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자식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께서,
직장암 진단에 의해 수술을 받으셨다.
생업의 문제로 간병을 할수없어 간병인을 불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거의 반 이상이 조선족 나이 드신분들께서 간병일을 한다는걸 알게됐다.
어쨋거나 어머니 담당으로 조선족 간병인이 간병을 하게 되었는데,
몆 일이 지나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조선족 간병인이 말귀도 잘 못알아듣고 간병일을 잘 못한다는거다.
코로나때문에 가족도 면회가 안되는 상황에서,
가족이 간병을 하려면 코로나검사를 받고,
이상이없다는 통보를 받아야만 간병을 할 수가 있다고 한다.
수술후 얼마나 고통을 받으셨을까...
가슴이 메어져 생업을 포기하고 직접 코로나검사를 받았다.
다음날 이상이 없다는 문자통보를 받고 병실에 입실하였다.
입실해보니 병실이 5 인 실이였는데,
어머니 외에, 36 년을 모셨다는 어느 며느님이 돌보는 환자와,
간병인이 없어도 되는 경증환자와,
아내를 직접 간병하시는 반백의 어르신이 계셨다.
이 모습은 2~3 일이 지나면서 환자들의 입출입 변동으로,
4 병상의 간병인이 모두 조선족 간병인들로 바뀌게 되는데,
눈앞에서 그들의 간병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오해한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게됐다.
같은 동족이 모이니,
가끔은 자기들끼리 중국말로 소통하며 시끄러운 부분도 있긴 했지만,
머나먼 타향에 와서 이마저 없다면,
마음깊은 외로움을 어찌 다 견딜까.. 이해못할 부분도 아니었다.
특히 환자들을 돌보는 모습은 오랜 노하우가 쌓여서인지 척척 막힘이 없다.
서로 뜻이 통하니, 도움이 필요한 환자에겐 서로서로 협조하기도 한다.
나중에 업체 팀장을 통해 들은 얘기지만,
내 어머니의 간병을 맡았던 분은,
귀가 좀 어두워 잘 듣지를 못하여 어려움이 있었던듯 하다고 했다.
어쨋거나 수술후 통증으로 소리치는 환자와,
내 어머니의 1 시간이 멀다하고 밤새 화장실을 들낙거리시는 통에,
잠이 좀 모자르긴 했지만,
그 무엇보다 난감했던건 화장실에서의 어머니 대소변 뒷처리였다.
정신이 멀정하신 어머니께서,
연세는 드셨지만 그래도 여성인지라,
차마 본인의 부끄러운 모습은 아들에게 보이기싫어,
화장실까지 부축해드리면 문을 닫으시고 불편하게 혼자 뒷처리를 하니,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신듯했다.
전에 간병인은 어떻게 했냐고 어머니께 물으니, 물로 깨끗히 씻어줬다는데,
왠지 이 문제는 신성불가침영역처럼 느껴져서,
차마 내가 어찌해본다는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결국 간병 4 일만에 다시 간병인을 부를수밖에 없었다.
가끔 TV를 보다보면,
노모를 극진하게 보살피며, 화장실 대소변 뒷처리까지 거리낌없이 하는걸 보게 되는데,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과 함께 존경스럽기까지 했었는데,
막상 내 눈앞의 상황이 되어보니,
그 분은 존경을 넘어서 신계에 다다른 분이 아닌가싶다.
어쨋든간에 다시 5 일이 지나, 어머니께서 호전이 되어 퇴원을 하셨다.
여전히 형제자매들이 돌아가며 수발을 드는 상황이긴하지만,
병원에 계실때처럼 통증을 호소하지는 않으셔서 다행스럽긴하다.
그나저나 간병한다고 직장까지 그만두어 뭐라도 다시 하긴해야할텐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