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운동을 마치고
체중계에 올라 근수를 달아보니
76kg....!
으잉?
왜 2~3일 사이에 2.5kg이 줄었을까?
사실 목표 체중이 74kg이긴 해서
그동안 밥양도 줄이고 간식을 줄였어도
좀체로 그놈의 체중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2~3일 사이
갑작스럽게 2.5kg이나 줄어든 것입니다.
사실 선거 하루 전인 3월 8일부터
웬지 긴장되고 밥맛이 없긴 했었습니다.
그리고 3월 9일 밤을 꼬박 새고
그 다음 날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다시피 했으니
신체리듬이 깨진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고
더불어 밥맛 역시 어디론가 도망가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한테 하소연 할 수도 없는 휑한 가슴은
선거 후 3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너덜너덜 찢겨져
春風이 삭풍(朔風)으로 변해 흉강을 시리게 합니다.
그야말로 춘래불래춘(春來不似春)인 것입니다.
또는 "入春大吉"이 아닌 "入春無吉"이 되어버린 것이죠.
歲寒圖(세한도)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1844년 제주 대정읍으로 유배된지
5년 되던 해에 제자인 이상적에게 선물한 그림입니다.
이상적은 스승을 위해 중국 연경에까지 가서 책을 구하여
제주도에 유배중인 추사를 찾아뵈었고
그런 제자의 정성에 감동한 추사 선생이
이 세한도를 그려 선물한 것입니다.
이상적은 훗날 연경에 갈 때 이 세한도를 가지고 갔는데
평소 추사 선생을 흠모한 중국 문인 16명이
감상평과 헌사를 써줬습니다.
이후 열정적으로 추사를 흠모하고 존경했던
후지스카 지카시가 일본으로 가져갔다가
수집가 손재형 선생의 끈질긴 노력으로 1944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렵게 귀환한 세한도에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정인보, 오세창, 이시영 선생 등이
찬문(贊文)을 달아 세한도는 무려 14.7m라는 대작이 되었습니다.
이 세한도는 손재형 선생이 계속 보관하시다가
2020년 1월 29일 국립박물관에 기증하였는데
가격을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며
만일 경매에 부쳐진다면 수백억원을 상회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작품을 국가에 기증한 손재형 선생님도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뜬금없이 "세한도" 어쩌구저쩌구를 지껄이는 것은
당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심사와
저의 심사가 마치 가운데 벽이 뻥 뚫린 세한도와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우연의 일치는
추사 선생이 귀향 5년차에 세한도를 그렸다는 것이며
민주정권 역시 단 5년만에 정권을 상실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허전하고 허망한 가슴을 부여안고
93.1을 들으면서 이 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