 집요하게 추궁하는 우리의 크롬웰. 그 골자는 영화 제작에 들어간 노력에 대한 최소한의 댓가는 지불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표를 사고 영화를 본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 저작권에 대해서 한 푼도 지불하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느냐. 대답이 궁해진 호스트는 그럼 넌 불법 소프트웨어 안 쓰냐? 저번에 나한테 윈도98 쎄컨 에디션 빌려갔었잖아? 아, 그거? 버렸어. 버리고 용산 가서 돈 주고 사 왔어. 아래 한글도 같이 사서 내 컴퓨터는 이제 깨끗해. 다음에 우리집 오면 보여줄께. 그 얘기를 듣는 친구들 모두 우리의 크롬웰 참 대단하구나를 넘어서서 참 무시무시한 놈이라고 생각했죠. 물론 친구가 정품 소프트웨어를 쓰는 건 아주 훌륭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웃에 대한 상상력, 어둠의 경로를 밤새도록 좇아다니며 영화를 수집한 친구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나머지 친구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우리는 불법을 자행하는 친구가 어렵사리 받아놓은 온갖 최신 영화들을 빌려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저작권법에 저촉된 행위를 밥먹듯이 했던 친구는 우리들 중에 제일 가난했고 검지손가락이 유난히 큰 그 친구는 제일 유복한 가정의 장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지금도 여전히 그래요. 이상하죠?^^



성서를 펼쳐 읽어보면 예수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나오고 그들을 쫓아다니면서 핍박하고 못살게구는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이 나옵니다. 그 종교가들이 예수에게 별명을 지어 주었어요. 저 인간은 술고래에 식탐자에다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고로 마귀다! 당시 유대교의 율법은 너무나 엄격해서 웬만한 사람들은 그 계율을 하나하나 지켜낼 수가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전적으로 종교적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 부유하고 안정된 사람들이나 겨우 지킬 수가 있었죠. 예를 들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안식일에 일 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린 배를 채우고자 일을 하게 되면 곧 죄인으로 몰리는 그런 현실. 죄인이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죄인을 양산해내는 그 사회의 율법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런 율법을 비판하고 그렇게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밥을 지어 먹고 이야기를 나누니까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저것도 똑같은 놈이라고 욕하면서 그런 별명을 지어 불렀다는데...



88만원 세대. 우리 청년들의 현주소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려 해도 이런 바늘구멍이 없고, 비정규직에 아르바이트자리를 전전하는 현실. 더 안타까운 건 그들에게 기회를 앗아가버린 이 사회에 죄의식까지 느끼면서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한다는 것이지요.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국민 모두가 수출이 잘 되고 경제가 성장하고 주가지수가 오르기를 고대하지만 그게 다 누구를 위한 잔치인가요. 소문난 잔치치고 먹을 것 드물다고 호의호식하는 사람들 따로 있고 잔치마당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 탁배기 한 사발에 김치 한 쪽 겨우 얻어먹고 돌아서는 사람, 그것도 못 얻어먹고 대문 밖에 서성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들에게 넌 왜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안 했냐, 토익 점수가 그게 뭐냐, 못 배운 놈이 눈은 왜 그리 높냐, 정 할 거 없으면 막노동이나 해라... 입이 뚫렸으니 나오는 건 말씀입니다만 그게 어디 할 소립니까? 지능지수는 높아만 가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술은 날로 진보해 가지만 이웃에 대한 상상력은 점점 상실해 가는 이 사회에서 겨울 바람은 쓸쓸하게 불고 한강물은 차가울 따름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요. 내가 좋아하는 이 음악, 다른 사람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내가 음악 속에서 느끼는 이 평온함,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혹시 경제적인 이유로 오디오생활의 이 지극한 기쁨을 누리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내 허접한 기기와 몇 안 되는 음반이라도 공유하고 싶다. 척 맨지오네와 핑크 플로이드 전집을 리핑해서 하게에 올리고 싶다...



요즘 제가 게시판에서 너무 왕성하게(?) 활동한 나머지 곳곳에서 잡음이 들려오네요. 맨 먼저 하이파이 최대의 적 와이프로부터 ㅋ~ 그리고 아까 댓글 공방으로 마음 상하신 분들께 정중히 사과드리면서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성정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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