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받은 일을 끝내고 오늘은 농원을 둘러 봅니다.
머리 위의 하늘은 푸른데, 저 멀리 자굴산 정상이 흐릿한 게 그다지 좋은 공기는 아닌 듯 합니다.
기온으로 따지면 거의 여름날씨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덥지만,
그래도 바람이 선선하고 그늘 아래 서늘한 기운은 아직은 '봄이야!'를 주장합니다.
간혹 지나다니는 자동차 타이어 마찰음만 들리고,
동네에서는 사람의 흔적이라곤 보기가 드뭅니다.
처음 귀농할 때 같이 지게를 지고 다녔던 할아버지들은 모두 돌아가시고
홀로 된 할머니들은 목소리를 줄였습니다.
떠날 사람은 남겨질 사람을 걱정하고,
남겨질 사람은 떠날 사람을 안타까워 한다.
며칠 전 암 선고를 받고 수술마저 어렵다고 퇴원하신 아랫집 할아버지는
오늘도 홀로 남겨질 할머니를 위해 지게를 메고 땔감을 나른다.
살 만큼 살았으니 이대로 살다 가도 그 뿐이라는 할아버지 마음에는
홀로 남을 할머니에 대한 걱정이 태산이다.
병을 알기 전에 그렇게도 잔소리를 하던 할머니는
오늘 하루종일 농원을 다니면서 아직 제대로 싹도 나지않은 민들레를 캐고 있다.
약 조차 받지 못한 할아버지가 안타까워
할머니는 그나마 쉬운 민들레를 캔다.
도망가지 않을 민들레고, 캐지 못하게 막지도 않을 민들렌데
할머니는 마치 그 속에 방법이라도 있는 양
구부러진 허리로 캐고 또 캔다.
그해 봄.
병원으로 웃으면 가신 할아버지는
한 달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대나무를 잘라 만들어준 덕을 무시하고 사방팔방으로 뻗은 오미자는 달콤한 향기를 진하게 내뿜으며 벌들을 유인하는데, 벌들의 관심은 다른 데 있는 모양입니다.
덥지만,
땀도 나지만,
선선한 왕벚나무 아래 누워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흔적에 절로 눈을 감습니다.
때 늦은 벚꽃이 드문드문 보이지만,
벌들에게 버려진 지워질 벚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