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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을 맞아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8-03-01 12:16:03
추천수 0
조회수   1,420

제목

3.1절을 맞아

글쓴이

박헌규 [가입일자 : 2000-11-27]
내용
여러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자연스레 여러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별일 아닌 일도 별일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일에 대처하는 개인과 집단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 전체의 축소판입니다.
우둔하거나 정의롭거나 비겁하거나 소심하거나
무대포거나 사소한 요인 때문에 바보같은 결정을 해버리거나..

아,그래서 뻔히 보이는 부조리와 모순들이 쉽사리 고쳐지지 않고
말도 안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게 가능하구나 하고 깨닳게 됩니다
보다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 가운데 용기와 
지혜와 결단력과 희생정신을 보여주는 소수의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존경의 마음이 들고 정말 박수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더더욱 들게 되더군요.

우리 모두는 대개 그렇지 못하니까요.

오래전에 
중국동북부 여행을 갔을 때
시골 오지 동네 구석에 서있었던 
우리는 모르는 ..
중국인들이 조선인을 기리기 위해 세워줬던 기념물을 봤습니다.
중국으로서는 대단히 흔치 않은 그만큼 업적을 높이 샀던 인물이었던 거죠



항일명장 양세봉..

서봉(瑞鳳)/윤봉(允奉)은 그의 다른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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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 2018-03-01 12:31:37
답글

중국인들이 원래는 대국적인 면모와 대륙적인 기질을 가진 민족이지요. 근래와서 그 기질이 아주 많이 퇴색되었습니다만

김승수 2018-03-01 12:52:43
답글

쪽수와 땅 덩어리에 비해선 새가슴같고 , 시황제의 장기집권 계획이 어떻게 될런지 궁금ㅡㅡ;;

yws213@empal.com 2018-03-01 13:13:47
답글

신빈현 중심 시가에서 동쪽으로 20㎞를 더 가면 왕칭먼진(旺淸門鎭)이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6㎞ 정도 내려가면 오른쪽 야산에 양서봉(梁瑞鳳) 기념비가 있다. 이곳을 찾았을 때 먼저 중국동포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어디서 왔냐면서 말을 붙여왔다.

“이 석상은 원래 조선족 소학교에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소학교가 문을 닫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 동포들이 돈을 모아서 여기 땅을 사서 옮긴 것이죠. 이 양반 대단한 장군이었죠. ”

이들은 선양에 사는 중국 동포였다. 그 가운데 한 명은 폐쇄된 소학교의 교장이었단다.

남·북 모두 존경하는 양세봉 장군

양세봉은 평안북도 철산에서 가난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일찍 사망하고 가족과 함께 압록강을 넘어 신빈현으로 이주했다. 고된 소작농을 벗어나진 못했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1922년 독립단 대장 정창하 휘하의 지방 공작원으로 항일운동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해에 천마산대 독립군, 1923년에 광복군총영에 합류했다. 이후 참의부와 정의부의 무장대오에서 활동했고 3부 통합운동을 거쳐 1929년 12월 조선혁명당이 조선혁명군을 창설할 때 부사령이었다. 양세봉은 1932년 총사령이 됐고 영릉가전투, 흥경성전투 등에서 일본군과 만주국군을 격퇴해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일본군과 만주국군의 토벌공세는 강력했고 1933년부터 조선혁명군은 위축돼 갔다. 1934년 9월 양세봉은 전사했다. 39세였다. 양세봉의 호는 벽해이고 양서봉으로 불리기도 한다.

양세봉 이름 석 자를 제대로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한국인 학자가 펴낸 양세봉 전기는 《남만주 최후의 독립군 사령관 양세봉》(장세윤 저)으로 2016년 12월에야 나왔다.


1930년대의 무장투쟁은 일본군과 만주국군의 잔혹한 토벌에 밀려 1930년 중반 이후 하나씩 소멸해갔다. 동북항일연군마저 1940년 겨울 국경을 넘어 소련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동북항일연군의 일부는 북만주 등지에 남아 끝까지 저항했다. 그 중심인물이 바로 허형식이다. 이육사의 외당숙이고 《광야》에 나오는 ‘초인’이 바로 허형식이라는 학계의 주장도 있다. 허형식은 1942년 여름 만주국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헤이룽장성 쑤이화시에 허형식 희생지를 알려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조용범 2018-03-01 18:47:09
답글

나라의 독립을위해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며 이땅에 친일수구골통들이 퇴출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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