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이 행복했다 생각됩니다.
영하의 날씨에 스피커 받겠다고 시외버스 터미널에 대기하며,
입밖으로 허연 김 내뿜으며 삭풍에 몸은 덜덜 떨리는데,
그래도 곧 듣게 될 음악소리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이고 뜨거웠습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더니,
이 소리 저 소리 들어보는 재미에 빠져,
다른거 거의 신경 안쓰고 10 여 년을 쭉 달렸습니다.
그동안 거쳐간 앰프나 스피커를 차에 싣는다면,
아마도 1.5톤 용달 한트럭은 채울 겁니다.
거쳐간 기기들이 대부분 초 중급 기기들이었는데,
하이엔드급을 접해보지 못했던건,
제 경제적 배경과 주거공간의 영향이 크죠.
호화롭고 고급져보이는 기기를 보면,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용솟음쳤지만,
내 능력밖의 일은,
빨리 포기할수록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같이 터득했지요 ㅎ ㅎ
큰 산이고 작은 산이고 산을 오르다보면,
그 과정에,
온갖 이름모를 꽃들도 보고,
새들의 울음소리와 계곡의 물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막상 정상에 올라보면 뭐 엄청난게 있던가요?
그저 큰 산을 오른 사람은, 큰 산을 오른만큼의 뿌듯함이 있는거고,
작은 산을 오른 사람은, 작은 산을 오른 만큼의 뿌듯함이 있는게지요.
정상에 오르면 뭔가 엄청난게 있을거야..
실제 그런게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거쳐온 과정들이 힘들고, 가슴이 설레고, 심장이 가쁘게 뛰었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오디오에 빠져들어 10 여 년이 지난 오늘..
이제는 가슴이 설레이지도 않고 심장이 가쁘게 뛰지도 않습니다.
그냥 편안합니다.
하긴 이게 정상이겠지요.. 지금까지 계속 심장이 가쁘게 뛰면..
아마도 심장이 터져 죽겠지요 ㅎ ㅎ
그러고보니 닮은게 또 있군요.
제 나이 23 세 때..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났습니다.
만날때마다 참 가슴 설레고 심장이 바쁘게 뛰었습니다.
그러던것이.. 40 여 년 가까이 동거하다보니,
이젠 더 이상 가슴이 설레이지도 않고 심장이 바쁘게 뛰지도 않습니다.
그저 오랜 친구처럼 마음이 편안합니다.
지금껏 오디오는 수시로 바꿈질을 해왔는데,
그래도 아내만큼은 한번도 바꾸지 않은게, 얼마나 천만다행인지 모릅니다.
매일 맛난 반찬과 따뜻한 밥을 챙겨주니 말이죠.
더구나 황금같던 젊은시절..
잘난놈 다 팽개치고 내게로 와 온갖 고생을 하며,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울고 웃으며 함께 했던 그 아름다운 추억은,
내가 죽을때까지 평생 내 가슴속에 살아 숨쉴테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