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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HIFI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2-08 04:13:05
추천수 2
조회수   1,687

제목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글쓴이

성정훈 [가입일자 : ]
내용

이 말을 누군가는 히포크라테스가 했다 우기고 또 누군가는 쇼펜하우어가 했다는 둥 말이 많지만 뭐 그런 게 중요하겠습니까. 저는 독일의 시성 괴테 선생의 파우스트에서 발견하고는 그 후부터 쭉 이 말의 오리지낼러티는 괴테라고 우기고 다닙니다만. ㅋ~

어쨌든 우리 인생은 덧없이 흘러가고 예술의 opus magnum은 실로 영원하지요. 그러나 세상살이가 얼마나 바쁩니까. 예술이 좋은 거 알아도 밥벌이 하느라 시간이 없으니 그 정수를 맛보지 못하는 이 비극. 오늘도 세금 문제 때문에 예전에 동업했던 친구랑 얼굴을 좀 붉혔습니다. 기분도 꿀꿀하고 그냥 집에 들어가자니 잠도 안 올 것 같고 그래서 친구네 집에 들렸습니다. 이 친구는 나이 사십에 아직도 어머니 댁 지하실에서 1년 365일 아주 편안하게 노는 백수입니다. 배울 만큼 배웠고 몸도 정신도 건강한 그가 왜 이런 생활을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가끔 친구로서 쓴소리도 한 마디쯤 해 주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이상하게도 그 친구의 지하세계에 들어가면 언제나 제가 대현(?)의 말씀과 가르침을 듣고 나오게 되요.

오늘도 그의 지하실 문을 두드렸을 때 간단한 암구호(?)의 확인이 있고 나서 문을 열어주더군요. 돈 때문에 잡친 기분, 상기된 제 얼굴에 대비되는 그의 편안하고 밝은 얼굴.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누구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면서 가정도 꾸리고 여시같은 마누라, 토끼같은 자식들과 함께 안정된 생활을 하는데, 집도 절도 업도 없이 나이 사십에 아직까지 홀어머니께 신세를 지면서 놀고 먹는 친구가 저 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니. 물론 가족을 부양할 책임이 있는 유부남 입장에서 홀홀단신 자유로운 총각 친구가 어떤 면에서는 부럽게 보일 수도 있고 또 그 친구도 나름대로 고민과 애로사항이 있겠습니다만, 이건 그런 차원이 아니라 이 친구랑 얘기 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내가 정말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혹시 잘못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 내지는 백수 친구의 삶의 질이 저보다 훨씬 더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그의 작은 세계에서는 빈티지 리시버에서 흘러나오는 째즈의 감미로운 선율이 공간을 감싸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책이, 주전자에서는 찻물이 끓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 삶이 이래요.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데 그게 주로 남들 일할 때 자고, 남들 잘 때 깨어 있습니다. 대개 음악 틀어놓고 책을 읽는데 꼴에 아주 수준은 높아가지고 허접한 건 듣지도 읽지도 않습니다. 책과 음악에는 저도 일가견이 있다고 여기건만 이 친구에 비하면 구만리 창천을 날아다니는 대붕 앞에 짹짹거리는 참새에 불과한 정도이니 짐작이 가시겠지요? ㅋ 도대체 측량할 수 없이 깊은 학식과 재주를 가진 친구가 이러고 산다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친구는 제 얘기를 듣고 연민의 눈으로 저를 바라보며 지가 오히려 안타깝게 여기더군요. 허 참...

그러면서 음악을 바꿔 틀고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면서 눈을 감더니 무슨 도사처럼 이 말을 아주 구성지게 뇌까리는 겁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때부터 마치 준비된 원고를 외워서 읽듯이 청산유수로 흘러나오는 그의 화려한 구라. 최근에 읽은 책에서부터 새롭게 발견한 음악과 뮤지션, 또 이 친구가 영화 광인데 바시르와 왈츠를인가 하는 이스라엘 애니매이션 얘기를 하다가 용산 참사와 군포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에 이르기까지, 거기서 이 무능하고 무식한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한창 듣다보면 저도 덩달아 신이 나서 맞장구를 치고, 그러다가 의기투합해서 통닭에 맥주 한 잔 들이키러 나가면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어느 새 제가 안고 왔던 고민이 사라져 버리고 훈훈한 마음으로 음주운전을 하면서^^ 바로 옆 동네인 집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이 현자의 말씀 중에 특히 강조되었던 부분은, 우리가 살면 얼마나 오래 살겠냐, 오늘부터 고전이라 불릴 만한 책만을 골라서 읽으려 해도 우리가 죽을 때까지 반에 반에 반도 못읽는다. 책 뿐만 아니라 음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다. 이 세상엔 아름다운 게 너무나 많다. 인간은 그걸 누려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 나는 최저의 비용이 드는 삶을 선택했고 대신 자유를 얻었다. 나는 알지 못하는 미래를 위해 더이상 헛된 노력을 기울이지 않겠다. 우리는 내일 죽을 수도 있다. 그 때까지 나는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갈 것이고 인류가 이루어놓은 문화와 예술의 정수를 다 맛보고 싶다라는 둥 뭐 나름대로 백수생활에 대한 구실을 장황하게 갖다 붙이더군요. 굳이 찾자면 반박할 빈 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너의 그 자유로 인해 마음고생 하시는 가족들에게 너무 이기적인 생각 아니냐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냥 아무 말 안 했습니다. 그런 거야 친구도 이미 잘 알고 있을 거고 정말 기본적인 생활이 안 될 정도로 어려워진다면 생존의 길, 밥벌이의 수단을 스스로 찾아 나서겠지요.

날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팍팍한 삶을 아웅다웅 살다가도 이렇게 가끔 친구의 지하실에 들려 삶의 지혜를 공짜로 얻어갈 수 있으니 그나마 저는 다행이네요. 반복되는 일상에 찌든 때를 예술적 카타르시스로 씻어내는 시간을 쥐어 짜서라도 내야 되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오디오는 참 좋은 친구 아닙니까? 언제고 또 좋은 가르침을 받게 되면 여기다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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