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의 시작
1978년경 고등학교 때
미술실에서 그림에 매달렸습니다.
미대를 갈려는 게 아니라
대학 가기 힘든 현실인지라
도피적 수단이었습니다.
당시 시골 우리동네에 40대 정도의
여자 장님거지가 있었습니다.
거지 몰골이라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동네 남자들 몇몇이 장님거지에게
강가 뚝옆에 비바람을 피할 오두막을 지어 줬는데
여기까지는 해피엔딩 같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거지가 아이를 낳고
얼은 강물을 깨고 갓난 애를 씻겼습니다.
그동안 동네 남자들이
거지의 오두막을 드나들었던 겁니다.
근데 여자거지에게 다른 남자거지 애인이 생겨
둘이서 오두막에 같이 살던 어느 날...
마을에서 좀 산다는 집에서
큰딸이 결혼한다고 잔치가 벌어졌고
당연 남자거지가 잔치집에 왔습니다.
술에 취한 그집 아들 K와 친구들은
남자거지를 끌고가 패죽여서
후미진 절벽 아래 버렸습니다.
밤에 돌아와야 할 남자거지가 안오니
여자거지는 지소에 신고합니다.
장님이지만 익숙한 길이니 잘 다녔지요.
며칠 뒤 K와 그 친구들은
포승줄에 묶여 현장검증을 나왔더군요.
그런데... 몇년 지나지 않아 K를 다시 보게 됩니다.
목숨값이 거지는 싼가봐요.
제 습작(에스키스)
고 1때 그린 그림 엽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