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날 낳아 먹이고, 입히고, 키우고, 가르치는 은혜를 베풀면서 댓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자식이 성공하여 명예를 드높이고, 어머니가 베푼 은혜의 반에 반만큼이라도 갚는다면,
그 어머니에겐 더 이상 큰 기쁨이 없겠지요.
그러나 과연 이런 자식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자식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야,
불효를 저질렀다는 죄책감에 회한의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동서고금을 통털어 어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세대를 거치며 이러했슴을 알기에,
효도는 둘째치고 자기 자식이 남에게 손가락질이나 안당하고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고 살면,
다행이다 여길겁니다.
어머니의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죠.
이 말을 다시 되뇌어보면, 내 어머니에게서 받은 사랑을 내 자식사랑으로 갚아 나간다는 얘기가 됩니다.
불경에서 말하길,
어머니의 은혜는, 어머니를 업고 수미산을 억만번 오르내려도 다 갚지 못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자식이 아무리 잘하더라도 어머니의 은혜는 어차피 갚을수가 없습니다.
내가 성공하여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면 좋은거고,
그게 아니라면 그저 속이나 썩이지 않고 사고나 치지않으면 이 또한 효도의 한 방편이 되는거지요.
어머님이 돌아가시고나면 효자소리를 듣던 자식이라도 눈가에 눈물이 맺칩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못해드린것만 생각나기 때문이죠.
그러나 너무 슬퍼할거 없습니다.
내 어머니가 나에게 최선을 다하였듯이, 나 또한 내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삶을 살다보면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을때가 있습니다.
은혜를 입었다는건 내가 어려울때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가 됩니다.
은혜를 모르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니, 꼭 갚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가 내가 잘되어 효도받을 날을 기다려주지 않듯이,
내가 어려운 삶을 헤쳐나와 이제 막 사람행세를 할때가 되었지만,
그런데 그 은인이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두고두고 마음에 걸립니다.
진작에 갚았으면 좋을 일이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너무 마음 아파할거 없습니다.
비록 그 은인에게 은혜를 갚지 못했지만,
생판 남인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듯이,
나 또한 옛날 나처럼 어려운 형편에 처한 남을 도우면 됩니다.
은인에게 빚을 갚으면 두 사람만 행복하지만,
내가 남을 도와주고, 그 남이 또 남을 도와주고, 그 남이 또 남을 도와주면 여러사람이 행복해 집니다.
내 어머니가 댓가를 바라지 않고 나를 거두어 주었듯 내가 자식을 거두고,
생판 남인 사람이 나에게 댓가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었듯,
내가 또 남에게 댓가없이 은혜를 베풀고,
그 남이 또 남에게 댓가없이 은혜를 베풀고...
어제가 입춘이었다는데 지금 창밖을 보니,
영하 13도의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치며, 메마른 나뭇가지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아직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이 오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듯 합니다.
살을 에이는 저 겨울바람을 보고 있자니,
예전 겨울바람같았던 내 차가운 과거 시절이 떠오릅니다.
80 년 대 초.. 지금의 아내를 만나,
2 만 5 천 원 단칸 삭월세방에서 연탄아궁이위에 밥냄비를 얹어놓고,
석유곤로위에 된장찌게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거만 봐도 행복했었는데..
그 행복도 잠시,
다니던 직장 오너가 두달치 봉급을 떼먹고 튀는 바람에,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었지요.
직장이 금방 구해지지 않아,
돈이 없어 방세도 밀리고, 동네구멍가게에서 계란과 간장을 외상으로 사오고,
쌀도 이웃에서 됫박쌀을 꿔다 밥을 해먹었습니다.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는건 어림도 없었죠.
아무 반찬없이, 맨밥에 날계란 깨넣고 간장만 얹어 두 달 동안 밥을 비벼 먹었습니다.
이 무렵 아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인데,
잘먹이지 못하고 간장만 비벼먹게 했던게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직장을 구하려고 동분서주했지만 일자리가 금방 구해지지 않고,
담배를 피웠는데 돈이 없으니 담배마저 살수가 없어 스트레스가 쌓이더군요.
하여, 맨신문지를 찢어내어 말은다음 입에 물고 불을 붙여 빨아댕겨 봤습니다.
화악! 불길이 목구멍안으로 타고 들어오는데..
깜짝 놀라 후다닥 재떨이에 비벼끄고 밖으로 나왔더랬죠.
일자리를 알아본후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청자담배 한보루를 내밀더군요.
이게 뭐냐고하니,
쌀을 꿔줬던 이웃집 아즈매가 놀러왔다가, 재떨이에 있던 신문지 타다말은거 보고 저게 뭐냐고 묻더랍니다.
우리 신랑이 심심해서 장난한거라고 했더니,
슬그머니 나갔다 오더니 청자담배 한보루를 놓고 갔답니다..ㅠㅜ
이후 직장을 구하게 되어 꿔다먹은 쌀도 갚고 담배도 사다드렸지만,
나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그 시절에, 누가 그리 선뜻 선심을 베풀수 있었을까요..
여전히 바람이 차군요.
전에는 그동안 나에게 고맙게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릴 틈이 없었는데,
오늘 새삼스레 그 따뜻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그리운걸 보면...
이 겨울 유난히도 차가운 날씨탓만은 아닌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