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보다 더 배타적인 문화다 보니 지역 사회와 갈등을 일으키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조금 더 세력화가 형성되면 그들만의 자치구를 요구할 정도거든요. 이 동네는 이슬람 권역이다. 그래서 너네 나라 법 적용받지 않겠다. 이슬람 율법을 적용하는 동네로 인정해 달라.. 이런 식으로 가게 되는 거죠. 저번에 TV 보니 이슬람 부부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할랄 음식이 나오지 않아서 애로가 많다고 하더군요. 그 나라에서는 그 나라의 법과 관습을 따르고 존중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자기네 법과 관습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요구만 하는 게 큰 이질감으로 느껴집니다.
패스워드
댓글 작성시 입력한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댓글수정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답글 삭제시 사용됩니다.)
답글쓰기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답글 삭제시 사용됩니다.)
도배방지키
보이는 도배방지키를 입력하세요.
┗ 장순영
2022-02-16 10:21:22
그래요? 쎄네요...;;;
패스워드
댓글 작성시 입력한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댓글수정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답글 삭제시 사용됩니다.)
답글쓰기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답글 삭제시 사용됩니다.)
도배방지키
보이는 도배방지키를 입력하세요.
┗ 이종호
2022-02-16 11:52:27
저도 테레비 프로에서 반대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분들도 위의 재호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우려를 표하더군요.
세종때 왜놈(양놈과 현 왜놈)들이 이슬람을 편애하지 말라고 청하여 대조례에서
이슬람 예배를 더 이상 열지 않게 되고, 기독교를 도입해 달라고 한 이후로
조금씩 이슬람은 멀어지고 기독교가 스며들었지요.
대조선이 무너져 갈 때도 마지막까지 항거한 세력은 이슬람인들이 많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항거하지 말자고 했었습니다.
고종의 장례식에서도 진정 마음 아파한 세력은 이슬람인들이었습니다.
관직을 얻었던 왜양인들은 반역을 행하고 눈치만 보다가 수 많은 약탈과 훼손을 자행합니다.
그 뒤로 왜양 세력이 그 역사 흔적을 모조리 지웁니다.
다만 실록 중에도 교열을 하지 못한 부분과 교열을 행한 부분이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한답니다.
참고로 원래 십자가(+)는 대타타르 기호로 0을 의미했습니다.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 보지도 않은 노승들이 "도로 나무아미타불"을 제멋대로 가져다 붙이는데,
그 유래는 세종때 이슬람승려 도로가 하사품으로 쌀 다섯석을 하사받았습니다.
그 정도면 그 당시 유명한 이슬람지도자지요.
그 이슬람 승려가 불경을 읊는다는 의미로 전해진 것이
도로나무아미타불입니다.
인과관계가 서로 맞지 아니한다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헛수고가 된다 그런 의미로 전해진 것입니다.
패스워드
댓글 작성시 입력한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댓글수정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답글 삭제시 사용됩니다.)
답글쓰기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답글 삭제시 사용됩니다.)
도배방지키
보이는 도배방지키를 입력하세요.
┗ 이종호
2022-02-16 11:55:06
우리나라 불교는(저도 모태 사이비 불교) 이미 통일신라시대 때 부터 정치권에 들러붙어 권력의 맛을 본 이후로 지금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