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이 바다가없는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자라다보니,
바다는 그 이름만 들어도,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이 담긴 단어가 되었습니다.
머리털나고 바다를 처음 본 것이,
국민학교 6학년 수학여행때 월미도 앞바다 입니다.
바다를 처음 봤을때,
해변에서 커다란 소라를 삶아파는 아지매들의 모습도 당연히 처음 본건데,
그 풍경이 참 싱그러웠고,
속이 빈 소라를 귀에 갖다대면, 파도소리가 들리는 경험도 처음 해봤습니다.
첫느낌이 좋아서인지, 기회가 되면 늘 바다를 가보고싶어 했습니다.
다소 늦은 휴가이긴하지만,
어차피 해수욕장은 가지않을거고 비성수기를 이용하면 소란스럽지도 않아,
우리만의 호젓한 분위기를 즐기기엔 더 좋겠다는 기대를 하며,
아내와 2박3일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이들이 어릴때 가족여행을 간적은 두 세 번 있었지만,
이렇게 아내와 단둘이 여행을 해보는건 수 십 년 만에 처음입니다.
평소와 달리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오르고, 아이처럼 들뜬 아내의 모습을 보니,
저리 좋아하는데, 왜 진작에 이런 여행을 하지못했을까.. 마음이 짠했습니다.
이번 여행의 계획은,
탁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일상에서의 탈출과 해방감을 느끼고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식도락가인 아내의 기호에 맞춰,
자주 맛볼수 없는 음식을 맛보게 하는 것이 주안점이기도 했습니다.
부산에 가면 밀면을 꼭 먹어보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6. 25사변 이후 피난내려온 실향민들이,
고향의 맛을 잊지못해 모밀냉면을 만들어 먹으려했는데,
모밀이 귀한 부산이다보니,
밀가루로 면을 만들어먹게 된 것이 밀면의 유래라는데,
뭐 아무튼 그래서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밀면이 부산의 대표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명한건 맞는듯 합니다.
골목마다 밀면파는 곳이 한 두 집은 꼭 있더군요.
어느집이 더 맛있게하는지 알수가 없어서,
그냥 발길가는데로 부산역 건너편 골목에 자리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가격이 참 착합니다.
大 5,000 원
小 4,000 원
배가 많이 고프지않아, 각각 비빔과 물로 小를 주문했는데,
배가 많이 고프지않음에도 제 기준에선 맛이 있더군요.
아내도 맛있게 먹었다고 얘기하는거 보면, 평균이상의 맛은 되는듯 합니다.
태종대 유람선을 탔습니다.
부산에 사는 분들은 이런 풍경을 자주 접하니 별 감흥이 없겠지만,
어쩌다 한번 접하는 사람에겐 참 시원하고 재미가 있습니다.
배에서 내려,
해변에 위치한 상가로 들어가 전복버터구이와 새우구이를 주문했습니다.
한참 맛나게 먹고있는데,
난데없는 방역차가 등장하더니,
오픈된 가게안으로, 앞이 보이지않을정도로 자욱한 연무를 뿜고 지나가는데,
음식을 먹고있던 가게안의 관광객들이 콜록콜록!
그 연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음식에까지 뿌려졌으니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더 황당한건 이 방역차가 해변 구석까지 갔다가 돌아나오더니,
다시 또 한번 가게안으로 진한 연무를 방사하는군요.
이런 행위를 부산시관계자는 알고 있는건지..
어떻게 음식을 먹고있는 관광객을 향해 무차별 살포를 할수가 있는건지..
부산시의 행정은 지금도 이해가 안됩니다.
장소를 옮겨 자갈치시장에 도착했습니다.
근처에 숙소를 잡고 샤워를 한뒤 주변관광을 하는데,
곰장어구이와, 두 집 건너 하나씩 있는 양곱창집,
일일히 종류를 다 헤아릴수도 없는 수많은 해물을 볼수 있었지만,
방역차가 내뿜는 연무를 맡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해물냄새때문에 그런건지 확실하지 않지만,
아내와 저는 속이 미슥거려 아무것도 먹을수 없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그냥 그렇게 하루가 갔습니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하려고 모텔밖으로 나왔는데,
제가 사는 지역에서는 흔히 보는 콩나물해장국집이,
남포동에서는 골목을 헤집고 다녀봐도 단 한 곳도 찾을수가 없더군요.
바다에서 고사리찾는다고 헤메이는 나를 보는듯하여,
그래.. 내가 잘못했네..
결국 땀 한바가지만 흘리고 눈앞에 보이는 나주곰탕집으로 향했습니다ㅋ
식사후,
다시 자갈치로 돌아가,
어젯밤에 눈여겨봤던 크루즈유람선에 승선을 했습니다.
태종대에서 승선했던 통통배와 달리 선실내부엔 밴드도 있고,
섹소폰을 멋지게 부는 여성진행자도 있고,
배가 출발하니 남성진행자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웁니다.
노래하고싶은 사람은 나와서 노래를 하라고 하는데,
노래좋아하는 몆 몆 관광객들이 목청도 좋게 잘도 부르더군요.
저는 안했습니다.
음치여서..ㅋ
오후스케쥴은 그 유명하다는 부평깡통시장 먹거리골목과 국제시장을 둘러보고,
사전에 약속을 한,
부산사는 후배와 저녁식사를 하는것으로 일정을 마치는거였는데,
열대야는 사라진거같지만 그래도 아직은 여름끝자락이라,
한참 뜨거운 오후 3-4 시에 베낭을 메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니,
다리도 아프고, 땀도 흐르고 슬슬 지칩니다.
그래도 내가 언제 이곳을 다시 오겠나싶어,
수행자가 고행하듯 묵묵히 걷고 또 걷습니다.
비빔당면, 매운떡볶이, 씨앗호떡, 불타는 초밥 등 온갖 종류의 먹거리가,
인산인해의 사람숫자만큼이나 많더군요.
이 날 본 음식이,
지금껏 60 여 년을 살아오며 봤던 음식의 갯수보다 더 많습니다ㅋ
전날 둘러봤던 곳 중에서,
제일 눈여겨본 곳은 바로 고래고기 파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평생 한번도 맛보지못한 고래고기는 과연 어떤 맛일까?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죠.
오늘 맛보지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않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사진에 보이는 옥이집고래고기를 가기전에, 노점에서 팥빙수파는 아지매가 있습니다.
이 노점에 마실을 온듯한 아지매가 입담이 좋기에,
제가 팥빙수를 먹으며 물어봤습니다.
"혹시 고래고기 먹어보셨어요?"
"어릴때 먹어봤지요."
"제가 한번도 안먹어봐서 그러는데요..
먹어보면 알겠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물어보는데요.. 어떤맛이 나요?"
"고래고기맛이예요~"
헐! 아지매의 우문현답에,
정답입니다! 하면서 크게 웃고 말았지만,
여전히 궁금해서라도 꼭 맛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후 5 시에 만나기로한 후배가 자갈치시장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기대하고 또 기대했던 고래고기를 주문해봤습니다.
헉~ 생각했던것보다 정말 양이 작습니다.
맛이 궁금하여 시킨거라 일부러 小를 시켰는데,
접시가 사진에 보이는것보다 더 작습니다.
같이 주문한 곰장어소금구이와 같이 먹으니 맛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지만,
5 만 원 짜리로 보기엔 양이 너무 작습니다.
고래포획이 금지되어, 그물에 걸려죽은 고기만 유통된다더니,
그래서 그런지 귀한 몸값을 자랑하는군요.
맛은 소머리고기와 비슷한데, 유분이 많아 쫀득하며 고소한 맛이 나더군요.
제 입에는 잘맞았지만,
아내의 식성에는 고래고기와 곰장어소금구이가 맞지않는지,
한 점씩 맛보더니 젓가락을 놓아버리네요.
맛이 없느냐고 물으니,
배가불러 안먹는다는데,
아무래도 그래보이지는 않아,
주인아지매에게 부탁하여,
아내가 좋아하는 생선모듬 소금구이를 옆가게에서 공수해왔습니다.
생선킬러답게 혼자 생선구이를 맛나게 다먹더군요ㅋ
얼굴에 화색이 도는걸보니, 안시켜줬으면 얼마나 서운해했을까..
안도의 한숨을 내리쉬었습니다 ㅎ ㅎ
후배가 나와준게 고마워,
헤어지기전 자갈치시장으로 들어가 전복 1kg을 사서 손에 들려주고,
다음날 기차를 타기위해 부산역 근처에 숙소를 정했는데,
눈을 감았는가싶었는데 눈을 뜨니 바로 아침이더군요ㅋ
이렇게 2박3일의 짧은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아내에게,
이번여행 어땠나요?
물으니,
큰소리로 좋았어요!~ 하기에,
마음속으로 저 자신에게,
"참 잘했어요~" 라는
도장을 꾹 눌러주었습니다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