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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적인 한국 현대사 책 발간 소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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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3 12:0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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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도 여러 욕이 있는데 역사가 있는 욕이 있습니다.
"몽근놈"
"육짓놈"
몽근놈은 고려말 몽고의 치하에 들어가서 몽고넘들이 제주도민을 정말많이 못살게 했기 때문에 생긴 말이기도 하지만,
제가 예상컨데,
1374년 목호의난을 진압하기 위해 발생한 참극이 주효했을 것이라 봅니다.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최영장군이 2만5천이라는 대군을 끌고왔지만 그때 목호와 그 호의병들이 겨~~~우 3000남짓었다고 합니다. 왜 최영은 2만5천을 끌고 와서 3000의 목호와 전쟁하며 1달이상을 끌었을까요?
이성계가 요동정벌하러 갈때 동원된 군이 3만5천정도(5만정도라고도 하고...)인데 대국인 명을 치는데 데리고 간 병사들의 2/3수준을 데리고 3000 잡으러 갔다?
아마도, 목호와 몽고호의병들은 제주도민을 전면에 내세웠을것입니다. 뒤에서 칼로 협박하거나, 가족등을 볼모로 하여 고려군과 싸움을 시키는 것이죠. 그랬기 때문에 최영같은 영웅도 3000의 목호를 상대로 1개월이상 걸린 것이라 보여지는 것이죠.
결국 고려군 대 제주도민과 묵호의 싸움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제주도민이 약 3만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최영군대와 거의 1:1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때 제주도민도 어마어마하게 학살당했을 것이고 이에 따라, 몽고넘들을 더욱더 증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돌이켜 보면,100년동안 몽고인들이 제주도민을 못살게 굴기도 했지만 초기였을 것이고, 어쨌든 제주처자들과의 혼인이 이루어졌고, 말을 키우는 법도 가르치며 공동생활을 어느정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묵호의난 이전에는 몽고인과 그리 나쁜 관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결국은 목호의 난에서 몽고넘과 고려군에게 학살당했기 때문에 몽고넘이라면 치를 떨었고, 아직까지 "몽근넘"이라는 욕이 남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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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육짓넘"이 있는데...
이 욕은 일반인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육지사람 즉 본국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경멸할때 쓰는 말입니다.
"몽근넘"은 아무에게나 쓰는 욕이지만, "육짓넘"은 육지분(?)들에게만 친히 사용되어집니다.
이 것도 오래전부터 쓰여졌는데...
신라에의해 간섭받다 고려중순부터 고려에 귀속되었지요.
그러면서 고려관리들이 내려왔는데 이새끼들이 참 제주도민을 못살게 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목호의 난때 육짓넘들에 의한 학살, 그후에 고려때, 좃선때 귀양내려온 넘들의 지랄들......
참 약속국의 비애였죠.
그것도 모자라, 이승마니새끼와 미군정너무 새끼들이 1947년부터 54년까지 48년 4.3에 들고일어난 350명의 남로당새끼들 잡는다고 무고한 주민 무려 3만을 학살했습니다.
중산간을 태워서 윗쪽에 있는 사람은 영아까지 포함해서(학살된 주민중 6세이하 영유아, 60이상의 도민이 30%를 넘음) 무차별학살 했습니다.
국군과 미군정에서 초토화작전을 펼쳤습니다. 초토화란 사람사는 곳을 사람없는 풀밭과 땅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가요?
그당시 제주도민이 30만 전후였는데 3만이 학살당했으니, 열사람중 한사람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남로당새끼들 얼마 되지도 않았고(350~500), 오히려 도망다녀야 했기에 제주도민을 건들지 않았다고 하며, 결국은 이승만의 서북청년단이니 뭐니 하는 단체부터 미군정, 군부대 등을 동원해서 승마니새끼 권력장악을 위해 엉뚱한 제주도민을 학살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군조선부터 5000년간 우리역사에 자국민을 이리 처참하게 살해한 적이 없습니다. 제주민이 힘이없어 수십년 주장도 못하고, 김대중대통때 겨우 조사가 새로 시작되었고 노짱때 사과 비슷한거 받았습니다.
그러니 제주도민에게는 육짓넘은 찟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나쁜새끼로 보이는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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