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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와 신앙
HIFI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1-30 15:14:06
추천수 0
조회수   2,568

제목

오디오와 신앙

글쓴이

성정훈 [가입일자 : ]
내용

여담입니다. 제가 예전에 교회를 다녔는데 신앙심이 투철한 교회 형들이나 누나들이 기도 응답을 받았다 그러면서 서로서로 기뻐하면서 토닥토닥 격려를 하고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목사님 맨날 하시는 말씀이 응답을 받는 신앙생활을 하라고 그러셔요. 아, 그렇구나. 신이 있기는 있는가보다. 그러니까 기도를 듣고 응답을 주시겠지. 그때부터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친구들이랑 기도원에 올라가서, 억지로 눈물 찍어 가며, 응답받을 때 까지 기도를 했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옆 친구들이 막 이상한 말로 기도를 하는데 덜컥 겁이 나는 겁니다. 드디어 이 인간들이 미쳤구나...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내려가서 일요일에 교회에 갔더니 이 약간 이상해진 친구들이 무슨 신앙의 영웅 대접을 받는 겁니다. 방언 기도라는 성령의 은사를 받았데요. 저만 빼고 ㅋ~ 마치 신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고 보무도 당당히 교회문을 나서는 친구들과 그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교회 사람들을 바라보며 저는 무척이나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아, 기구한 팔자여. 사람들에게도 왕따 당하고 신에게서도 버림을 받았구나... 나는 마귀인가보다. 마치 오멘에 나오는 데미안처럼...

그러나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신께서 비록 나를 받아주시지 않더라도 그의 쓰레받기와 비가 되어서라도 구원을 얻으리라 다짐하고 교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여자요? 눈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때는 선교단체에 가입해서 열성적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군제대 후 붕어빵 장사를 해서 모은 돈으로 해외선교여행까지나 다녀왔습니다. 이만하면 됐겠지... 그러나 신께서는 제게 어떠한 응답도, 빵 부스러기조차도 허락하지 않으시더군요. 그래서 결국 최후의 수단을 택했습니다. 그래, 내가 이렇게 했는데도 응답을 안해? 이런 경우 없는 양반을 보았나. 내가 당신 정체를 밝히고야 말겠소! 섶에 누워 쓸개를 핥으며 3개월 간 노란 기출문제집을 달달 외워서 5:1이라는 엄청난 경쟁율을 뚫고 마침내 광나루에 있는 신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후로 3년, 소위 신의 부르심을 받아야만 공부할 수 있다는 예언자의 동산에서 신학이란 걸 배웠습니다. 교회 형 누나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수두룩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죽지 않고 오멘의 정체를 교묘히 숨기면서 열심히 주독야독, 형설지공, 절치부심, 와신상담, 신의 정체에 대해서 A급 신학자들의 저서만을 골라 본격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거두절미해서 요점만 말씀드리자면 지금 교회에서 난무하는 무슨 하나님의 직통계시를 받았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하는 말들이 사실은 지극히 주관적인 종교경험으로서 그런 체험이 신앙의 증거나 표준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오호라, 내가 마귀는 아니로구나. 오케이. 그리고 다음, 그럼 당신은 대체 뭐하는 분이요? 그건 예수에게 물어보아라. 그래서 벌거벗겨져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예수에게 갔습니다. ...... 이 다음부터는 진정으로 신을 만났고 나아가 마침내 그 신으로부터마저 자유롭게 해방된 과정이기에 생략하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 때부터 진짜 마귀가 되었습니다. 담배도 맛있게 피우고, 가끔 술도 마시고, 초상집에 가서 넙죽넙죽 절 하고, 교회는 근처에도 안 가고, 오히려 이태원 이슬람 사원 같은데 어슬렁 거리고, 누가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신의 음성을 들었다 그러면 그거 다 뻥이다, 이래서 개신교가 사이비 소릴 듣는다, 목사들이 공부를 안 하니 신자들이 허황된 소리를 하고 다닌다, 이런 의혹과 비판을 일삼는 사탄의 괴수로서 가장 존경하는 3인을 꼽으라면 의혹의 대가들인 맑스, 프로이트, 니체를, 그리고 이 셋을 지양하고 종합하는 聖人으로서 드디어 우리 경애하는 도스토예프스키 선생님을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본론인데 아, 담배가 너무 피우고 싶군요. 잠깐 나갔다 와서 다시 쓰겠습니다!^^

그래서, 불후의 작가께서 감옥에서 나오시면서 하신 고백이 마귀를 대오각성하게 만들었어요. 그렇다고 뭐 돌아온 탕자 스토리는 아니고요, 그럼 인용하겠습니다.

"...진리는 불행 가운데서 빛나는 것이기에 사랑은 그런 순간마다 '바싹 마른 풀'처럼 신앙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 그것을 발견한다고 말입니다. 나 자신에 관해 들려드리겠습니다. 난 여지껏, 그리고 관 뚜껑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시대가 낳은 평범한 아이이자 불신과 의심의 아이였고 또 그럴 겁니다. 왜 신앙을 향한 이런 목마름이 내 영혼 속에서 거세질수록 그와 정반대되는 관념들도 그만큼 더 많아지는 고통을 겪어야 하고, 또 지금도 겪게 되는 걸까요? 하지만 때때로 하느님은 온전히 평화로울 수 있는 순간을 제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런 순간마다 난 사랑을 느끼며 내가 타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또한 만물이 명확하고 성스럽게 느껴지는 믿음의 상징을 스스로 그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상징은 간단합니다. 바로 이겁니다. 그리스도 그 분보다 아름답고 심오하며 연민이 넘치며 합리적이고 용기 있고 완벽한 것은 없다고 믿는 것, 아무것도 없을 뿐 아니라 질투 어린 사랑으로 그런 것은 있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더 나아가, 설령 누가 내게 그리스도는 진리 밖에 있다고 수학으로 증명해 보인다 할지라도, 나는 진리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남는 쪽을 택할 겁니다..."

아니, 이반 까라마조프로 대표되는 무신론과 의혹의 정점에 계신 도스토예프스키 선생께서 어떻게 이런 불경한 말씀을??? 때로는 미신 같아 보이는 기도의 응답이라든지,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허황되어 보이는 신앙이라든지, 내가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타인에게는 성스럽고 소중한 어떤 경험을 엉터리라고 매도할 자유가 내게 있는지 반성하게 되었지요. 물론 저는 지금도 그런 허황된 말은 전혀 믿지 않습니다만, 진실로 무언가를 굳게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믿음이 실재가 된다는 사실만큼은 자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믿음의 세계 속에 사는 사람의 경험을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믿음은 수학적 증명 너머에 있는 게 아닌가. 인간이 만들어 낸 그 어떤 것 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한 정신세계를 어떻게 실험실의 논리로 재단할 수 있을까. 실증주의와 과학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예술과 아름다움이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도선생 왈, "아름다움이 세계를 구원할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저는 여전히 기독교 신앙과 성서의 의미를 학자들의 비판적 연구에 의지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만, 이제는 더 이상 개인의 신앙세계를 내 경험으로 재단해서 비판하지 않으려 합니다. 각자의 마음은 다 하나씩의 우주인 셈이지요. 최근 논쟁에 비추어 세 푼의 진실과 일곱 푼의 허구로 소설을 하나 써 보았습니다. 참고로 저는 가난한 실용파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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