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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경선탈락에 대한 또 다른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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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4 16: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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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경선탈락에 대한 또 다른 생각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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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석 [가입일자 : 2013-01-27]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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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이 결국 경선 탈락 되었네요.
물론 경선의 원칙에서 과정과 결과는 분명 민주적이었으나
그 결과에 대한 뒷말이 무성한 것 같아
일면 씁쓸한 뒷맛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금태섭에 대한 저의 감정도 그리 좋지 않았고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자 진보진영의 필생 목표였던
공수처 설치와 검찰개혁에 엇나간 판단을 한 것도 부아가 치밀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또 다른 관점에서 금태섭의 경선탈락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민주주의가 과연 순혈주의로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요.
민주주의는 평등하면서도 차별이 없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대다수 사람들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좀 더 포괄적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극우에 가까운 태극기부대까지도 포함됩니다.
다만 생각이 다를 뿐 그들도 똑같은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민주당이 전국정당이면서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은 정당을 지향한다면
금태섭을 조금 더 배려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물론 저 역시도 금태섭이 영 마음에 들지 않고
상당부분 미통당의 생각과 궤를 같이하는 것에
많은 의아심은 물론 분통이 터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금태섭을 품고 안아주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요?
아마도 그랬더라면 민주당이나 미통당이 사활을 걸고 끌어들이려는
중도층에 보다 많은 유인요인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금태섭이 민주당 총론에 어긋나는 언행을 할 지라고
그 금태섭에 의해 더 많은 확장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이 좀더 큰 이익이 되지 않았을까 감히 유추해 봅니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거나 매도하는 사람들은
흔히 "친노"나 "친문"의 획일성을 비난합니다.
물론 그것이 전혀 사리에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당의 속성이나 민주당의 핵심 구성원으로 보면 합당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당은 분명 "친노"나 "친문"이 중심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열성 지지자"와 "극성 지지자"는 분명히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극성 지지자들 중에는
상당수가 어떤 목적을 갖고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소한 구의원, 시의원, 도의원, 국회의원은 물론
여러 공기업이나 사기업에 낙하산으로 가거나
또는 다양한 종류의 사업과 연계되어 권력을 등에 업고 이권을 노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편이 정권을 잡아야 된다는 사고가
거의 세뇌된 사람들과 다름 없습니다.
한 예로 드루킹과 같은 부류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권력 주변에 그런 사람들 무지 많습니다.
아무리 사회가 투명화 되고 부정부패가 줄었다고 하더라도
소위 "권력"과 연계된 이권추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현재는 보다 정밀해지고 은밀해졌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 중 보편타당한 사고를 보유한 사람도 있지만
어느 일방에 지나치게 경도된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미통당이나 꼴보들의 논리를 전혀 수용하지 않듯이
꼴보들 역시 우리들이 추구하는 세상의 관점을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고 한탄하지만
그것은 꼴보들 시각 역시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가끔씩 그들이 하는 얘기 중에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관점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어떤 현상이나 관점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인데
그럴 때마다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필요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생각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체적인 진행과정은 변하지 않겠지만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오류를 반대자로 부터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한 관점에서 이번 금태섭은
일관된 민주당의 시각을 가끔 브레이크를 걸어
스스로 자기점검을 하고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오류를 점검하는 필터로 존재시켰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예들 들면 어떤 문제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일반적으로 "과반수"를 대략적인 전체의사로 간주하여
과반수가 동의하면 합법성을 부여하고 인정됩니다.
그런데 5:5에서 어느 한 사람이 다른쪽의 의사에 동조하면
한쪽은 합법성을 확보하고 다른 한쪽은 아무리 내용이 정당하고 우수하더라도
소수로 전락하여 목적하는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근래 금태섭이 경선에 탈락하자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포털의 댓글에서
"금태섭은 미통당으로 가 버려라"라는 등의 주장들이 난무합니다.
정말 씁쓸하기 이를 데 없고 짧은 생각에 한탄이 절로 나옵니다.
오히려 위로하고 보듬어 줌으로서 금태섭 스스로
자신을 돌아 볼 공간을 제공해 줘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조금도 아량을 넓혀야 하고
포용성을 더 크게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친노" "친문"이라는 프레임을 반박할 수 있고
또한 더 넗은 스펙트럼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순혈주의,
같은 피로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을 말하지만
세상은 절대 그 순혈주의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단군의 자손, 백의의 민족 등의 순혈주의를 외쳐봐야
사실은 36개의 유전자가 뒤범벅된 다민족의 후손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시소가 설치목적에 따라 작용하려면 양쪽에 사람이 앉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고
몸무게가 비슷해야 합니다.
한쪽에 사람이 없으면 시소는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합니다.
설사 한쪽 사람의 몸무게가 많으면 위치를 조정하여
비슷하게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국가 역시 여당이 있으면 야당이 있어야 하고
이것은 상호견제를 통한 사회발전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 입니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는 다중의 보편적인 가치공유가 목적이지만
"고인 물은 필시 썪을 수밖에 없다"라는 격언과 같이
아무리 좋은 생각으로 모인 사람일지라도
같은 패거리들끼리 오랜 세월동안 동거동락하면
인간본연의 속성인 "욕망" 때문에 100%, 1,000%
부정과 부패, 또는 사고의 퇴행과 행위의 열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개좆같은 놈들이라도 상대가 필요하고
또 그렇게 싸워가면서 경쟁하고
그 경쟁 속에서 세상은 조금씩 전진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민주당도 당론에 충실한 사람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당론을 거스를지라도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경우에 따라 분란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결론은 상호 견제와 보완이 이루어져
보다 나은 지향점을 도출할 수 있는 순기능의 역할도 적지 않으니까요.
정리하자면,
저 역시 금태섭에 호감이 없습니다.
도대체 당인(黨人)으로서의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점이 민주당에 필요하기도 하고
중간 위치에 있는 중도파들의 흡인요인을 보유할 수 있습니다.
전기한 바와 같이 정치는 일종의 게임이고
5:5에서 5중의 어느 하나가 어느편에 가담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ps :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금태섭이나 조응천을 비난하지만
반대로 미통당 지지자들은 금태섭, 조응천에 호감을 갖고
반대로 미통당은 김세연을 사정없이 비난하고 없애버려야할 인간으로 꼽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은 김세연에 호감을 느끼는 것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우리 모두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당과 미통당의 중간에 서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표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필히 새겨야할 것은 "정치는 이상이 아니고 현실" 이라는 것입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전쟁이 벌어졌으면 무조건 이겨야 되는데
지고나서 이것저것 후회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사후 약방문"일 뿐입니다.
수천년 인류 역사에서 "패자는 말이 없다"라는 것이 정설이고
승자는 과정이 아무리 개같았어도 정당성을 인정받는 다는 것 또한
현실 중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절대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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