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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과 歲寒圖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22-03-12 23:50:20
추천수 2
조회수   702

제목

내 마음과 歲寒圖

글쓴이

이정석 [가입일자 : 2013-01-27]
내용
오늘 운동을 마치고
체중계에 올라 근수를 달아보니
76kg....!

으잉?
왜 2~3일 사이에 2.5kg이 줄었을까?
사실 목표 체중이 74kg이긴 해서
그동안 밥양도 줄이고 간식을 줄였어도
좀체로 그놈의 체중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과 2~3일 사이
갑작스럽게 2.5kg이나 줄어든 것입니다.

사실 선거 하루 전인 3월 8일부터
웬지 긴장되고 밥맛이 없긴 했었습니다.
그리고 3월 9일 밤을 꼬박 새고
그 다음 날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다시피 했으니
신체리듬이 깨진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일 것이고
더불어 밥맛 역시 어디론가 도망가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한테 하소연 할 수도 없는 휑한 가슴은
선거 후 3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너덜너덜 찢겨져
春風이 삭풍(朔風)으로 변해 흉강을 시리게 합니다.
그야말로 춘래불래춘(春來不似春)인 것입니다.
또는 "入春大吉"이 아닌 "入春無吉"이 되어버린 것이죠.

歲寒圖(세한도)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1844년 제주 대정읍으로 유배된지
5년 되던 해에 제자인 이상적에게 선물한 그림입니다.
이상적은 스승을 위해 중국 연경에까지 가서 책을 구하여
제주도에 유배중인 추사를 찾아뵈었고
그런 제자의 정성에 감동한 추사 선생이 
이 세한도를 그려 선물한 것입니다.

이상적은 훗날 연경에 갈 때 이 세한도를 가지고 갔는데
평소 추사 선생을 흠모한 중국 문인 16명이
감상평과 헌사를 써줬습니다.

이후 열정적으로 추사를 흠모하고 존경했던 
후지스카 지카시가 일본으로 가져갔다가
수집가 손재형 선생의 끈질긴 노력으로 1944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렵게 귀환한 세한도에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정인보, 오세창, 이시영 선생 등이
찬문(贊文)을 달아 세한도는 무려 14.7m라는 대작이 되었습니다.

이 세한도는 손재형 선생이 계속 보관하시다가
2020년 1월 29일 국립박물관에 기증하였는데
가격을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며
만일 경매에 부쳐진다면 수백억원을 상회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작품을 국가에 기증한 손재형 선생님도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뜬금없이 "세한도" 어쩌구저쩌구를 지껄이는 것은
당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심사와
저의 심사가 마치 가운데 벽이 뻥 뚫린 세한도와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우연의 일치는
추사 선생이 귀향 5년차에 세한도를 그렸다는 것이며
민주정권 역시 단 5년만에 정권을 상실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허전하고 허망한 가슴을 부여안고
93.1을 들으면서 이 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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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규 2022-03-13 12:22:25
답글

잘나가던 금수저 수재가 계속 승승장구 했다면 김정희도 역사속의 평범한 고관대작으로 남았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잘난체 하고 특권의식에 젖은 세도가의 영재.
그러던 그가 풍파에 휩쓸리며 인생의 고초를 겪으며 안온한 삶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간과 삶의 모습을 보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김정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을 거라 생각 했습니다.

또다른 천재인 정약용의 경우도 그러한 예로 그의 고초가 당시 사회의 모순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고민하게 하였고 그래서 마찬가지로 목민심서의 정약용이 되었을 것입니다(그의 성정상 안온한 삶속에서도 그러한 모색이 있을 수 있겠지만 등 따습고 배부른 상태에서 얼마나 치열한 사색이 가능했을지는 의문이겠죠)
안타까운건 그의 저작이 정작 당대엔 본인이 출판 배포를 꺼려 주장이 알려지지도 못하고 그래서 사회변화와 개혁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숨겨진 저작이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ㅡ세상이 사람을 단련시키고 성숙시키는 예의 교과서 같은 노통같으신 분들을
어느때 내어서 시대를 밝히고 사라지게 하는 듯 합니다

이정석 2022-03-13 10:37:17

    따지고 보면 추사나 정약용 모두 금수저 출신인건 맞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주류 세력에 맞서
자신만의 주장을 강하게 피력하다 보니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라는
세상의 속설이 적용된 것입니다.

제가 세한도를 처음 본 것은
1980년도 후반인데
그때 당시는 그 그림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추후 세한도의 이력을 알게 된 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22년 그 세한도를 제작했던 추사의
마음이 현재의 제 심사를 관통하더군요.

이종호 2022-03-13 15:35:07
답글

흙수저는 금수저 노는 곳에 가서 밥먹으면 안되는 가 봅니다.

본문의 글과 댓글의 품격이 너무나 높아 감히 무어라 끼어들 엄두가 안납니다.
나두 격조높게 댓글 써보구 싶다 ㅡ.,ㅠ^

이정석 2022-03-13 16:48:18

    원 별 말씀을...

제가 밥맛이 영 없다고 하니
마나님이 시장에 가셔서
도다리회와
한치회를 사오셨더군요.

그래서 오랜만에 막걸리 한잔과
회로 쓸쓸한 위장을 달래줬습니다^^

이종호 2022-03-13 19:59:06
답글

잘 하셨습니다. 과음은 응응응에 지장을 초래합니다 ㅡ,,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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