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6일부터 3일간 아들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2년 전 10일 동안 전국을 돈 이후로 두번째입니다.
여행 단상을 올려 봅니다.
이하는 마지막 일정인 목포 이야기입니다.
2018/2/28(수)-비가 하루 종일 옴
1. 아침 늦잠. 일어나니 9시 경
2. 아침도 생략하고 유달산으로 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만 유달산을 올랐다. 우산이 하나 밖에 없어 아들은 차 속에 그대로 있기로.
3. 혼자 8각정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내려오던 중 이곳의 가수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의 기림비가 있었다. 기림비든 추모비든 그게 죽은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은 사람의 기림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안내 표지판일 것이다.
유달산을 돌아 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에서 "오방색의 어울림"-수시리와 관련은 없겠지만- 작품을 전시한다는 플랜카드를 봤다. 그리고 그 플랜카드 바로 있는 바로 조그만 찻집.
점심을 먹고, 미술관에서 오색을 관람하고, 찻집에서 차 한 잔하고 올라가자.
먼저 점심. 백반을 시켰는데 반찬이 12가지. 혼자 음식 만들고 혼자 서빙하는 주인아주머니. 정신이 없다.
가격은 8000원, 도합 16000원
서울에서 이 정도면 20000원 이상을 받았을 것이다.
여전히 비는 오고.
두 장정(?)은 식당에서 차로 뜀박질,
아들에게 하는 말.
미술관 생략. 찻집 직행.
미술관을 포기한 것은 경비 문제도 그렇지만-남는 돈은 아들에게 주기로 약속. 아들 알바까지 깨고 왔으니 알바비 정도는 남겨 주어야 함-, 오늘 올라가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비까지 오는데다 인천에 도착할 때쯤 되면 퇴근 차량과 뒤엉켜질 것 같아 먼저 출발하려고 잔머리를 굴린 결과다. 물론 예측된 작전 실패.
찻집-"다가올 자수갤러리 카페"-이 얼마나 정갈한지 말할 수 없다. 찻집이라기보다는 수공예 전시장처럼 보였다. 나는 짐짓 짐작해 본다. 이 주인장이 분명 손수 자수를 놨을 것이다.
차림표를 내 왔는데 전부 전통 차다.
주인장에게 넌지시 묻는다.
혹시 아메리카노 가능할까요?
그럼요
요 며칠 슈퍼 표 커피만 마셨더니 수제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었다.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면서 조용히 마시는 커피는 아련하다.
홀짝-훌쩍 아님-.
아들놈은 죽으나 사나 아이스 레몬티. 지겹지도 않나.
주방에서 스마트폰 질을 하고 있는 주인장-향년 65세 정도-에게 말을 건넨다.
목포에서 빼놓지 않고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요?
여기는 유달산 자락인데 일제시대에 일본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만든 곳입니다. 그래서 비교적 깨끗하고 한적한 편입니다. 바로 뒤에 시립 미술관이고, 우리 카페 바로 옆이 이성옥 사설 미술관(성옥문화재단)입니다. 갓 바위 쪽으로 가면 남농 미술관이 있습니다.
한 번 들려 보세요.
사실 아들놈하고 인천에서 전주로, 담양으로, 해남으로, 진도로 해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개학하기 전-아들놈 말고-에 이렇게 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저렇게 큰 아들-이번 2월 달에 대학 졸업한 갓 구워낸 백수-하고 같이 여행을 다닌다는 것에 대해 대단히 의아해 했다. 저렇게 큰 녀석이 아버지하고 같이 다닌다면 이건 바보 아니면 찐득이.
아들놈이 착한 것인지 아님 생각이 없는 것인지 같이 다니고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옆에 있던 40대 후반 아니면 50대 초반, 아무튼 어느 아주머니도 같이 거든다.
대단해요. 보기 좋아요. 쉽지 않는 모습이예요.
나는 조금 뻐기듯 어깨를 약간 으쓱거려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주인장은 자신의 원고-아마도 전통 차에 대한 원고인 듯-료 대신 받은 잡지책이 있다며 책 한 권을 나에게 주었다. 덤으로 목포시에서 발간한 목포 안내 책자를, 자신은 시에서 다시 얻을 수 있다며, 나에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창밖의 비와 이야기는 같이 익어갔다.
찻집 주인장과 슈퍼 아주머니와 마을의 주민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지 않고 그냥 오면 관광이다. 여행은 현지인과 친해지는 과정이다. 다시 만날 기약이 없더라도.
미술관에 가기 전에 전시되는 작품을 미리 알고 가면 좋다.
연주하는 곡을 미리 들어 보고 콘서트 장에 가면 좋다.
갈 곳에 대한 이야기책-인터넷 말고-을 미리 읽어보고 가면 좋다.
오면서 아들과 이야기 했다.
나중에는 다른 곳 말고, 목포만을 목적으로 다시 한 번 오자. 우리가 목포에 대해 모른 게 너무 많다. 그때는 오늘 받은 책을 다 읽고 오자.
그래요. 꼭 다시 와요.
아들놈은 어느새 늙은 애비에 동화되어 가나 보다.
아들. 고맙.
4. 아들놈하고 같이 여행을 다니는 이유.
-. 혼자 가는 것을 집 사람이 용납하지 않는다.
-. 혼자 다니기 심심하다.
-. 아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
-. 아버지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고 싶다.
-. 이렇게라도 해서 아들이 여행을 좋아하게 만든다.
-. 아들과 단둘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마도 전부 성공한 듯하다. 아들 생각은 다른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