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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적인 한국 현대사 책 발간 소식입니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7-10-13 12:02:25
추천수 12
조회수   2,305

제목

기념비적인 한국 현대사 책 발간 소식입니다.

글쓴이

박지순 [가입일자 : 2008-04-08]
내용
한국 현대사에서 기념비적인 책이 나왔습니다.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1948, 여순항쟁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여순반란"으로 각인되고 강요된 사건을 "여순항쟁"으로

정명(正名)한 책입니다. 여순항쟁만을 평생 집요하게 연구하고 파헤친 

주철희 박사라는 분이 썼습니다.

제주 4.3과 광주 5.18이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는 데도 수십 년

의 시간이 필요했지요. 이제는 "여순항쟁"이 새롭게 평가되고 해석

돼야 할 때라는 인식에서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1948, 여순항쟁의 역사"

가 나오게 됐네요.

한국 현대사의 전체 틀을 바꿔놓을 수 있는 저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사에 관심 있는 분들이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책 뒷 표지만 읽어도 "여순항쟁"이 왜 '여순반란'이 아니라 "여순항쟁"이 

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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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 2017-10-13 12:24:05
답글

역사는 승리자의 문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책입니다.

오희성 2017-10-13 12:29:26
답글

감사합니다. 교보에 아직 입고전이라 예약 걸어놨습니다.

박지순 2017-10-13 12:48:29
답글

'여순항쟁' 발발 1달 여 만에 대한민국 최고의 악법이라는 국가보안법이

급조돼 지금까지도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여순반란'으로 잘못 규정된 역사의 악령에서 지금이라도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1948, 여순항쟁의 역사'는 기념비적인

저술이라고 생각합니다.

soni800@naver.com 2017-10-13 13:37:10
답글

교과서에 어케 좀 들어 갔음 좋겠다.

일부라도..

부승헌 2017-10-13 13:39:42
답글

4.3학살에 반대해서 일어난 군부대의 봉기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 봉기한 사람들을 잡으려 죄없는 백성을 수천 죽였지요. 이승마니새끼.............

죽일너무새끼...........

박지순 2017-10-13 13:43:41
답글

부승현님 말씀처럼 무고하게 죽임당한 양민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분들만 1만 명에 이릅니다.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여순항쟁의 와중에 3만 명이 학살됐다는 결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박지순 2017-10-13 13:54:26
답글

http://www.hankookilbo.com/v/3bd18cb220f3480db6dbc1f46c0bd385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1948, 여순항쟁의 역사'를 소개한 한국일보 기사입니다.

부승헌 2017-10-13 13:57:23
답글

제주에도 여러 욕이 있는데 역사가 있는 욕이 있습니다.
"몽근놈"
"육짓놈"

몽근놈은 고려말 몽고의 치하에 들어가서 몽고넘들이 제주도민을 정말많이 못살게 했기 때문에 생긴 말이기도 하지만,
제가 예상컨데,

1374년 목호의난을 진압하기 위해 발생한 참극이 주효했을 것이라 봅니다.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최영장군이 2만5천이라는 대군을 끌고왔지만 그때 목호와 그 호의병들이 겨~~~우 3000남짓었다고 합니다. 왜 최영은 2만5천을 끌고 와서 3000의 목호와 전쟁하며 1달이상을 끌었을까요?

이성계가 요동정벌하러 갈때 동원된 군이 3만5천정도(5만정도라고도 하고...)인데 대국인 명을 치는데 데리고 간 병사들의 2/3수준을 데리고 3000 잡으러 갔다?

아마도, 목호와 몽고호의병들은 제주도민을 전면에 내세웠을것입니다. 뒤에서 칼로 협박하거나, 가족등을 볼모로 하여 고려군과 싸움을 시키는 것이죠. 그랬기 때문에 최영같은 영웅도 3000의 목호를 상대로 1개월이상 걸린 것이라 보여지는 것이죠.
결국 고려군 대 제주도민과 묵호의 싸움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제주도민이 약 3만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최영군대와 거의 1:1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때 제주도민도 어마어마하게 학살당했을 것이고 이에 따라, 몽고넘들을 더욱더 증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돌이켜 보면,100년동안 몽고인들이 제주도민을 못살게 굴기도 했지만 초기였을 것이고, 어쨌든 제주처자들과의 혼인이 이루어졌고, 말을 키우는 법도 가르치며 공동생활을 어느정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묵호의난 이전에는 몽고인과 그리 나쁜 관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결국은 목호의 난에서 몽고넘과 고려군에게 학살당했기 때문에 몽고넘이라면 치를 떨었고, 아직까지 "몽근넘"이라는 욕이 남아 있습니다.

soni800@naver.com 2017-10-13 14:03:30

    난 또 몽사마 형 얘긴 줄,,

부승헌 2017-10-13 14:09:41
답글

거기에,
"육짓넘"이 있는데...
이 욕은 일반인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육지사람 즉 본국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경멸할때 쓰는 말입니다.

"몽근넘"은 아무에게나 쓰는 욕이지만, "육짓넘"은 육지분(?)들에게만 친히 사용되어집니다.

이 것도 오래전부터 쓰여졌는데...

신라에의해 간섭받다 고려중순부터 고려에 귀속되었지요.

그러면서 고려관리들이 내려왔는데 이새끼들이 참 제주도민을 못살게 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목호의 난때 육짓넘들에 의한 학살, 그후에 고려때, 좃선때 귀양내려온 넘들의 지랄들......

참 약속국의 비애였죠.

그것도 모자라, 이승마니새끼와 미군정너무 새끼들이 1947년부터 54년까지 48년 4.3에 들고일어난 350명의 남로당새끼들 잡는다고 무고한 주민 무려 3만을 학살했습니다.

중산간을 태워서 윗쪽에 있는 사람은 영아까지 포함해서(학살된 주민중 6세이하 영유아, 60이상의 도민이 30%를 넘음) 무차별학살 했습니다.
국군과 미군정에서 초토화작전을 펼쳤습니다. 초토화란 사람사는 곳을 사람없는 풀밭과 땅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가요?

그당시 제주도민이 30만 전후였는데 3만이 학살당했으니, 열사람중 한사람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남로당새끼들 얼마 되지도 않았고(350~500), 오히려 도망다녀야 했기에 제주도민을 건들지 않았다고 하며, 결국은 이승만의 서북청년단이니 뭐니 하는 단체부터 미군정, 군부대 등을 동원해서 승마니새끼 권력장악을 위해 엉뚱한 제주도민을 학살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군조선부터 5000년간 우리역사에 자국민을 이리 처참하게 살해한 적이 없습니다. 제주민이 힘이없어 수십년 주장도 못하고, 김대중대통때 겨우 조사가 새로 시작되었고 노짱때 사과 비슷한거 받았습니다.

그러니 제주도민에게는 육짓넘은 찟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나쁜새끼로 보이는 것이죠.

부승헌 2017-10-13 14:15:16
답글

제 친구 아버지가 몇년전 90세 좀넘어 돌아가셨는데...

아버님의 말씀에 따르면, 어릴때 4.3학살사건 당시 길을 가다보면 집에까지 가는데 수십구의 시체를 건너야 했다고 했습니다.

여순사건도 이 제주도 학살에 참여하기 싫어서 군부대에서 시작한 것인데 누명씌워 토벌했죠. 여순사건도 재조사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주43학살사건도 진실을 밝혀 사과하고 보상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해야합니다.

이제는 제주도에도 육짓넘들이 수없이 내려와 살기 때문에 욕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습니다만, 아직도 제주민의 뼛속까지 남아 있습니다.

육짓넘이 육짓분들로 불리우는 사람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래보면서.................



예전에 김대중대통도 "43사건은 남노당의 폭동에 의해 발생된 사건이지만 그 과정에 무고한 시민이 피해를 봤다"정도로 얼버무렸는데 말안하니만 못했습니다.

차라리 말을 말지.................... 좀 깨어 있다는 양반들도 사상유래가 없는 43학살사건에 대한 인식이 이정도이니 관심없는 사람들은 말해 뭐하겠습니까.

또 열받네요.

박지순 2017-10-13 14:17:13
답글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군인들이 1948년 10월 19일 저녁 7시,

제주도민 학살을 명목으로 제주도 출동 명령을 받았지만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군대가 동포를 죽일 수 없다고 외치며 일으킨 봉기가

'여순항쟁'입니다.

제주 4.3을 논하면서 '여순항쟁'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역사 왜곡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왜곡된 역사를 이제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부승헌 2017-10-13 14:43:54
답글

여수순천봉기도 현재까지 남로당소속원들의 세뇌에 따른 봉기라고 하는데, 조작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당시 남로당총책도 모르고 있었다고 하니까요.

이때 이승마니새끼와 미군정의 빨갱이 프래임을 고착화 시키기 위해 수만의 자국민을 학살한 정말 천인공노할 사건입니다.

진실을 밝혀져야죠. 그리고는 책임자를 능지처참 해야 합니다.

일본넘들에게 일제의 만행을 사과하라면서, 우리가 저지는 배트남만행을 사과하지 않고, 더욱이 자국민에 가한 학살을 사과하지 않는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박지순 2017-10-13 14:51:26
답글

부승현님이 정말 중요한 말씀 하셨습니다.

여순항쟁을 빌미로 이승만 정권과 미국이 한반도에 '빨갱이 프레임'을 덧씌워

지금까지도 한국인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soni800@naver.com 2017-10-13 15:00:58
답글

아~ 승헌님 때문에 대충 알고 있던 4.3 사건을 좀 더 면밀히 알게 됐습니다.

지순님 한텐 죄송하지만 소개하신 책은 딴 분들이 더 필요할 것 같네요.

승헌님의 분노에 찬 글을 보니 책 한권이 머리에 싹 다 들어온 거 같아서요.

그래도 나중에 우리딸 한테 필요하긴 할 것 같은데..

진성기 2017-10-13 16:27:32
답글


제주도민인 오래 전 욱지놈들에게 짓밟힌 이유는 육지의 정권세력가들에겐 제주도민은 국민이라기 보다는 식민지인으로
보여졌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육지의 백성들도 핍박을 많이 받긴 햇지만 제주만큼은 아니죠.


미군정이 이승만을 자신들의 앞재비로 삼아 이승만의 정적들을 제거해주고 대통령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래서 이승만도 미 군정이 하던대로 빨갱이를 때려 잡자 가 주 모토 이기도 했지요.
미 군정이 우리나라 올때 우리나라에 대해 무지했고 식민지 노예로 생각하고 통치를 하려 했죠
이승만 역시 미군정 시키는 대로 국민이 아니라 식민지 노예로 국민을 바라보고 통치하려 했죠.
빨갱이 뿐 아니라 친일파와 붙어 먹는 자신의 정권에 반대하는 껄끄러운 이들을 소탕하고 싶은 생각으로 있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챤 스 다 하고는 전쟁을 빌미로 소위 불량 국민들을 청소할 생각을 실행에 옮깁니다.
일제 35년간 부역자 중 한명도 처헝한 사람은 없었지만
불과 3개월의 공산치하에서 그들에게 부역했다는 명목으로 수십만명을 학살 했습니다.,
마치 인종청소하듯 ..

근데 이승만 정권이 생긴 후 여순 항쟁분 아니라 43 이나 대구 사건등을 전후해 사상검증하던 김창룡에게
빨갱이로 지목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박정희
다른 선량한 국민들은 다 잡아 죽이던 이승만이 왜 정작 이놈은 왜 살려 줬을 까?
참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부승헌 2017-10-13 17:33:11

    백제, 신라, 고려시대는 그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시대때의 삼별초나 목호의 난 때의 자료도 거의 없고, 그냥 어느정도 합리적인 추측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조선 중반이후는 같은 민족임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43학살사건은 제주에서 발생한 이전의 사건들과는 완전히 다르죠. 학살하는 넘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한나라 한민족임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순항쟁에서도 그게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찌 동족을 학살 할 수 있는가?"라는........

진성기 2017-10-13 17:52:26
답글

43의 첫발단은 31운동 기념식이었죠
그 기념식에서 발생한 소동을 무자비 하게 탄압한건 미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주를 받은 서북청년단이엇고요

그러니 초기에는 같은 민족으로 보고 진압을 한건 아닐겁니다.
나중에 이승만정권이 들어서고도 미군정 하던대로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탄압하자 여순사건이 터진 것이고요.

부승헌 2017-10-14 09:29:42

    47년3월1일당시 발생한 사건에서, 미군정의 입장에서는 같은 민족으로 보지 않았겠지요.
미군은 당시에도 세계악의 축이었고 지금도 그러니까요.

그러나,

학살을 직접한 넘들은 서북청년단 등 이승만 똘마니였습니다. 이승마니새끼가 45년10월귀국해 매카더등을 만나 딸랑이를 자원했고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프램을 덮어씌웠으니까요.

그리고 직접 군을 투입해서 초토화 한 것은 미군정이 그들의 똘마니를 자청한 이승마니(그때는 정권잡기전)와 그졸개들이 48년43봉기를 계기로 군대까지를 투입해서 49년까지 무자비한 학살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43사건인 것이지요. 47년보다 48,49년에 학살당한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결국 학살을 행한 사람들이 한국인들이었고, 따라서 그들도 동포인걸 알면서 단지 빨갱이프램으로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입다.

그러니 미군넘들의 시각에서 식민지인들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직접학살에 가담한 그새끼들도 미군정의 시각으로 제주도민을 보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게 다른곳 즉 여순봉기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당시 예를 하나 더 들면,

가령 부모둘, 자식 둘인 4인가족이 있는 집안에 무턱대고 들어가서 4인이 모두 같이 있지 않고 한사람이라도 없으면 당시에 없는 사람이 빨갱짓하러 갔고 니들은 빨갱이 가족이다 하고 모두 다 죽였습니다.

그런 개새끼들이었습니다.

박지순 2017-10-14 11:36:40
답글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 1948, 여순항쟁의 역사"를

읽으면 제주 4.3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제주 4.3과 여순항쟁은 하나로 묶어서 바라봐야만 진실의 실체

를 잡을 수 있습니다.

부승헌 2017-10-14 13:03:05

    구입해서 읽어보야겠습니다.

좋은책 소개 감사합니다.

김봉길 2017-10-14 14:35:51
답글

나도 구입해서 읽어보야겠습니다. 나름 관련자료를 보긴 했지만 모두 단편적인 거라서...

soni800@naver.com 2017-10-14 15:07:25
답글

내가 먼저 사서 인증샷 올려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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