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초가집에서 태어나 나무를 때어 밥을 지어먹고,
전기가 들어오지않아 휘뿌연 호롱불밑에서 숙제를 했다.
이런 생활은 국민학교를 졸업할때까지 계속됐다.
도회지로 이사를 하니 백열등 환한 불빛아래에서 책을 읽을수 있었다.
힘들게 장작을 패어 불을 때지않아도,
이글이글 피어오르는 구공탄 불길위에 석쇠를 올려놓고,
꽁치를 뒤집어가면서 왕소금을 흩뿌리며 맛난 소금구이를 해먹을수 있었다.
산골에 살적엔 구경도 못하던 라디오도 갖게 됐는데,
오랜시간을 듣기위해 라디오뒤에 왕밧데리를 붙여 꺼먹고무줄로 칭칭 감아 묶었다.
청소년기를 이렇게 라디오와 함께 했다.
아마도 이 무렵이 평생을 함께 하게된 오디오의 시초가 아닌가싶기도 하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여 두 세 글자만 쳐도,
관련된 정보가 줄줄이 뜨는 시대가 아니다보니,
오로지 모든 정보를 귀에 의존했다.
그러다보니 웃지못할 무지가 발생한다는것도 40 여 년 만에 알았다.
박건의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이라는 낭만적인 가사의 노래가 있다.
우연히 유투브로 이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보고 있었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인데, 여기서 지금껏 나는 저 "마로니에"를 잘못 알고 있었다.
가수의 발음이 안좋은지 내 귀가 잘못된건지, 나는 "마로니에"를 "말원위에"로 들렸기에,
40 여 년 동안 이 노래의 "마로니에"는 내게 "말원위에"였던거다.
어릴때는 그냥 "말원" 이라는 공원이 있나보다.
최근에 "마로니에"로 알고나서는 "마로니에" 라는 공원이 있나보다.
이걸 왜 공원이라 생각했을까?
내 무지의 상상에서 나온 산물이다.
"마로니에" 라는 글자를 검색해보고나서야,
그게 꽃과 열매가 달리는 나무라는걸 알고 실소를 머금었다ㅋ
며칠전에 집안일로 70 이 가까운 누님을 태우고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차안에서 나훈아의 "테스형" 이라는 노래가 울려퍼지자,
누님 왈~
"근데 "테스형"이 무슨 뜻이야?"
"아 고대 그리스라는 나라에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 이름이 소크라테스 인데,
끝에 두자만 떼내어 테스형이라 하는거야"
무심코 이렇게 말을 하고 보니,
지난 40 여 년 동안 "마로니에"를
"말원" 이라는 공원으로 알고있던 나와 무엇이? 다른가싶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