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한 살 차이나는 사촌형이 있다.
어린시절 나는 산골에 살고있었고, 사촌형은 강원도 철암이라는 소도시에 살고 있었다.
철암은 탄광산업이 활성화되어서,
돈을 벌기위해 빈민들이 몰려들어 상권이 잘 형성되어 있었다.
내가 사는 산골은, 심지를 끼워 석유를 빨아들여 불을 밝히는 호롱불이었는데,
철암은 환하게 백열전등이 빛나고 있었다.
백열등을 처음 본 곳도 철암 작은아버지 집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졸업을 했을때, 경기도 평택이라는 중소도시로 이사를 하게됐다.
이때서야,
호롱불을 키고, 아궁이에 무쇠가마솥을 걸고, 나무를 때어 밥을 지어먹던 생활은 종료되었다.
철암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던 사촌형은, 항상 1등 어니면 2등만 했기에,
작은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기대가 대단했던 것 같다.
비교적 철암에 비해 큰도시였던 평택의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3 년 동안 우리집에서 기숙을 했다.
그런데 그 공부 잘하던 사촌형은 막상 성적표를 받아보니,
학년 전체는 커녕 반에서도 하위권이었다.
우물안 개구리였다는걸 아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않았다.
사촌형의 자괴감과 작은아버지의 실망과 기대감 또한,
거품이 되어 꺼지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않았다.
밀로스포만 감독 제작의 '아마데우스' 라는 영화가 있다.
인간 내면의 심리를 잘 표현하였으며,
3 시간의 러닝타임 내내 아름다운 모짜르트 음악이 흘러나와, 귀를 호사스럽게 하는 명작이다.
모짜르트 때문에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는,
궁정음악가 살리에르의 고백이 주 내용인데,
몰입도가 커 긴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어린시절의 살리에르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강해 음악가의 꿈을 키워 나가는데,
장사를 하는 아버지에게, 모짜르트처럼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자,
음악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아버지는,
"왜 원숭이가 되려고 하느냐.. 내가 곡예사처럼 널 끌고 다니면 좋겠냐?"
교회에서 아버지가 장사가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할때,
살리에르는 위대한 음악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식사를 하던 아버지가 음식물이 목에 걸려 사망을 하신거다.
이때부터 살리에르는 음악가로서의 탄탄한 행보가 펼쳐진다.
황제앞에서 연주하는 궁정음악가로서의 지위를 누리고있던 어느날 모짜르트가 나타나는데,
그의 천재성에 압도당하자 가슴속에 들끓는 질투심에 평정심을 잃고,
모짜르트를 파멸의 길로 이끄는 음모를 꾸민다.
열심히 노력하고 기도한 자기에겐 재능을 주지않고,
왜 방탕하고 오만한 모짜르트에게 천재성을 내려줬냐며 신에게 분노한다.
세월이 이만큼 흐른 오늘날..
내 과거를 돌이켜보면, 내 젊은 시절 나는 참 재능이 있다 여겼다.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초상화 화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수발을 들던중,
군복무중이던 제자라는 사람이 휴가를 나왔는데,
스케치연습을 하고있던 내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잠깐 일어나보라 손짓을 하더니,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시범을 보이는데,
딱 5 분이었다.
충격 먹었다.
마술지팡이처럼 춤추듯 휘둘러대는 연필이 멈추자,
그곳엔 천사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잘한다며 칭찬듣던 내 재능은 그의 천재성 앞에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분노하지 않았다.
그가 천재인 것이 내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누구나 최고가 되길 꿈꾸며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최고가 되면 많은 사람에게 박수를 받는다.
누구나 박수를 받고싶지 박수치는 사람이 되고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박수받는 사람은 소수이고, 박수를 치는 사람이 대다수인거다.
내가 천재가 아닌이상,
잘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치며 살게 되어있다.
이왕 박수칠바엔 인정을 해주며 즐겁게 박수를 치고 싶다.
그것이 나도 상처받지않고 최고를 더 돋보이게 하는 멋진 매너가 아니겠는가..
즐기자.
상처는 경쟁자라는 인식때문에 오는 것이지,
그 분야를 즐기면 경쟁자는 동반자가 되고,
천재에겐 진심으로 그 실력을 인정하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이 그림들은 작년 이맘때쯤 그린 지인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