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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테스트에 대한 망구 나만의 생각
HIFI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1-28 09:33:59
추천수 0
조회수   708

제목

블라인드 테스트에 대한 망구 나만의 생각

글쓴이

김원전 [가입일자 : 2004-12-22]
내용
와싸다의 선배제현님들 ! 좋은 한 해의 시작이 되셨습니까?

정초부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이지만 저같이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기록에 남기기 위하여 글쓰기를 하오니 많은 조언과 양해를 당부드립니다.

글쓰기의 편의성을 위하여 편한체를 사용합니다. 넓은 이해를 당부 드립니다.









블라인드 테스트에 대한 망구 나만의 생각





오됴생활의 기본은 비실용론이다. 여기서 기본이라 함은 쪽수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용인들이 이러한 쪽수의 부족함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소신있게 펴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바로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것 때문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블테가 과학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아마도 많은 비실용인들도 블테를 해보았을 것이다. 오됴인으로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해석에 평생을 걸어오신 분들이 드글드글한 와싸다에서 블테를 하지 않았다고 믿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곳 게시판에서 비실용인들이 블테를 한 결과에 대한 게시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왜 없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비실용인들의 블테나 실용인들의 블테의 결과나 동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도 무방하다.



블테를 해보니까 갑, 을의 구별이 안되더라가 정답이다. 그러니 그 결과를 발표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발표를 한다는 것은 기존의 신념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인데 블테라는 과학적 결과물과 내 실존이 체험하는 사실적 느낌의 괴리를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자!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실용인들도 블테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기는 하지만 블테라는 것에 대한 기본 이해도가 결여된 것 같다. ( 순전히 저의 관점에서 입니다. )



블테는 어떤 판단을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목적은 판단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것은 이 판단이라는 문제이다.



어떤 것에 대한 판단의 가장 기본은 인식이다. 인식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판단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다. 설사 억지로 판단을 도출해 낸다고 하여도 온전한 판단이라고 믿을 근거는 없다. 즉 비과학적이라는 뜻이다.



실용인들은 판단에 대한 기본 이해가 결여되여 있는데 인식에 대한 이해가 있을 턱이 없다. 그냥 귀로 소리가 들리면 그것은 다 같은 소리라고 느낀다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우리가 어떤 소리를, 그 중에서 음악을 듣고 느낀다는 것에 대한 과정을 상상해 보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음악 인식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스피커에서 음악이 음파를 타고 나의 귀의 고막을 울린다.

2. 고막의 진동은 나의 귀의 여러 과정을 거쳐 뇌에 전달된다.

3. 뇌에서 그것을 인식하여 내가 알 수 있다. 즉 판단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잡생각을 줄이기 위하여, 즉 순수한 음악만을 인식하기 위하여 다른 인식기관의 기능을 정지시켜 ( 특히 헛된 생각의 주원인인 비싼 것에 꿈뻑죽는 천박한 마음을 제어하기 위하여 눈을 가린다. ) 순전히 음악적인 성향만을 뇌에게 판단하게 함으로써 올바른 판단을 한다고 하는 것이 블테의 목적이자 과정이다.



그런데 만약에 위의 전제가 참이 아니라면 블테가 올바른 결과를 내지 않을 것이다. 즉 블테의 결과는 신뢰 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다.







자 지금부터 내가 알고 있는 음악 인식의 단계를 알아봄으로써 양자를 비교해 보자. 나의 음악 인식의 단계가 더 정확하다면 내 말이 맞고 ( 실용인들은 삽질을 해오고 있었고 ) 실용인들의 음악 인식의 단계가 맞다면 내가 뻘짓을 한 것이다. 결과는 둘 중의 하나이다.







1. 스피커에서 음악이 음파를 타고 나의 몸을 울린다.



여기서 부터 실용론과 나는 다르다. 나는 음악이 고막만을 울리지는 않는다고 본다. 내 오감도 울린다고 본다. 정도의 문제이지 인간의 오감 ( 눈, 귀, 코, 혀, 몸 )의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극저음파 무기를 상상해 보시기 바란다. 실제로 있는 무기이다. 인간에게 극저음파를 방사하여 최악의 경우에 인간을 미치게 할 수 있는 무기가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초저음파가 인체를 통과할 때에는 인체 내의 장기들이 낮은 주파수로 음파와 공명을 일으킨다.그러면 신경조직이 그에 따라 반응하기 때문에 매우 불편한 느낌이 든다. 목을 통과하면 목을 조이는 느낌을 받고 성대가 공명을 일으킨다, 그래서 잠자던 사람이 깨게되고, 편도선이 부은 듯한 느낌이든다. 당하는 사람은 어떻게 당하는 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에는 정신질환의 상태까지 갈 수 있다.



인간이 귀로서도 못느끼는 음파를 몸은 느낀다는 이야기이다. 귀로서도 못느끼는 초저음파를 느끼는 몸이 귀로서도 느끼는 음파를 못느낀다고 볼 이유는 전혀 없다. 결론은 몸도 음파를 느낀다는 것이다.





2. 온몸의 진동은 나의 몸의 여러 과정을 거쳐 뇌에 전달된다.



이부분은 실용론과 대차 없다. 음악을 듣는 센스가 귀뿐이냐, 아니면 몸 전체이냐의 차이 뿐이다.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본론은 지금 부터이다.





3. ( 뇌에서 그것을 인식하여 내가 알 수 있다. 즉 판단한다라고 생각한다. ) 이 부분이 너무 엉성하다. 뇌에서 인식하는 기제를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너무 두리뭉실하다. 이것은 그냥 알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좀더 정교한 이론이 필요하다.



나는 뇌에서 의식하는 작용에 대하여 여러가지 학설을 알고 있지만 이것보다 더 정묘한 이론을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 이론에 의하여 판단하고자 한다. 이 이론은 불교의 유식론이다.



갑자기 종교의 이야기가 나오니까 거부감을 느끼거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닐 까 하는 의혹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냥 인간의 인식체계에 대한 한 판단이라고 보면 된다.





유식론의 인식체계를 낯설어 할 필요는 없다. 현대 철학의 인식론과 대차 없다. 조금 구체적이라는 것 뿐이다.



눈, 귀, 코, 혀, 몸을 센스로 사용한다. 그리고 정신 작용에 의하여 의식한다. 이것 까지는 비실용론의 인식론과 똑 같다. 여기까지가 6식이다. 여섯가지의 작용이라고 보면 된다.



유식론은 센스를 통하여 입력된 정보가 두뇌에서 막바로 작용한다고 보지 않는다. 어떤 과정을 거친다고 본다. 그 과정이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까지 합치면 8식이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터는 이 두 과정이다.



쉽게 이해할려면 프로이드가 인간의 의식 이전에 무의식, 전의식, 자의식이 있다고 했다. 의식 과정 이전에 전의식이라는 또 하나의 숨은 과정이 있다고 한 것이나 유식설이 두 가지의 식이 더 있다고 한 것이나 동일하게 보면 된다. 유식설이 좀더 자세히 설명하였다는 것 밖에 차이점은 없다. 종교에 거부감을 느끼신 분은 제가 지금 부터 설명하는 나머지 두 개의 과정을 프로이드의 무의식이거나 전의식이거나 자의식이라고 방편적으로 이해하셔도 무방하다.



유식론은 의식이 감각기관에서 온 정보를 직빵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두 개의 과정을 더 거쳐서 처리한다고 본다. 그 두 개의 과정이 말나식과 아뢰야식이다.





제칠식인 말나식은 사량식이라고도 한다. 사량식이라는 것은 계산하고 헤아린다는 뜻이다. 쉽게 설명하면 통박을 잰다는 것이다. 무슨 통박을 재느냐하면 무엇이 나에게 유리한가를 따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리하다는 것이 무엇에 유리하다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무엇이 나의 보존과 생존 및 즐거움에 유리하냐는 것을 따지는 것이다. 완전히 자기 보존적인 에고에 기준을 둔 통박을 말 한다. 인간의 모든 생리적인 욕구나 생존의 본능에 바탕을 둔 결정은 말나식의 작용이라고 보면 된다. 감정은 의식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여 지지만, 그 발현은 자기 보존의 욕구인 생존 본능에 기반을 둔 것이어서 말나식에 그 뿌리가 있다고 하겠다.



이 말나식은 프로이드식으로 표현하자면 잠재의식이 될 것인데, 프로이드가 표면의식보다 잠재의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처럼 불교도 의식보다는 말나식을 더 근원적이며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말나식에 의하여 나라는 것에 대한 집착이 있다고 보며 모든 집착의 근원이 이놈의 말나식 때문 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마지막 식인 제팔식이 아뢰야식이다. 아뢰야식은 장식이라고도 하는데, 즉 저장해 놓은 식이라는 뜻이다. 그럼 무엇을 저장해 놓은 저금통이냐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의 모든 기억이 ( 전생의 기억을 포함하여 ) 저장되어 있다고 본다. 전생의 기억을 본유종자라고 하며, 금생의 기억을 신훈종자라고 본다. 지금의 교육의 정도는 나의 신훈종자에 다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



그 사람의 모든 기억이라는 것을 불교에서는 업이라고 한다. 업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그 사람이 살아온 모든 행적이다. 즉 기억의 전부이다. 그 사람의 기억에는 그 사람과 관련 된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그 정보에는 인간이 살아온 모든 정보가 같이 담겨있다고 본다.





다시 간단히 설명하자면, 뇌를 기반으로 하는 의식은 눈, 귀, 코, 입, 몸의 센서로 통하여 들어온 정보를 말나식과 아뢰야식을 이용하여 처리하며 이 모든 처리가 끝난 상황이 나의 마음이라고 본다. 나의 마음의 발현이 나의 인식이고 판단이며 나의 행동이다.





위와 같은 뜬구름 잡는 현학적인 이야기를 현실에 비유하여 풀어보자. 그러면 좀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내가 어떤 소리를 들었다. 아 그것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였구나라고 느낀다는 것은 나의 머리속에 동백아가씨라는 정보가 있을 때 만이 가능하다. 즉 아뢰야식이 작용하여야만이 가능한 판단이다.



어! 이 스피커는 저음이 둥둥거리는구먼이라고 판단 하려면 나에게 이미 저음이 통통거리는 것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가능하다. 둥둥이건 통통이건 다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에게 입력 된 정보 이상은 알 수 없다. 그 입력된 정보의 총체가 아뢰야식이다. 아뢰야식의 여과과정을 거치지 않은 판단은 없다. 만약 아뢰야식의 여과과정을 원할하게 하지 못하게 제약을 가하면 올바른 인간의 인식이라고 할 수 없다. 오됴세계에서 많이 쓰는 말로 왜곡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이담야 ㄹㄹㅇㄹ대아니ㅏ당아2345ㅕㅏ아 파댜닝 ㅏ 미쟈아ㅣㄴ





위의 문장이 무슨 뜻이지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이 계신지 모르겠다. 쓴 나도 모르는데.....



나의 아뢰야식의 범위를 벗어난 것을 자판에 두들겼는데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보는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블테도 마찬가지 이다. 현 블테의 결과는 저 위의 문장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에 아무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인간의 아뢰야식에는 음악의 높낮이와 음질의 고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편견도 있고, 혹시 비싼게 좋은 게 아닐까라는 망구 지생각도 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소박한 마음도 있는 것은 당연하다.



다시한번더 풀어 쓰자면 음악을 듣는다 - 의식이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정보를 이용하여 처리한다 - 의식이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 갑과 을의 소리가 똑 같구먼.... 어 소리가 전혀 다르네..... 이게 뭔 소리유..........





의식이 말나식과 아뢰야식의 정보를 이용하는데 제약을 두는 어떠한 방법을 사용한 실험도 인간에게는 무효이다. 인간의 판단으로서는 존중 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결론은 블테는 비과학적인 실험이라는 것이다. 과학적인 방법만 사용하였지 ( 그러므로 타인에게 과학적인 것 처럼 보이지만 ) 과학적인 체계를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기체이며 생물이다. 몸 따로, 코 따로, 귀 따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전 오감을 동원하여 취득한 정보를 인간적인 본능과 ( 말나식 ) 기왕에 입력된 정보에 ( 아뢰야식 ) 의하여 처리된 인식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생물체이다.



위의 작용 중 어느 하나라도 인위적으로 제약을 둔 결과물을 인간의 판단이라고 중시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뱀발 --- 이것은 농담의 말씀이지만 만약 집에서 앰프에 담요를 두르고 오됴생활을 한다면 비실용인들의 견해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듣는 것도 제약을 둔 상황인데 판단자체가 제약을 두었다고 해서 멀리 할 필요가 없을테니까요.













짧은 실력에 말이 산만하여 졌습니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돈 수 백 배



황 련 산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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