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에서 긁어 왔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주세요.
비난 말고 다른 견해를 피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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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철학의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키에르케고르는 "수평화"라는 개념을 그의 철학에 도입했다.
이를 사르트르는 순응주의라고 표현했지만 내 관점에서 볼 때는 수평화가 훨씬 더 직접적이고 직관적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을 설명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지금은 조금 약해졌지만 한 때 고교 졸업생 중 80%가 넘는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했다.
전 세계에 유래가 없는..
젊은이들은 예식장에서 인생에 가장 소중한 식을 기계적으로 거행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여자가 구찌를 사면 나도 구찌를 사야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200만원 하는 유모차를 사면 다른 엄마도 200만원짜리 유모차를 사야한다.
사진찍기가 유행하니 사진의 실력과 관계없이 너나없이 데세랄을 들고 다닌다.
이런 집단적 현상은 포이에르바하의 수평화 개념과 꼭 맞다.
한 사람이 줄을 서면 왜 줄을 섯는지 묻지 않고 같이 줄을 선다.
줄에서 이탈한 자는 아웃사이더가 된다.
그 범주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질투의 눈으로,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멸시의 눈으로 바라본다.
여기에 더하여 들뢰즈의 층이론을 갖다 붙이면 완벽한 설명이 된다.
수 없이 많은 층을 만들어 내 갈등을 일으킨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여자와 남자
1류대학, 2류대학, 3류대학
수도권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
좋은 쪽에 속하려는 인간의 속성이야 어디나 같겠지만 끼이지 못한 사람에 대한 멸시는 다른 곳보다 잔인하다.
분양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주지 않는다.
그들의 시각으로 보면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이다.
사회를 물과 기름으로 나눠 서로 반목과 질시로 가득하다.
우리는,대부분의 사람은 선량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이렇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슬쩍 면죄부를 준다.
우리 사회에 면죄부를 받아도 좋을 사람은 없다.
그들을 보고 침묵한 사람도 그들과 같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맞다.
"행동하지 않는 말은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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