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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전경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8-04-20 15:32:54
추천수 4
조회수   1,685

제목

동네 전경

글쓴이

서정진 [가입일자 : 2006-03-02]
내용
부탁받은 일을 끝내고 오늘은 농원을 둘러 봅니다.
머리 위의 하늘은 푸른데, 저 멀리 자굴산 정상이 흐릿한 게 그다지 좋은 공기는 아닌 듯 합니다. 
기온으로 따지면 거의 여름날씨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덥지만,
그래도 바람이 선선하고 그늘 아래 서늘한 기운은 아직은 '봄이야!'를 주장합니다.

간혹 지나다니는 자동차 타이어 마찰음만 들리고, 
동네에서는 사람의 흔적이라곤 보기가 드뭅니다. 
처음 귀농할 때 같이 지게를 지고 다녔던 할아버지들은 모두 돌아가시고
홀로 된 할머니들은 목소리를 줄였습니다.
 



떠날 사람은 남겨질 사람을 걱정하고,

남겨질 사람은 떠날 사람을 안타까워 한다.

 

며칠 전 암 선고를 받고 수술마저 어렵다고 퇴원하신 아랫집 할아버지는

오늘도 홀로 남겨질 할머니를 위해 지게를 메고 땔감을 나른다.

살 만큼 살았으니 이대로 살다 가도 그 뿐이라는 할아버지 마음에는

홀로 남을 할머니에 대한 걱정이 태산이다.

 

병을 알기 전에 그렇게도 잔소리를 하던 할머니는

오늘 하루종일 농원을 다니면서 아직 제대로 싹도 나지않은 민들레를 캐고 있다.

약 조차 받지 못한 할아버지가 안타까워

할머니는 그나마 쉬운 민들레를 캔다.

도망가지 않을 민들레고, 캐지 못하게 막지도 않을 민들렌데

할머니는 마치 그 속에 방법이라도 있는 양

구부러진 허리로 캐고 또 캔다.

그해 봄.
병원으로 웃으면 가신 할아버지는
한 달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대나무를 잘라 만들어준 덕을 무시하고 사방팔방으로 뻗은 오미자는 달콤한 향기를 진하게 내뿜으며 벌들을 유인하는데, 벌들의 관심은 다른 데 있는 모양입니다.


덥지만,
땀도 나지만,
선선한 왕벚나무 아래 누워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의 흔적에 절로 눈을 감습니다.
때 늦은 벚꽃이 드문드문 보이지만,
벌들에게 버려진 지워질 벚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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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수 2018-04-20 15:38:23
답글

변기통 똥물 내려가는 글을 읽다가 이런 보석같은 글을 마주하면 , 또 한 번 반성하게 됩니다

어릴적 우리시골 주변 산들은 올리신 그림처럼 숲이 울창하진 않았드랬죠 .. 학교가는 길옆에

봄이면 입술이 퍼렇게 물들도록 오디 따먹던 뽕나무들도 많았고 마을 신작로길 나가던 길양쪽

까치둥지 여기저기 얹혀있던 키높은 미루나무 ... 나즈막한 뒷산 너머엔 사과밭이 있었던 기억^^;;

서정진 2018-04-20 17:06:29

    좋은 글은 천천히 읽으시고, 똥글은 흘려버리세요. ^^

조영석 2018-04-20 20:47:45

    정말 아스라하게 ...
그런 적 있었지요..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

염일진 2018-04-20 20:33:18
답글

봄이 되어 꽃은 또 피건만
떠나간 자들은 오지를 않으니.....

조영석 2018-04-20 20:46:25

    일진 을쉰 매일 오시면서 그래요...

일진 을쉰이 아닌가...

서정진 2018-04-20 21:14:13

    자연의 섭리임에도 가끔 멍하니 앉아계신 할머니들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무슨 생각을 저리도 하실까?'

박진수 2018-04-20 20:52:25
답글

저는 벗들이랑 개구지게 놀았던 기억이 아련 하네요..

오늘도 정진 을쉰이 그린 풍경화로 눈이 호강 합니다.

서정진 2018-04-20 21:12:33

    헉!
을쉰 아니고 아직도 순애보에 가슴저림을 느끼는 청춘인데.... ^^;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상규 2018-04-20 22:14:44
답글

오, 이런 평범하면서도 가슴속 아련한 추억들을 되새기게 해주는 글, 좋습니다. 사람냄새 나는 글 감사합니다.

서정진 2018-04-20 23:24:00

    저도 감사합니다. ^^

이수영 2018-04-21 07:43:58
답글

자연에서 살면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되나봅니다

글을 잘 쓰시네요... ㅎ

서정진 2018-04-21 09:33:37

    말을 많이 않으니 단어를 많이 잊어버립니다.
저는 이것을 '사회적 능력의 퇴화'라고 스스로 이름지어 표현합니다.
가끔은 머릿속의 생각을 표현하는 단어를 기억해 내느라 애를 먹는 경우도 생깁니다.
글을 쓰는 이유가 치매 예방용이라는 게 숨겨진 이유라는 반전이 있습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

조재호 2018-04-21 08:25:45
답글

언제 한번 와싸다 정모를 가져보는게 어떨지요.. ^^

서정진 2018-04-21 09:35:55

    사람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나오면.....

그때를 위해 열심히 분발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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