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40대 초반이니 와싸다 회원님들 기준에는 주니어 중에 주니어 아닐까 싶습니다.
사적 감정을 털어놓을 커뮤니티도 없고 그냥 어린 놈이 감성 터져서 끄적인다고 생각하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저께 올해 77되신 큰 고모가 돌아가셨습니다.
저희 집안이 꼰대 기질이 심해서 잔소리에 일가견이 있는 어른들이 많으신데, 이 고모는 이 분야에서 원톱 내지 투톱에 들어가는 분이셨죠.
특히 저희 어머니가 이 고모한테 많이 당하고 사셨는데 (참고로 어머니는 집안 어른들이 모두 우러러보는 인격자 심), 저는 소속이 엄마 아들인지라 이 고모한테 항상 삐딱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그런 감정이 있었으니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솔직히 놀랍기는 해도 감정적으론 별 감정 없죠.
지방에 사는 사촌 누나네 가 상주여서 차로 내려가면서도 77이니까 좀 이른 나이에 가셨구나라던지 친지들이 많이 있는 서울에서 장례를 치뤘으면 편했을 텐데 라던지 좀 세속적인 생각을 하면서 갔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같이 모시고 간 분들 내려드리고 장례식장에 들어와서 호실을 찾으려고 모니터를 보는데, 희한하게 이름 옆에 영정사진까지 같이 나오는 시스템이더군요.
얼마전에 본 고모 사진을 발견하고 이제서야 울컥하더군요.
아….자주 뵙던 이 얼굴인데 이제 못보겠구나……
젊었을 땐 잔소리 쟁이 고모인데 고모도 나이 먹고 늙다 보니 후에는 그냥 잔병치레 하는 조용한 노인이었습니다.
인생 살면서 고모한테 고맙거나 미안할 일은 없지만 딱 하나 마음에 걸렸던게,
저희 큰애 낳을 때, 새벽에 낳고 소식 듣자마자 산후조리 해준다고 그날 아침 자로 병원으로 찾아오셨었죠.
고모의 조카 며느리가 불편해 할게 뻔하고, 저도 행여나 그 잔소리를 시전하실 까봐 어르고 달래서 돌려보냈는데, 생각해보니 잔소리 쟁이 고모의 큰 호의 였을 텐데 괜히 정색해서 돌려보낸게 아닌지 마음에 걸리더군요.
아버지……
고모께서는 일찍 이혼하시고 바로 밑 동생인 아버지에게 많이 의존하셨죠.
사촌누나 결혼식 때엔 아버지가 누나 손을 잡고 들어가셨죠.
아버지나 저나 동네에 한두 블럭 차이로 사는데 고모도 아무 연고가 없는 곳인 이 동네 인근에 집을 사서 말년까지 사셨으니 어쩌면 큰 일이 있을 때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남편 같은 동생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평생 침착한 양반이라 예상한대로 덤덤하신 것 같아 장례식장에서 ‘저 먼저 갈께요~’하고 왔는데, 8남매 대가족 중에 가장 먼저 생긴 일이라 속으로는 당혹감이실지 상실감이실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오늘은 안부전화를 못해봤네요.
올라와서 와이프와 이야기를 하니 와이프도 첫째 낳을 때 일을 첫번째로 꼽더군요.
가부장적인 사회와 시대에 일찍 혼자돼서 나름 고생하시며 사셨는데 그쪽 세상에선 평온하시길……
아들들이 대부분 그렇듯 저도 데면데면 무뚝뚝한 아들인데 앞으로 효도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