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만추(晩秋)의 계절이다.
세상의 섭리 만큼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군더더기를 떨구어내는 순환법칙의 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을은 미래를 위한 성찰(省察)의 계절이기도 하고
새 봄에 피어날 꽃과 이파리를 위한 준비단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생명유지를 위한 물길이 끊어지기 시작하는 가을이 되면
생물은 스스로 물길을 막고 길고 긴 동면에 들어가야 하고
북풍한설이 몰아치고 까마귀 우는 길고 긴 겨울밤을 지새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진보진영은 바로 그 가을과 같은 심정일지도 모른다.
아니, 깊어가는 만추의 한복판에 서 있다고 봐야 한다.
봄과 여름에 열심히 농사를 지었다고 자평하지만
정작 들판에 남은 곡식은 쭉정이만 가득하다.
바구니 가득한 열매를 딸 것이라고 땀을 흘렸지만
이미 나무는 진작부터 누렇게 탈색해 가고
자연섭리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스스로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깊고 긴 잠을 위한 시간과 공간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겨울이 우리에게 묻는 날이 있으리라.
여름에 무엇을 했었느냐고....."(체코슬라비아 속담)
핑계는 차고 넘친다.
또 얼마든지 이유를 끌어 댈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농사를 짓는 농부가 질 수밖에 없다.
이 혼탁하고 복잡무비한 세상,
그나마 우리의 호프라고 믿었던 조국마저 수렁에 빠져 버렸다.
또한 3류에도 턱걸이가 안되는 한국 정치에
그나마 맑고 시원한 물길을 터주던 이철희와 표창원은
내년 들판에서 낫과 호미를 던져버린다고 한다.
물론 누구인가는 농사를 지을 거다.
아무리 자갈밭이건 진흙밭이건
농부는 이유불문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농사를 누가 지을 것인지가 문제이다.
요즘 농장주는 힘들고 지쳐 보인다.
천성적으로 사슴의 눈을 가졌으나
시간이 갈수록 동공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애초에 목표했던 과정과 결과가 자꾸만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농삿꾼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은 운명(運命)의 굴레에 갖힌 사람이다.
자신의 자서전 운명(運命)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외길로 갈 수밖에 없는 천명(天命)이었던 것이다.
그는 쓰레기 가득한 황폐지를 갈아엎고
돌멩이와 폐기물을 골라내고 싶었다.
그리고 오염된 토양을 개토(改土)하여
싱싱하고 영양가 높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옥토(沃土)로 개량하고 싶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분배를 해주고 싶었다.
또한 일방적인 물길을 세분화 하여
모든 농삿꾼들이 훌륭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옥토(沃土)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가슴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틀려먹었다고 비난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탐욕과 이기가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어도 그의 탓이고
비가 와도 그의 탓이다.
씨앗을 뿌린 농작물에 온갖 해충들이 갉아 먹어도
그 해충들을 방제하는 것도 시비의 대상이 된다.
상대방 농사가 망해버려야
상대적으로 이익을 건지는 건너편 농장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가을......!
과정이 어떻건 수확은 해야 한다.
나름 알찬 수확도 있었지만 쭉정이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 쭉정이 결과에 대한 분석과 성찰(省察)이 뒤따라야 한다.
세상은 음(陰)과 양(陽)으로 구성된 것과 같이
언제나 상대는 존재하고
그 상대는 우리와 같은 세상에 사는 이웃들 이라는 점이다.
또한 우리가 아무리 옳은 길이라고 외쳐도
상대는 다른 길이 옳다고 할 수도 있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세상이고,
또한 수천, 수만년을 이어 온 인간들의 다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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