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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처음 울던 날
HIFI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2-03 00:42:38
추천수 0
조회수   2,439

제목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글쓴이

성정훈 [가입일자 : ]
내용

마누라님께서 곤히 잠든 사이에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빠져나와 베란다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오줌을 눈 뒤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또 쓰잘데기 없는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ㅋ~

오늘 사무실에 앉아서 견적을 좀 뽑고 있는데 갑자기 시큼한 방구냄새가 나는 겁니다. 뭐랄까요, 소리도 없고 냄새가 그리 진하지는 않은데 갓김치처럼 은근히 코를 톡 쏘는 게 은근히 기분나쁜 거 있죠. 그냥 구린 냄새가 확 진동을 하든가 아니면 냄새없이 그냥 사라지던가 하지 이건 뭐 살살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하여간 즉시 입과 코를 막고 창문을 열었습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니까 잠시 마비됐던 정신이 돌아오고 범인 색출에 나섰지요. 누구야, 신성한 사무실에서 핵실험 한 게! 자수하여 광명 찾읍시다. 사건 당시 사무실엔 남자 직원은 현장에 외근을 나가서 없었고 캐드 하는 여직원 한 명만 있었습니다. 걔가 갑자기 얼굴이 새빨게 지더니 자기는 절대 방구 안 꼈다고 오바를 하면서 막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픽 웃으면서 그랬죠. 야, 지금 사무실에 너하고 나 밖에 없고 나는 안 꼈고 그러면 너 밖에 더 있냐? 그냥 꼈으면 꼈다 그러지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냐? 나이가 저보다 열 대여섯 살이나 어린 직원이라 제가 좀 편하게 막 대하는 면도 없지는 않지만 워낙 내 입장이 떳떳하고 상대가 적반하장으로 나오니까 저는 한 치도 물러섬 없이 계속 추궁을 했습니다. 결국 불기 시작하더군요. 실장님은 방구 안 껴요? 난 적어도 이렇게 비겁한 방구는 안 낀다. 꼈으면 당당하게 꼈다 그러지 무에 꺼리길 게 있어서 거짓말을 하겠냐. 꼈으면 적어도 창문 정도는 열어주는 배려는 해야 되는 거 아냐? 이렇게 살살 놀리는 재미에 빠져 결국 저는 돌이킬 수 없는 말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야야, 이거 봐라 사무실에 똥 분자가 막 날아다닌다. 방독면 가져 와! ㅋㅋㅋ 그랬더니, 얘가 눈물이 글썽글썽 입가가 씰룩씰룩 울상이 되더니 마침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을 뛰쳐 나가며 이렇게 외치는 겁니다. 한참 전에 꼈단 말예요!!! 흐흑~

사무실에 홀로 앉아 우두커니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난 왜 이럴까 자책감에 한참 빠져있는데 이윽고 여직원이 돌아왔습니다. 아직 얼굴에 눈물자욱이 지워지지 않은 채 서러운 얼굴로 자리에 앉는 직원에게 무서워서 미안하단 말도 못하고 그렇게 뻘쭘하게 둘이서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 불청객, 아니 오늘은 구원자이신 나의 백수 친구. 친구랑 같이 커피 마시러 나가면서 여직원한테 그랬죠? 뭐 맛있는 거 사다 줄까? ...... 불러도 대답 없는 말이여.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또 어깨를 조금씩 들썩이는 것이었습니다.

친구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얘기하니까 이 녀석이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를 하더군요. 저도 얘기하다 보니까 또 막 웃기더라구요. 그래서 아까 반성의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둘이서 미친 놈들처럼 눈물을 흘려가면서 웃어재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사무실에 돌아가면서 우리 여직원 좋아하는 로티인가 번인가 하는 그 싱가폴 빵 있죠? 기름 잔뜩 묻은 거요. 그거 네 개랑 커피랑 사 가지고 돌아가서 아무말 없이 여직원 책상 위에다가 놓아 두었습니다. 이렇게 잘 마무리를 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이 주책없는 친구가 어, 이거 무슨 냄새지? !@#&^!*@#$&(!@

저는 오늘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내가 옳다고 해도 그것을 목숨을 걸고 주장할 때와 침묵할 때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아무래도 제가 너무 심했죠? 레비나스 선생님의 말씀이 제 가슴을 때립니다. "정당할수록 더욱 죄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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