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그래도 한번씩 집중해서 보는 책이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인데요.
현재 1부부터 3권씩 6부까지 발행이 되어있습니다. 국내에서는 가시나무새로 알려진 콜린 매컬로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소설로 집필한 일생의 역작입니다. 개인적으로 읽다가 덮은 <로마인 이야기>와 달리 이야기가 매끄럽고 사료에 입각한 소설이라 재미도 있었으며 로마의 공화정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고(특히 현대 양원제에 대한 이해도 덩달아서..), 당대 로마와 주변 나라, 민족들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잘 알게해준 책이네요.
조한욱님의 추천사가 "시오노 나나미의 그릇된 로마사 해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읽어야 할 걸작이다." 입니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이 긴 소설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카이사르입니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나 독재관 술라에 대한 이야기는 카이사르 이전의 시대적 상황과 두 위대한 인물과 카이사르와의 관계, 영향, 그리고 로마 공화정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한 밑반찬이지 주인공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6부에서 카이사르가 죽고 완결시키고자 했으나 팬들의 성화로 7부까지 냈다고 하네요.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와 내전기를 바탕으로 한 5부를 이번 설 연휴에 읽고 동방과 아프리카 원정을 나서기 시작하는 6부를 읽고 있는데요. 카이사르의 군사적, 전략적 재능과 실제 전쟁에 사용한 전술, 무기, 전략 등을 생각하니 누가 이만한 군사적 기재를 갖추고 있을까 싶더군요(아울러 정무적, 외교적 능력이나 문학적인 능력까지....). 제가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 소설이나 역사서를 많이 읽다보니 삼국지나 초한지의 인물들이 떠오르더군요.
초한지는 진나라 말기에서 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한나라의 초기까지를 다루고 있으니 기원전 200년 이전의 이야기이고, 카이사르의 전쟁은 기원전 50년을 전후하여 있었고, 삼국지는 기원후 200년 전후의 긴이야기지만 개략적으로 200년 정도의 터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의 관심을 끄는 것은 카이사르의 군사적 능력, 로마보병의 전투력에 관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카이사르의 군사적 능력을 누구와 비교할만 한가에요. 초한지나 삼국지는 후대에 씌여진 소설이라 많은 전략가와 장군들은 있지만 당시 구사한 전술에 대해서는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화공, 수공, 매복, 기습, 공성무기, 가끔식 진법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지만 무협에 나올만한 것들이 섞여있기도 하고, 당시 병사들의 무기나 갑주상태, 기마전법 등은 후대에서 추정한 것들이 반영되어 과장된 부분도 있는 것 같아, 로마보병이나 기마병과 직접 비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본 카이사르의 가장 큰 장점은 정보력입니다. 어떤 전투든 간에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전투를 벌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폼페이우스처럼 수적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만 전투를 치루는 것도 아닙니다(오히려 카이사르는 대부분의 전투를 적은 병력으로 승리했었죠). 용병이나 이민족의 지원병으로 데려온 소수의 기병과 로마보병, 그리고 지형과 주변 민족의 부대까지 정보를 취합해서 가능한 최상의 전략을 내놓습니다.
또한 저돌적인 부분도 많습니다. 물론 정보를 통해 얻어진 판단이지만, 쉬운 전투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 적이 예측하지 못하는 부분으로 공격을 감행하고, 본인이 늘 자랑스러워하는 시민관(떡갈나무관)을 받은 예처럼 뒤로 물러나 있기만 하는 장군도 아닙니다.
그리고 또하나의 가장 큰 장점은 보좌관을 비롯해서 백인대장, 일반병사까지 신뢰가 두텁고 항상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보상에 인색하지 않아 늘 병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앞의 두가지 이유가 이 신뢰의 근간이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병력 피해를 최소화하며 먼저 전투에 나서고 또한 병사들을 아끼니 전쟁터에서 가장 함께하고 싶은 장군일 수 밖에 없겠죠.
카이사르 전략의 핵심은 땅파기입니다. 이건 로마군의 특성이기도 한데, 로마군이 숙영지를 만들면 난공불락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카이사르는 이 로마군의 능력을 극대화했다고 보면 됩니다. 방어도 그렇고 공성전략으로도 사용했는데, 갈리아 원정을 마무리 짓는 알레시아 공성전에서 성을 둘러싼 이중의 방벽을 만들어 수십만의 갈리아군과 대치하여 승리하였죠. 당시 갈리아군의 숫자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나, 불과 5~6만의 병력으로 오히려 성을 포위하는 이중 방벽을 치고(오로지 땅파기로...) 자기들보다 훨씬 만은 적을 물리친 것은 운이 아니라 그의 전술가적인 재능과 결단력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서 무기나 편제, 그리고 군사수 어느 것 하나 비슷한 것이 없는 당대 로마군과 중국 군대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 같습니다. 카이사르와 삼두정치를 이끌었던 크라수스가 원정에서 궁기병에게 철저하게 패했는데, 후에 귀갑대형으로 적의 화살을 완벽하게 막았다고 하나 중기병과 궁기병을 혼합해서 사용하는 전술에는 속수무책이었던 점도 있습니다(어디까지나 로마군은 보병이고, 기병은 용병으로 구성되어 기병에 취약했습니다). 반면 초한지나 삼국지에서는 여러 형태의 기병들이 그 수가 로마와 비교가 안되게 많고(그 숫자가 사실이라면요^^), 전술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었습니다. 군대 대 군대로 붙는다면 글쎄요... 같은 수라 하더라도 로마군이 주변 민족과 나라와 싸우는 것과는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죠. 만약 강성한 기마민족이나 기병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군대가 주변에 있었다면 로마군도 그걸 막기 위해 스스로 기병을 양성했거나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겁니다.
카이사르가 중국의 역사에서 카이사르 정도의 혈통으로 태어났다면 적어도 왕족의 혈통이니만큼 소국의 왕이거나 대국에서도 주요한 자리를 차지했을 겁니다. 그렇게 군대를 이끌었다면 누구와 비교할만 할까요?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조조입니다. 연의에서는 조조의 냉혹한 면이 부각되어 있긴 하나, 군사적인 재능이나 전략적인 면에서 비교할만 한 인물이고요(문학적인 부분이나 사람을 잘 쓰는 것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전략을 직접 생각해서 부하 장수들에게 전달하는 모습은 전략가적인 모습에서 제갈량이 떠오르긴 하지만 직접 전장에 섰다는 면에서는 조조와 더 가깝습니다. 특히 "주사위를 높이 던져라"라는 말처럼 카이사르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갔다는 점에서 조조와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로 더 유명한데,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을 마치고 다음 집정관을 위한 부재자출마를 원하자 원로원이 이를 거부하여 추방당할 처지가 되자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며 했던 말입니다. 던져졌다는 피동적인 것이고 던져라는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지로 후자의 버전이 책에 소개됩니다^^ 실제 카이사르가 했던 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네요)
카이사르가 전란의 혼돈속에서 소국 또는 태수로 직접 군대를 이끌었다면 객관적인 상황은 로마와 주변 정세와는 완전히 다르겠지만 그가 보여준 전략적인, 외교적인 면에서 가장 빠르게 일국을 이루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카이사르는 평생 로마 공화정의 일인자가 되고 싶어 했지 결코 왕이 되고자 하지는 않았습니다. 세계의 지배자인 로마의 일인자가 되는 것이 정적들을 모두 제거하고 왕에 오르는 것보다 훨씬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속박에서 소위 공화파들과 다투면서도 갈리아 원정을 마쳤는데, 동양적인 사고에서 같은 능력을 가진 카이사르라면 당연히 스스로 황제에 오르길 원했을 것입니다. 특히나 전란의 혼돈 속에 있는 카이사르라면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누구보다도 먼저 전국을 주도하는 세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고, 특유의 외교력으로(서로 앙숙인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묶어 삼두정치를 만들었었고, 폼페이우스에게 자기 딸을 주고 장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강력한 우군과 함께 했을 것입니다.
카이사르와 조조, 누가 우위에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시대와 공간을 같이 하진 않았지만 당대의 야심가가 함께 있을 때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한번쯤 해보는 즐거운 상상입니다.
p.s. 그렇다고 카이사르를 영웅으로 칭하지는 않습니다. 로마에게는 축복과 같은 영웅이겠지만, 주변 민족, 국가들에겐 그의 능력과 무관한 정복자일 뿐이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