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즐겨찾기추가
로그인 회원가입 | 아이디찾기 | 비밀번호찾기 | 장바구니 모바일모드
홈으로 와싸다닷컴 일반 상세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와싸다 문학관] 자작 단편소설 - 1999년 12월 31일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9-11-17 19:52:55
추천수 1
조회수   817

제목

[와싸다 문학관] 자작 단편소설 - 1999년 12월 31일

글쓴이

김일영 [가입일자 : 2003-09-26]
내용
 올해는 파주에는 유난히 비가 내리는 듯 합니다.

 추적추적 지금 내리는 이 11월 비가

 몸은 춥지만 저의 마음에는 따듯한 비가 내려 삶의 한 귀퉁이가 둥글게 녹아내리는 듯 합니다.

 둥글게 둥글게~

 완고해질 수 있는 요즘 치열한 삶에 모진 마음은 내려놓자고 다독입니다. 

 

 학창시절에 썼던 단편 소설 올립니다. 

 제목은 <1999년 12월 31일>입니다. 



-----------------------------------------------------------------------------------------------------------------------------------------



1999년, 12월 31일

                                                                              




 1. 달력




 맏이로 태어난 내가 집에서 맡은 임무는 달력을 찢는 일이었다. 금욕적인 가톨릭 집안이여서일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날 아버지는 저녁식탁에서 “오늘부터 네가 할 일은 달력을 찢는 거야. 그걸 하지 않으면 그날 저녁은 굶는다.”고 이야기 했고 이후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매일 찢어왔다. 물론 365일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에서 잠을 자는 날 만큼은 내가 해야만 했다. 몇 번 온 식구가 저녁을 굶은 다음부터 그 일은 숨 쉬는 것과 같은 내 일상이 되어버렸다. 

 ‘block calendar’라고 하던가. 창호지처럼 연한 종이에 그날의 날짜가 큼지막하게 찍혀있는. 희고 네모난 백설기를 손끝으로 조금씩 뜯어먹듯 두꺼운 달력이 서서히 얇아질 때면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세월의 흐름을 잡으려 애썼다. 이는 아버지의 숭고한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자극하는 쾌감이 있었다. 불쾌한 일이 있을 적마다 ‘몇 월 며칠 제조회사’가 찍힌 그날 달력을 확 낚아채 구겨버리면 마치 그 감정을 구겨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미끈거리면서 연한 재질의 종이가 사그락 거리며 구겨질 때의 촉감과 소리 또한 그 맛이 살아있었다.   

 대학에 들어가며 저녁을 굶는다는 규제가 풀렸다. 하지만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불쾌한 일이 있을 적마다 달력을 생각하게 되었고 식구 중 누군가가 이미 찢어 놓았으면 허탈한 감정이 물밀듯 밀려와 ‘내 방에 걸을 달력을 새로 살까’ 생각할 정도였다. 

 다른 곳에서도 달력을 쳐다 볼 때면 떠올려 본다. 쓰레기 통으로 들어간 구겨진 감정들. 그 감정에 얽힌 무수히 많은 기억들. 또 사람들. 돌이킬 수 없기에 모두 모아 불살라 버리고 싶은 달력 낱장들. 

 

 2. 유리 벽




 어두운 터널 속에서 숨 가쁘게 뛰어갔다. 저 멀리 출구임을 알 수 있는 하얀 불빛이 작은 점이 되어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손을 뻗어 어깨를 움켜질 것만 같아 더욱 힘차게 뛰어갔다. 숨이 벅차옴에 따라 하얀 불빛도 더욱 강렬하게 흔들렸다. ‘혹시 출구가 닫히면 어떻게 하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계속 불안해지고 하얀 불빛도 점점 멀어졌다. 붉게 달구어진 인장이 등을 지졌다. 순간적으로 놀라 뒤를 돌아보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내 목소리가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눈을 떠 보니 새벽이었다. 런닝 셔츠에는 땀이 흥건하게 괴어있었고 침대에는 땀으로 내 몸 자국을 냈다. 등에 아직 따가운 감촉이 남아 손으로 쓸고 일어섰다. 똑같은 꿈이 반복되며 자주 가위에 눌렸다. 기숙사 룸메이트들의 곤히 잠든 숨소리가 좁은 방을 울렸다. 베란다로 나가 난간에 걸터앉았다. 동이 터와 푸른 기운이 짙은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림자가 천천히 또 길게 드리워졌다. 입에서 튀어나온 한 숨이 하얀 입김이 되어 사라졌다.

 약한 불에 익힌 듯 살짝 들뜬 설렘으로 새 학기를 시작했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작년에는 후배가 없어서 좋았다. “저 선배야. 저 선배.”하며 지나쳐간 후배들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을 때면 그 기분은 참혹한 것이었다. 

 집안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영화과에 입학했고 공동 작업이 주를 이루는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끊임없이 지쳐갔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서글서글하고 온순한 표정 덕분인지 기장으로 뽑혀 아이들을 모이게 만드는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엄한 아버지로부터 철저히 배운 것은 책임이었다. 무거운 돌이 되어 가슴을 짓누르는데도 웃으며 끌고 가야 했다. 어느 날 갓 복학한 선배가 술에 잘 익은 얼굴로 와서 말했다. 아이들을 굴릴 테니 수업이 끝나고 모두 모아 놓으라고. 그날 수업이 귀에 들어 올 리가 없었다. 수업시간 내내 가시방석 위에 앉아 고민해야 했다. 대학생이 되어 고작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왜소함에 분노를 느꼈다. 결국 순박한 영웅심의 발로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수업이 끝난 텅 빈 강의실에서 선배들에게 둘려 싸여 뺨을 세차게 맞아야 했다. 사건은 그 후에 일어났다. 기분을 풀자고 마련한 술자리에서, 달력을 너무나 찢고 싶어서, 앞자리에 그 선배가 앉아서, 슬그머니 눈이 마주 쳤을 때 군림하는 자의 경쾌한 미소를 지어서, 그 미소 짓는 입 끝에 달력이 걸쳐 졌기에, 순간적으로 잔에 들어있는 소주를 그 선배의 얼굴에 뿌렸고 바로 주먹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 선배는 술에 곤죽이 된 상태였기에 처음부터 게임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가슴에 차곡차곡 쌓아온 무거운 돌들이 그 선배의 얼굴을 향해 폭발했다. 주변의 만류로 정신을 차렸을 때 그 선배의 얼굴은 잘 익은 피자와 같았다.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어떤 광기가 내 안에 잠들어 있었나보다. 처벌은 가혹했다. 선배들 모두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4학년, 졸업 작품에 투입되는 일명 ‘시다’에서도 제외되었다. 나와 관련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나와함께 있으면 많은 불이익을 받아 동기들도 차츰 외면하기 시작했다. 내 행동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했지만 변명같이 들려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선, 후배로 짝을 이뤄 화이트보드로 노출보정을 하는 시간이었다. 셋팅을 잡아줄 선배가 없어 혼자 카메라를 잡아야 했다. 뷰파인더에 맺히는 상의 명암변화에 따른 렌즈의 노출수치를 적어 교수에게 제출해야 했기에 두 사람이 있어야 수월하게 진행되는 작업이었다. 혼자 카메라를 잡고 당황해 하자 교수는 두꺼운 뿔테안경을 내리고 노려봤다. 선배그룹과 후배그룹으로 나뉘어 앉아 있었는데 동기들에게 앉은 곳을 쳐다보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도와달라고 말했다. 목이 메었다. 한 순간 짧지만 긴 정적이 흘렀다. 친하게 지냈던 녀석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정작 도와주러 걸어 나온 사람은 선배그룹에서였다. 아직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그 선배가 계면쩍은 듯 걸어 나왔다. 감동받아 마땅한 순간이었지만 나는 굳은 표정 뒤로 코웃음을 칠 수 밖에 없었다. 그 코웃음은 이런 전형적인 시나리오로 흘러오게끔 만든 내 삶의 태도에 대한 냉소였다. 하지만 나를 향한 냉소인데도 그 자리에서 코웃음 치지 못했다.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는 행동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내 삶의 어떤 것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워졌고 기분은 참담해졌다. 

 그 후 선배들의 조치는 해제되었다. 적당히 웃으며 뒤섞였지만 진심으로 어울릴 수 없었다. 투명한 장막이 내 앞에 쳐져버린 듯 했다. 손을 내밀어도 곧 옴츠러들었다. 장막이 얇았을 때 찢어버려야 했지만 어떤 식으로 찢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고 그때는 짐작만 했을 뿐이었다. 장막은 점차 두터워지며 유리로 만든 벽으로 변해갔다. 갑갑해 졌다. 세상을 바로 바라보고 싶어도 유리에 반사된 내 모습을 먼저 보게 되었다. 마음이 혼탁해지면 유리에도 역시 성에가 끼여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대화를 해도 유리벽을 거쳐, 내가 투영된 이야기만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귀 기울였다. 유리벽이 옥죄기 시작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무엇인가 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4월이지만 날은 아직 쌀쌀했다. 베란다에서 나와 자판기가 있는 복도로 걸어가 커피를 뽑았다. 뜨거운 김이 올라와 살짝 얼은 코끝을 적셨다. 그래서였을까. 따듯한 커피가 몸 안으로 서서히 퍼지며 코끝이 찡해졌다. 머리로 피가 쏠리는지 점점 눈에 힘이 들어갔다. 봄이 왔지만 마음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두려웠다. 그리고 너무나 외로웠다. “4월, 그 혹독한 겨울의 시작.”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3. 슬픈 오리와 네눈박이




 삐삐라고 불리는 호출기에서 휴대폰으로 바뀌는 시점이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해 무수히 많은 사이트들이 쏟아졌다. 슬픈 오리는 그때 사용하던 아이디였다. 처음으로 가입한 사이트에 아이디를 쓰려 하는데 모니터 바탕화면에 도날드 덕이 해군복을 입고 있어 사용한 단어였다. 슬픈 오리는 인터넷상의 또 다른 내가 되었다. 주로 카운터 컬쳐(counter culture)라는 문화비평 사이트에서 활동했는데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받거나 질문에 특별히 답변하고 싶지 않을 때면 ’꽥꽥‘이라고 적어버렸다. 내가 펼치는 논리들이 그들의 코드에 맞았는지 그 행동은 자연스럽게 인정되었다.  

 모든 것을 바싹 익혀 부셔버릴 것만 같은 6월이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기숙사로 돌아와 컴퓨터와 선풍기를 켜고 옷을 갈아입었다. 자판기 커피를 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우스를 손에 쥐었다. 카메라 관련 동호회를 살펴보고는 카운터 컬쳐로 들어갔다. 새벽에 작성한 ‘<클락 워크 오렌지>와 <풀 메탈 자켓>사이의 연관성’이라는 글에는 네댓 개의 답변이 달려있었다. 그중 종이풍선이라는 아이디가 너무 감상적으로 동의하고 있어 ‘꽥꽥’이라고 적어놓았다. 그날 저녁, 룸메이트들과 야식을 시켜 먹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야 이 개자식아.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그것도 네가.” 수화기 속에서 다짜고짜 욕이 튀어 나왔다. 격앙된 여성의 목소리였다. “예?” 어안이 벙벙해져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허둥대며 나도 모르게 어떤 실수 한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여성이 종이풍선인 듯 했다. 그녀는 감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말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떫은 감을 씹은 표정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며 어떻게 내 휴대폰 번호를 알아냈는지 생각했다. 그것이 은경과의 첫 만남이었다. 어떻게 번호를 알아냈는지 물어보자 은경은 당황해 하며 전화를 끊었다. 홧김에 일단 전화부터 한 것 같았다. 이후 이런 종류의 주체할 수 없는 정열로 인해 나는 자주 당황했고 곧 은경의 매력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처음에야 스토커 같은 모습에 섬뜩함을 느꼈지만 오프라인 모임 때 설명을 들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경은 나보다 한 살 연상으로 C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마음에 와 닿는 글을 보게 되면 곰곰이 되새기며 그 향을 느끼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은경은 이 과정을 되새김질이라고 표현했다. 카운터 컬쳐에서 내가 선택한 영화들, 그리고 그 감흥에 대한 해설이 자신이 느꼈던 것과 많은 부분 공통분모가 있어 관심을 가지고 봐왔다고 했다. 하지만 내 글을 천천히 되새김질 해 보면 향이 올라오지 않고 쓴 맛이 느껴지는 것이 감정을 철저히 해설하기 위해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단다. 조언 해줄까 하면서도 상처받지 않을까해 많은 고심 끝에 작성한 답변이었는데 내가 한 마디로 잘라버렸다는 것이었다. ‘꽥꽥’이라는 말을 본 순간 그녀는 모니터를 붙잡고 흔들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자존심이 상했다고 했다.  며칠 뒤 은경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E대앞,빵에서오프모임합니다.꼭참석하세요.’

 바닥이 울릴 정도로 음악이 세차게 흘러나왔다. 알록달록한 조명 아래로 인디 밴드가 퍼포먼스를 하자 사람들은 저마다 흐느적거리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시삽이 클럽 ‘빵’ 주인과 절친한 사이이기에 정기모임을 이곳에서 주최한다고 했다. ‘기성문화에 카운터펀치를 날리자-카운터 컬쳐!’라는 작은 현수막 아래, 무대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은 테이블에 모여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댔다. 록을 한다던 사람들이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 “우리는 패잔병이야.”라고 소리치며 맥주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은경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테이블 구석진 자리에서 파란 맥주병을 손에 들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현란한 조명이 멈추고 인디 밴드가 퀸의 <위 아 더 챔피언>을 펑키로 편곡해 연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두 손을 들고 좌우로 흔들었다. 누군가 라이터를 켜자 그 불빛은 삽시간 사람들 사이로 번져갔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뭉쳐진 담배연기가 그들의 출구 없는 열망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치명적인 담배연기도 투명해져 대기로 흡수될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 일 없이 살아가고 다시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 담배를 피워대겠지? 왠지 모를 그윽한 슬픔이 밀려왔다. 은색 투피스에 얇게 하얀 마스카라를 칠한 여자가 들어왔다. 특이한 차림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덧붙여 그녀는 걸음걸이도 야무졌다. 음악에 파묻혀 하이힐 소리가 또각또각 들리지 않았지만 힘차게 도장을 찍듯 계단을 내려왔다. 그녀는 테이블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듯 인사를 건네고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은경이었다. 너무 바싹 붙어 앉아 의자를 옆으로 끌어 거리를 두었다. 은경은 나를 유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생긴 건 샌님이네.” 나는 그녀의 이미지에 압도되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서로 말없이 무대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다 내가 꺼낸 이야기는 고작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아냈는지 였다. 은경은 양 미간 모으더니 담배를 꺼내 물고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겉 담배였지만 충분히 눈이 따가워 눈살을 찌푸렸다. “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 일단 네 이름은 회원 정보로 알았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은경과 나는 무대를 쳐다보았다. 인디 밴드의 리드보컬이 샴페인 병을 터트려 그의 사타구니 쪽에 놓고 사람들을 향해 미친 듯이 뿌려대고 있었다. 은경은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어느 새벽 웹 서핑을 하다 나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내가 십 육 미리 카메라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음을 알고 카메라 관련 대형 사이트의 중고장터에 내 이름을 입력해 보았다고 했다. 몇 번째 이었던가 내 이름이 검색되고 거기에 있던 휴대폰 번호를 적었다고 했다. “그거 알아? 너는 이모티콘을 사용하지 않고 말줄임표는 꼭 네 번 찍어. 그리고 ‘~네’로 끝나는 문장이 한 번은 들어가지. 나중에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알아 봤던 거야. 그리고 필요했잖아.”     

 그 후 은경은 나에게 자주 연락했다. 처음 압도된 이미지가 있어 그렇게 이성으로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방학이 되어 사람도 없는 나른한 오후, 기숙사에서 하품하는 것 보다 은경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기에 자주 만났다. 은경은 다행이도 수수한 평상복 차림으로 나왔다. “그런 자리에서는 쓸데없이 붙잡는 사람이 많거든. 그렇게 입고 화장을 해서 보이는 거지. 함부로 까불지 말라고.” 

 우리들은 만나면 주로 극장을 갔다. 노량진 쪽으로 올라가면 조그만 삼류 동시상영관이 있었다. 철지난 영화 두 편을 싸게 볼 수 있었다. 원래 한 편 보고 나가야 했지만 표를 검사하는 사람도 없었다. 학원을 가지 않은 학생들이나 마을 주민, 술 취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쉬어갔다. 적당히 지저분한 대합실에서는 텔레비전이 따분한 주일 오후임을 보여주었고 영사실에서는 기사들이 영사기를 돌려놓고 고스톱을 쳤다. 나는 두 편 다 보기를 원했고 은경은 한 편만 보고 나오기를 원했기에 우리는 그 문제로 자주 다투었다. 특히 외국영화 두 편이 상영되면 은경의 고집은 완강해졌다. 

 어느 날 이었던가. 보고 싶었던 영화였기에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은경은 아이와 같이 떼를 쓰는 나를 보다가 한 숨을 내쉬며 그럼 그러자고 했다. 그러고는 가방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내 눈. 내 눈 어디 갔지?” “눈?” “렌즈 말이야.” 어느 정도 둔했기에 은경이 렌즈를 낀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럼 조금 전 영화는 어떻게 본 거야?” “뭐 영화를 눈으로 보기만 하나.” 그렇게 말하고 은경은 말을 이었다. “내 눈이 네 개거든. 한 짝은 사물을 보는데 쓰이고 다른 한 짝은 보이지 않는 대신 못 보던 것들을 보게 만들더라. 그래서 가끔 한 짝만 달고 다니고는 해. 한국영화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는데 외국영화는 영어가 딸려서.” 은경은 쌜쭉 혀를 내밀었다. 그때서야 왜 그녀가 짙은 안개와 같은 눈빛을 짓곤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은경은 자막을 흐릿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웅얼거렸다. 되새김질이라도 하는 것이었을까? 그보다는 떼를 쓴 내가 미안해 할까봐 재미있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애처로웠다. 가슴이 미어져왔다. 그런데 왜. 그때. 곁눈질로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달력이 얹혀 졌을까. 이 순간이. 이 마음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는 무엇으로부터 그토록 도망치고 싶어 하던 것이었을까.      

     

4. 가을비 




 그때 가을비가 내렸잖아. 소소한 일상을 적셔버릴 듯 마른 대지 위로 부슬부슬 내렸잖아. 마음이 촉촉이 적셔져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라고 생각해. 그것이 진실이겠지. 지금도 가만히 눈을 감으면 문득 네가 떠오르곤 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귀 기울이던 네가 말이야. 이렇게 편지를 쓰면서도 어떻게 네게 보내야 할 지 모르겠어. 원래 내가 하는 짓이 좀 바보 같잖아. 언젠가 우리가 만날 것을 떠올리면 아이처럼 흥분 되네. 긴 세월 중 한 움큼. 광활한 세상에서 바로 여기. 수많은 사람들 중 우리. 거리를 걷거나,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서로 모른 체 스쳐 지나갈 지도 모르잖아. 무심코 시작되는 하루 중에서 말이야. 그런 설렘이 하루에 숨어있겠지? 말이 짧아서 더 이상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라면 잘 알텐데.... 

 

 2학기가 시작되며 은경은 휴학해야 했다. IMF 한파는 여전히 매서웠고 남동생이 군대 갈 때까지라는 조건으로 은경은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다. 최대한 빨리 졸업해 사회에서 경력을 쌓고 싶어 하는 것을 알기에 나는 은경에게 물어보았다. “기숙사에 들어가서 알바하면서 어떻게 안 되는 거야?” “자취하면서 야간 알바하는 게 더 도움되네. 그게 또 나한테 맞고. 그런데 지금은 어쩔 수 없어.” 은경이 말했다. 

 이삿짐 싸는 것을 도와주기위해 은경의 자취방에 들어가 보았다. 3평정도 좁은 방으로 단정히 정돈되어 있는 것이 혼자 사는 냄새를 물씬 풍겼다.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모두 택배로 붙일 것이기에 박스에 포장하면 되는 것이었다. 수월하게 일을 끝내고 박스를 방 한 구석에 쌓아두고 우리는 저녁으로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고량주를 시켜먹었다. 포장하지 않은 유일한 물건인 라디오를 창가에 놓고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면서 지난 시절, 기억들을 이야기 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두운 방에 누워있었다. 곁에서 은경이 뺨에 팔을 괴고 고른 숨을 내쉬며 자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술을 마시다가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잠든 듯 했다. 약하게 알코올과 고기 냄새가 났다. 다시 잠들려 했지만 정신이 차가워지며 맑아졌다. 고개를 돌려 은경을 바라보았다. 점점 어둠에 익숙해지며 윤곽이 뚜렷해 졌다. 가만히 은경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윤곽이 끊임없이 변했다. 은경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른 사람 같기도 하고 내 모습 같기도 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은경의 어깨를 감쌌다. 가느다란 실 위를 걷는 듯 떨렸다.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달력을 찢는 건 아니지? 달력을 찢는 건 아니지?...’ 그제야 나는 내 앞에 어떤 투명한 벽이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을 내밀어도 진심으로 내밀 수 없었던 것이다. 광활한 사막이 펼쳐지며 한 발짝 떼기도 두려워 졌다. 몹시 갑갑했다. 소리를 질렀지만 유리벽에 갇혀 공허하게 사라졌다. 유리벽이 서서히 나를 옥죄었다. 주먹으로 쳤지만 손만 아플 따름이었다. 숨이 찼다. 허둥대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은경의 목소리가 조용히 유리벽을 뚫고 들어왔다. 애초에 잠에서 깨어 있었나보다.

 “내가 왜 너한테 관심을 가졌는지 알아? 네 어디에 낙인이 찍혀 있는지 궁금했었어. 내 눈에 낙인이 찍힌 것처럼 말이야. 낙인찍힌 사람은 그 특유의 냄새를 풍길 수밖에 없거든. 이 넓은 세상에서 같은 존재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잖아?” “내 낙인은 어디에 찍혔는데?” “그걸 아직 모르겠어. 그것 때문에 너도 힘들어하고 있는 거 아니야? 좀 더 만나봐야겠네.”

 그렇게 말하고 은경은 큭큭 웃었다. 그리고 바로 우리의 혀가 엉켰다. 나를 둘러싼 유리벽이 산산이 부서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광활한 사막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진심으로 손을 내밀어 아무렇지도 않게 유리벽을 뚫고 들어온 은경을 쓰다듬었다. 손이 아랫도리로 향하려고 하자 은경은 단호하게 손목을 낚아챘다. “그래도 안돼.” 적막하고 고요한 순간이었다. 창밖으로 동이 터오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리는 도중 부서지는 듯 이따금씩 유리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곧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 안에 가득 찼다. 손목을 잡고 있는 은경의 손에서 점점 힘이 빠져갔다. 




5. 1999년 12월 31일




 은경이 올라오기로 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초저녁이 되기도 전인데 거리는 온통 북새통을 이루었다. 버스가 멈춰 움직이지 않아 지하철로 갈아탔다. 역에 도착하니 은경이 핸드백 하나 달랑 메고 있었다.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남대문을 지나 을지로를 거쳐 종로로 걸어갔다. 집에 얽매여서인지 얼굴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은경은 팔짱을 끼며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 역시 입대 문제로 휴학을 한 상태였다.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종로에 도착하니 광화문 사거리의 십이 차선을 경찰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평소에는 걷지 못했던 대로를 자유롭게 활보했다. 새로운 세기의 도래를 축하하며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고 인조 눈이 뿌려졌다. 가판대를 지고 솜사탕과 가면과 폭죽을 팔았다. 자욱이 깔리는 어둠을 네온사인이 밀어냈다. 사람들이 넘쳐났다. 모두들 웃고 있었다. “우리 어디로 갈까?” 특유의 짙은 눈빛을 하고 스웨터에 목을 파묻으며 은경은 대답했다. “그냥 사람들 가는 데로 따라가자. 지금은 마냥 걷고 싶어.”       

 종로 오가에 이르러 길 한편에 고속버스가 있었다. ‘정동진 당일치기 4만원’이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우리 정동진 갔다 오자.” 은경이 내 팔을 끌며 말했다. 운전기사에게 가서 물어보니 한 시에 출발한다고 했다. 밖에서 보니 버스 안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혼자였다. 술에 취한 듯 잠들어 있던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람이 모두 차지 않을 분위기여서 잠시 후 오기로 하고 다시 광화문 사거리로 향했다. 

 대형 전광판 주변으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모두들 벅찬 설레임을 품고 자정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웃음소리와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하철 입구 쪽에서 휴가를 나온 군인과 애인인 듯한 여자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둘의 표정은 심각했다. 군인이 소리치기 시작했고 애인인 듯한 여자가 울먹이다가 획하니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군인의 눈도 충혈되어 있었다.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담배를 물다가 집어던지고 애인의 뒤를 쫒아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내 곁에 꼭 기대어있는 은경의 무게를 느끼고자 바싹 끌어당겼다. 무슨 일인가 하여 은경은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모두들 목청껏 숫자를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모든 열망이 그 외침에 들어있었다. 새로운 세기의 새해가 밝자 폭죽이 터지고 온갖 색상지가 퍼지며 재야의 종소리가 경건하게 울렸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샴페인이 터졌고 연인들은 키스를 했고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았다. “이제 갈까?” 나는 은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버스는 한 시가 조금 넘어 출발했다. 좌석의 삼분의 일 정도만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그중, 연인은 우리 밖에 없었다. 은경은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계속 갔으면 좋겠어. 운전기사도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영원히. 기름이 떨어지면 주유소에 들려 기름을 넣고 휴게소에 들려 먹을 것을 사면서 계속 가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은경은 잠든 듯 아무 말 없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 군인과 애인인 여자를 떠올렸다. 무슨 일 때문에 그들은 싸웠을까? 다시 만났을까? 화해했을까? 언제쯤 나는 유리벽을 산산이 부셔버릴 수 있을까? 낙인찍힌 곳이 어디냐고? 그건 가슴이야. 한 번 멍이 들어 계속 아프다보니 익숙해져서 이제는 아프지 않으면 스스로 아프게 해. 그런 상황을 만들어 버리는 거야. 

 창밖으로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유리창에는 은경과 내 모습이 되비쳐져 있었다. 찢어버린 달력 조각들을 모두 모아 다시 짜 맞추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두터운 유리벽이 되어 나를 짓누를 지라도.

          

                           (200*62) 
추천스크랩소스보기 목록
orion80 2019-11-18 00:00:52
답글

설마 고딩때 글은 아니겠죠?

김일영 2019-11-18 09:02:40

    대딩때 예요.
그나마 마음에 드는 소설들입니다.

orion80 2019-11-18 17:16:30

    어떻게 하면 이리 글을 잘 쓰게 되나요?

난 죽다 다시 살아나도 어렵겠죠?

김일영 2019-11-18 18:54:08

    격려 감사합니다. 힘이 나네요.
요즘 직장에서 시험을 당해 힘이 드는데 봉희님 글이 위안이 됩니다.

글쓰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들과 격을 맞추기 위해 힘써 썼는데 지금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서 그때처럼 글을 노력하며 쓸 수 있을런지 왠지 두렵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orion80 2019-11-18 22:56:56

    다시 컴백은 안 되나요?

꿈을 버리지 마소서.

전 여기서 진심으로 대하는 분들이 여럿 계시는데 일영님도 그 중에 한분이십니다.

가끔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만큼 제가 편하게 생각한다는 표현이니..

그리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일영 2019-11-19 06:34:49

    봉희님이 아니였으면 제 글은 아무런 응답없이 홀로 외롭게 있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 광고문의 결제관련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