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존경하고 따르는 분은
올해 78세의 한의사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분은 속칭 태극기 부대입니다.
전광훈 집회는 물론
까스통 할배들이 천박한 욕설을 배설하는
뜰딱 집회에도 어김없이 참가하는 분입니다.
구독하는 신문도 조선일보와 매일경제이며
"신의 한수" 등의 꼴통 유튜브를 하루 종일 시청하십니다.
같이 일하는 새끼 한의사가 너무나도 지겨워
수시로 바깥으로 뛰쳐 나가거나
유튜브 소리를 상쇄시키기 위해 이어폰을 상시 가동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극우적 정치성향만 빼고나면
더없이 훌륭한 인품이자 인격의 소유자 이십니다.
또한 후배와 지인들에게 아낌없이 배푸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보성향이건 보수 성향이건 따르는 후배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저하고의 인연은 20년이 넘었지만
단 한번도 얼굴을 찌뿌리거나 불편한 대화를 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배려해 주시고 염려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년 동안 그분하고 정치적인 얘기를 단 한번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제가 정말 친한 친구 외에는
정치관련 대화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945년생으로서 겪어야 했던 8.15 해방과 6.25
그리고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 등의
근대의 민족 수난사를 전부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또는 필연적으로 가치관이 체득,
또는 고착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분은 고향도 TK이고 초, 중, 고, 대학 또한
모두 그 지역에서 마쳤기 때문에
모든 조건과 환경이 보수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수십년째
보수와 진보가 치열한 헤게모니 다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는데 있어
오로지 흑백 논리만 존재합니다.
보수는 친일파 또는 케케묵은 수구로 멸칭
(蔑稱)
하고
진보는 급진주의자나 빨갱이로 매도합니다.
그리고 오로지 상대방을 박멸해야 하는 대상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진보와 보수는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같은 테두리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강제해서도 아니고 원해서도 아닙니다.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보수와 진보는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진보세력이 몽땅 박멸하고 100% 보수만 존재하면
그야말로 "자유민주주의"가 꽃피고
안보는 철통같아지며
모두가 부자가 되는 세상이 될까요?
또한 보수가 씨가 마르고 진보세력이 세상을 몽땅 차지하면
항상 개혁적이고 평등한 세상이 이루어질까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보수건 진보건 똑같이 욕망 덩어리 인간들의 군집이기 때문에
어느 이념집단이건 그 내부에서 또다시 보수와 진보로 세력이 나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보수가 100% 세상 권력을 독차지하게 되었을 경우
그 내부에서 새로운 위계질서와 계급이 생성하게 되고
선점한 집단은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뭉치고
상대적으로 홀대받은 집단은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고
소위 "평등"을 구현한다는 목적으로 뭉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진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진보진영 역시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보수건 진보건 똑같이 사람이 하는 일이고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망"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좌"와 "우"의 날개가 있어야 하늘을 나는
항공기와 같이 상대적 개념일 망정 공존의 필연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지난 연말,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식사를 대접하려고 한의원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뭐를 드시겠어요?"
"응, 뭐....아무거나 괜찮아"
"근데 이사장 날씨도 추분데(경상도 사투리) 어디 추어탕 잘 하는데가 없을까?"
"선생님 추어탕 드시고 싶으신가요?"
"날이 춥기도 한데 갑자기 뜨끈뜨끈한 추어탕 한그릇 하고 싶어서..."
그래서 모시고 간 곳은 코로나고 나발이고
1년 365일 줄서야 할 정도로 붐비는 추어탕집입니다.
추어탕 맛도 맛이지만 전라도식 겉절이가 엄청나게 맛깔나기도 하고
특이하게 콩나물 무침에 삽겹살 수육을 무상으로 제공합니다.
그래서 쐬주나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추어탕도 먹고 삼겹살 수육을 안주삼아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식사 후,
근처 한가한 커피집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생전 하지 않은 정치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이사장 내가 맨날 보수 유튜브 보는게 영 거슬렸지?"
"아이구.... 아닙니다. 선생님이 좋아하시면 보시는 거죠 뭐....!"
"근데 요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김선생(한의사)이나 조실장(직원)이 엄청 불편해 하는 것 같아"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걔들이 맨날 진보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생각했을까? 라는...."
저는 선생님 말씀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대꾸대신 비~잉 둘러서 외곽을 쳤습니다.
선생님 스스로 역지사지 입장에서 조망해 보시라는 일종의 은유법이었던 셈입니다.
"선생님,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은 누가 누구에게 강요할 수도 없고
설득하기도 어려우며 또한 설득당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대단히 외람되지만 선생님의 생각 중
다소 이율배반적임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저의 "이율배반"이라는 단어에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가면서
"이율배반? 이사장이 보기에 내 어떤 것이 이율배반이라고 생각하나?"
"......!!"
"선생님은 정치적으로 보수주의자를 자처하시는데
한의학의 통합에 대해서는 대단히 개혁주의자가 아니신가요?"
"음....그렇지 그렇지....한의학이 말이야 이제는 케케묵은 틀을벗어야 하는데
여전히 수천년 전의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발전이 되나 발전이...."
그래서 저는 지난 20년간 하지 못했던 정치 성향 문제를 조심스럽게 꺼냈습니다.
"선생님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이 지지하시는 보수는 여전히 구습에 젖어 있는데
민주당은 그것을 개혁하자고 하면 모두가 좌빨 빨갱이라고 매도하지 않나요?"
"그런데 만일 수십여개의 학파가 난립하는 한의학계를 통합하고 이론을 정립하자는
선생님은 오히려 그 기득권자(주류 한의학)들에게 심한 경멸과 매도를 당하시지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선생님은 분명히 개혁론자이고 학문적 진보인데
정치적으로는 정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것이 정치하고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
그날 이후로 선생님은 소위 "틀튜브"를 시청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같이 일하는 새끼 한의사와 실장은 "뭔일 이래요?"라고 엄청 의아해 하였습니다.
워낙 학문이 깊고 근본적으로 선비인 선생님이
저의 "이율배반"이라는 송곳에 가슴 깊은 곳을 찔리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역지사지 입장에서 여러가지를 생각해 보셨을 것입니다.
제가 장황하고도 주제넘은 정치이념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가는 홍두깨에 오는 방망이"와 같이
세상사의 일반적 현상이자 이치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힘의 세기에 따라 반동이 더 강해지듯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공격하는 만큼
자신들도 그 반동으로 인한 타격을 입기 때문입니다.
이 와싸다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근거와 논리를 배제한 채 표상적인 것만 가지고 상대를 매도하면
상대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보복을 하게 됩니다.
즉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자기의 감정에 상처를 입으면
똑같이 각종 무기를 동원하여 상대의 상처를 들쑤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장인어른 제사 때문에 시골을 다녀오면서
시골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Phase Technology PC 80을 다시 들어보니
"으잉? 얘를 왜 몇년동안 천대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로운 음악 맛에 빠져 들었습니다.
다시 들어보니
발현악기와 재즈에 꽤 좋은 소리를 내주는군요.
새로운 발견같아 벌써 몇시간째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음악 들으면서 주절절 지껄이는 얘기이니
혹시 주제 넘었다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