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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의 인생 소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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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4 22:4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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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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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의 인생 소회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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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석 [가입일자 : 2013-01-27]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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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사전 투표를 마쳤습니다.
원래 낼 하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점심 약속이 잡혀서요.
오후 4시까지 후~다~닥! 일을 마치고
사전 투표소에 도착하니
4시 30분쯤 되었더군요.
사람들은 예상외로 많이 몰려서
그 시각에도 제법 긴 줄이 서있었습니다.
주로 젏은 사람들이 많았던 예전의 사전투표와 달라진 점은
거의 60% 가량이 중년이나 노년층이었다는 것입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중
40대의 여자가 80대의 할머니를 부축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줄을 서서 기다리던 어느 할머니가
"투표 하셨나? 누구 찍으셨능가?"라고 물었습니다.
아마도 평소에 서로 잘 아는 사이였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응...나?"
"음... 그....뭐시기냐...!"
"우리 며느리가 일 잘하는 사람 찍으라고 히서
그 냥반 찍었는디 OO오매는 누구 찍을랑가?"라며
답변과 질문을 동시에 해결하셨습니다.
줄을 서고 기다리던 할머니는,
"아이고~! 멧번 찍으셨냐고?
다들 즈그가 일 잘한다고 허는디 내가 워떤 놈인줄 알것어~?!!"
뭐 지극히 지당하시고 당연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대선이 아니라 모든 선출직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최고로 일을 잘 할 거라고 장담하니까요.
그러자 4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며느리는
"어머니 사람들 있는데서 그런 소리 하시면 안돼요"라고
할머니에게 주의를 줬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 물어보는디 대답을 해야할 것 아녀?"라고 살짝 짜증을 내시더니
기다리던 할머니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서
"OO오매~! 우리 며느리가 1번 찍으라고 히서 그 냥반 찍었어"
"뭐 그뇜이 그뇜인디 그래도 며느리 말을 들어야 하지 안것써?"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주~욱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 대부분 그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제법 비밀스럽게 말씀은 하셨지만
"비밀 아닌 비밀"같이 제법 큰 소리로 소곤소곤^^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 할머니의 순진하면서도 일차원적인 대화를 들으면서
불현듯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쇠잔해 가시는 장모님도 연상되었습니다.
괜히 연민스런 마음이 들어
할머니들에게 고향이 어디신지 여쭸습니다.
"나? 나는 쩌그 전라도 무준디 이 냥반은 논산....
.....OO오매 논산이 맞제? 응, 논산이여 논산"
"근디 내가 나이는 시살(세살) 더 먹었어"
"아 그러셔요? 그럼 일흔 몇살 쯤 되셨나요?"라고 여쭙자,
"아이고 내가 그 나이면 새서방이라도 하나 들이겠네"라고 웃으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올해 여든 서인디 젊은 양반이 젊게 봐중께 오늘 기분이 좋네 ㅎㅎ"
라고 즐거워 하셨습니다.
사실 그 할머니는 83살도 더 되실만큼 연로해 보이셨습니다.
그러니까 며느리가 부축을 하고 투표장을 오셨을 것이고요.
그러나 노인들을 볼 때마다 항상 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짠한 연민이 자동으로 생성되는 저는
불과 1~2분 사이에 빚어졌던 두 할머니의 짧은 대화가
가슴에 아릿하게 파고 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이라는 심사가 뒷통수 어디에선가 잠재된 것처럼 느껴졌고
확인할 수 없는 어둠 속의 저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
"뭐 인생이 그런거지....뭐!"라고 자조하기도 하지만
"生者必滅"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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