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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선 이야기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7-09-28 20:57:48
추천수 10
조회수   2,399

제목

병원선 이야기

글쓴이

진성기 [가입일자 : 2005-12-05]
내용


좀 오래전 진짜 젊은 시절 병원선을 탔습니다.
34년 전 입니다.
당시 경남 도청 소속 병원선이 두척이 있었는데 두 배를 다 탔지요.
전 공보의 (군 복무 대신 무의촌 3년간 근무로 예비군이됩니다.)
로 첫 해 사량도란 섬에서 일년간 섬마을 선생님으로 지냈고
이듬해 통영군 도산이란 곳에 발령을 받았는데
그곳은 도산면 내에 병원이 없으니 말이 무의촌이지
병원이 있는 충무시 (지금의 통영시)까지는 자동차로 이십분 정도 거리여서
실제 병원 접근성으로 보면 무의촌이 아니더군요.

맨날 하는 일이 면장과 면 계장들 아침부터 보건지소에 와서 고스톱 치는 게 일과.
면 사무소 안에서는 눈치가 보이니 보건지소 환자 침대에서 고스톱을 칩니다.
맨날 고스톱만 치던 그들과는 전 상대가 안되더군요.
하기 싫어 몇번 말렸지만 막무가내  삼촌뻘 되는 사람들에게 ㅐ놓고 화를 내기도 그렇고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들
환자라야 면직원들 몸살나서오는 정도.
그러니 하루 두세명.

일년간 섬에서 고생했다고 무지 편한곳으로 배려 해줬다고
생색내긴하던데 난 그곳이 무지 싫었지요.
한달만에 병원선 1호 의사가 그만 둔다는 얘기 듣고 그곳으로 신청했습니다.

도청에서는 좋다구나하고 바로 발령.
내 전임의사는 공보의가 아니고 일반의사라 다루기도 쉽쟌고 봉급도 많으니
국방부 봉급만 주면 되는 내가 반가왔겟죠.
게다가 모두들 꺼리는 병원선에 공보의 발령 끝난 후라 다시 발령 내기도 그렇고
그래서 난감하던 차였으니
도청 보건과장은 공보의 중 병원선을 자원한 의사는 처음이라면서 좋아하더군요.

그때부터 일년간 병원선 1호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일년 후엔 2호로 지원해서 2호에서 일년 근무하고 제대했지요.


병원선1호는 배가  제법 큽니다.
내과계의사와 외과계의사 그리고 치과의사
간호사가 몇명 그욋 선원들 행정사무장까지
간단한 수술실도 있었고
정식 명칭은 경남 511 (잊어먹고 있었는데 오늘 사진 보고 알앗음 )
진해에서 출항하는 2호선은 512호

그 전에는 작은배로 운영하다 제가 가기 몇해전에 큰배로 바꾸면서 이름도
병원선으로 바꿨다고하더군요.
그 전 이름은 섬돌보기 1호
전 병원선보다 섬돌보기란 이름이 더 어울린다 느꼈습니다.

배는 항상 예전 통영 여객 터미널이 있었던 곳 근처에 정박합니다.
지금은 여객터미널이 다른곳으로 갔더군요.

그곳에서 출항하여 한산 욕지 그리고사량면의 부속섬과
남해도의 부속섬을 순회진료합니다.
면소재인 본섬은 보건지소가 있어 방문하지 않고요.
기억나는 삼들이 수우도 두미도 추도 봉도 납도 매물도
소매물도 갈도 국도 홍도
전라도 홍도가 아니고 경상도 홍도 알섬이라 불리는 섬입니다.
무인도이지만 등대지기가 네명 있어 그들을 위해 방문 하는 데
약품도 약품이지만 항상 소주를 한박스 배달 해줍니다.
당시 등대지기는 네명인데 항상 세명만 근무 합니다.
네명중 교대로 한명은 육지에 나가 봉급 수령하여 각 집에 전달해주고
한달 가량 집에서 쉬다가 한달분 식량을 싣고 등대로 돌아오면
다음 사람이
그 배 타고 육지로 나갑니다.
봄이 되면 근처 바다의 모든 갈매기가 모여서 이 섬의 절벽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풍경이 장관입니다.
 
츨항할 땐  바다를 은빛으로 반짝이게 하는 아침 햇살 가르며
통영 항을 벗어납니다.
항구를 벗어 나서도 한참을 달려야 수평선이 보입니다.
그만큼 많은 섬들이 주위에 가득

안개라도 끼는 날엔 코끼리 방구소리를 내면서 항구를 빠져나갑니다.
코끼리 방구는 커다란 풀무같은 것으로 나즈마한 부--웅 소리를 내어
배가 나간다는 신호를 다른 배에 알려줍니다.
정말 안개가 자욱하면 안개가 줄어들때까지 그냥 통영에서 대기하다 
때로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그날은 쉬는 날입니다.

이 섬들을 일년에 세번 정도 방문 했지 싶습니다.
그러니 섬 오지 마을에 실제적인  도움을 준 건지 으ㅟ문입니다.
장말 아픈 사람은 병원선 올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할거고
설사 운좋에 아플때 병원선이 섬마을에 왔다해도
어느 정도 도움을 줄수 있었을 지?
그냥 감기 몸살이 배탈 정도 .그나마도  진료가 아니라
그렇게 아플 때를 대비해서 미리 약을 상비해 두는 정도
좀 큰 마을엔 약국이 아닌 약종상이란 이름으로 약을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물론 약사는 아닙니다. 요즘 편의점 처럼 상비약품 정도를
판매 할 수있도록 허가 받은 곳이죠
때론 이들이 불법의료행위 까지 하여 보건소에서 단속하러가기도 했지만
대개는 알아도 눈감아 주고 있는 실정이었죠.
그 섬마을 사람들이 평상시 아프면 기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었으니까요.
이 약종상들이 병원선에 많이 오기도 했습니다.
감기 장염 등등 흔한 병의 증상을 얘기해서 약을 타서는 나중에
삼마을 사람들에게 그걸 판매하는 겁니다.

이 약종상들 중 어떤 이들은 치과치료를 합니다.
발치 같이 힘들고 돈 안되는것은 병원선에서 하라하고
이들은 보철과 교정을 하더군요.

사실 병원선에서 섬마을 사람들에게 더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건 
우리보다는 치과의사가 아니었을까?

지금 방송중인 드라마 병원선에 나오는 아름 다운 화가가 방문 한 적은 없었지만
대신 중년의 사진 작가겸 소설가인 조세희씨가 이틀 간 동승한적은 있습니다.

그 얼마 뒤 어느 여성 잡지에 그의 글이 실렷더군요
요지는 서울의 성형외과와 섬마을 병원선을 대비하여 의료의 편중을
얘기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대표적 소설인 난쏘공과 같은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 보는 듯한
30여년 전에도 우리나라가 과도한  성형이 문제시 되긴 했었나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근사한 숙소는 없엇지요
지금도 실제로 있는 지?
선원들은 대개 배 안에서 생활 합니다.
의사 침실도 있긴 했지만 전 충무시에 방을 얻고 지냈습니다.
나중에 2호선 근무 시엔 마산에 아파트얻어서 지냈고요.

배의 침실은 좁기도 햇지만 저녁 부터 배안은 갑갑합니다.
특히 2호 배의 침실은 높이가 낮아서 60 센티정도 ?
배가 나온 사람은 배가 닿을 듯
바람 많이 부는 날 항해시에 침실에 누워있으면 베가 흔들릴 때마다
아미가 위 칸막이에 헤딩합니다.
실제로 항해시에 부워 있진 암ㅎ습니다. 더 멀미 가 나는 듯해서

또 야간 정박 중 가게라도 가기위해 땅에 내리려면 배를 몇 칸 건너가야만 부두에 갈 수있어 불편하기도 했고
위험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 호 배 기관장은 저녁에 다른 선원들과  술마시다가 화장실 갈거라고 부두로 나가선
소식이 없었지요
일주일 쯤 뒤 진해 비료공장 앞바다에서 사체로 발견 되었습니다.
배와 배사이를 건너뛰다 바다에 빠진 듯
 
1 호선의 진료는 병원선안에 진료실이있어 배 안에서 진료를 합니다.
대부분의 섬마을에는 병원선이 접안할 만한 부두가 없어
병원선에 있는 조그만 보트로 환자를 실어 병원선으로 옮겨서 진료합니다.
이 보트는 진료 할 때가 아닐 때엔 우리들 낚시배가 되기도 하고
경관이 좋은 섬에서는 섬일주할 때 유람선으로 이용하기도 했지요
조그만 보트는 큰배가 접근하기 힘든 기암 절벽 이나 동굴 같은 곳까지 갈수있어
섬의 절경들을 잘 볼 수있어 좋았습니다.

1호산 모습들입니다.
이 사진에는 마을에 배가 접안할 만한 시설이 있네요.
























먼곳에 항해 나갈 때엔  통영으로 귀항하지 않고 근처에서 정박합니다.
이때엔 저도 배안에서 밤을 지냅니다.

진해에서 출항하는 2호선모습들입니다.









2호선은 진해 속천부두에 정박하여 가덕도 (당시는 부산시가 아니고 경남의창군 )부터
진해 만의 섬 몇개 와 거제도 본섬의 오지와 그 부속섬 을 순회진료합니다.
역시 일년에 세번 정도 방문 하게됩니다.




2호선은 예전 섬돌보기 라 불리던 시절의 배 그대로입니다.
1호선의 시분의일정도 크기
 


병원선이라 부르기엔 초라합니다.
작고 낡은 대신 마을 앞 까지 접근이 용이해서 마을 앞에 정박하고
악 상자와 의료기를 들고 마을에 가서 진료를 합니다.
마을 회관이 있는 마을에서는 회관에서 아님 학교 사실은 분교 가 있으면
교실에서
이도 저도 아니면 이장 집이나 그 마을에서 좀 큰 집에서 진료를 합니다.
1호선  보다 진료 환경은 열악하고 겨울에는 약 상자 들고 마을 까지 가는 것도 힘듭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과 더 잘 친해집니다.
마을 둘러 보면서 구경도 하고 뭐 얻어먹기도 하고
대부분 점심도 그 마을에서 해결해 줍니다.











2호선 도 잡안할만한 시설이 없는 작은 마을에는 진료팀이 작은 배에 옮겨타고 마을로 갑니다.
크기가 작은 2호선은 그리 크지 않는 풍랑에도 휘청거리고 멀밀ㄹ 합니다
때로 큰 파도를 만나면 배가 널뛰기를 합니다.
파도위에 올라가면 및; 전망대 오른 것처럼 높이 치솟았다 파도이 바닥에 가라 앉으면 사방이
물벽으로 가로 막힌듯  보여 바다에 갇힌 느낌
 남자들도 힘들었는 데 간호사들은 멀미 땜에 꽤나 고생했었습니다.
배에서 내려사 회 사먹으려 하는 데 힛집이름이 파도횟집이었습니다.
간판 보더니 아 또 멀미 난다 저 집엔 가기 싫어 !!









어느, 섬마을의 모습입니다.
1980년대인데 그 때까지도 초가집이 보입니다.
다른 집들은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집으로 보입니다.

진해 만의 섬에는 ㅣㄹ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진지들의 흔적들이 보입니다.
군항이었던 진해를 방어 하기 위한 방공진지로 보입니다.







당시 섬마을 아이들 모습들
저 아이들도 지금은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됐겠지요.




어느 가을 쯤 경남에 소속 된 선박의 전  승무원들의 교육과 시험이 있엇습니다.
선박의 구조 선박  운항법이나 통신법 선상 사고와 선박화재 예벙과 대처
이런 것들이었고 전 처음 교욱 받는 것이엇지만 근무하는 선원들은 이년에 한번 씩
치르는 시험이었는데 승진가 관계되어서인지 다들 심각하게 하더군요
처음에 병원선 의사는 교육받지 않아도 된다더니 며칠 전 의료진들 까지
교욱받고 시험 치라 해서 저도 이틀간 교육받앗죠
그리고 시험까지 쳤는 데 내가 타고 있던 2호선 선장이 만점으로 경남 전체 1등하여 표창받았습니다.
다음날 선원들 하는 얘기가 진선생님이 만점이었는데 도에서 상설근무자도 아닌 사람에게
1 등 표창을  줄수 없다고 대신 우리배 선장하고 점수를 바꿨다고 .
그래서인지 선장이 갑자기 내게 싹싹해졌던 느낌
그리고 그 뒤로 의료진은 교육에서 제외시켰다는 후문


가끔 항해 중 수협소속 배가 기를 흔들며 다가옵니다.
그 배는 불법 어로 단속하던 중
불법어로는 고데구리라 불리던 소형저인망 어선이나 허가된 기간이 아닐때 의 어업 
그리고 머구리라 불리던 불법 잠수어로행위 같은 것을 단속하는 데

머구리 배에 수협배가 근접하면 바다 밑에서 잠수 작업중이던  잠수부가 급하게 올라오게되어
잠수병에 갈릴 위험 도 있고
때로는 아주 급할 때엔 잠수부를 그대로 두고 공가 호스 절단 한채 달아나
단속 때문에 잠수부가 사망하는 일까지 있어 단속이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선 빌려 타고 그 불법어로 중인 배에 접근해서 단속하려고 병원선에 승선 합니다.
물론 선장은 태워 주긴 하지만 전
그 배들은 앞으로 병원선이 근처에 와도 도망 가겠구나 생각햇지요.


전 처음 일년 통영에 기항하는 1호선 타다 다음 해에는 진해에 기항 하는 2호선을 탔습니다.
더 열악한 2호 선으로 옮긴 이유는 뭐 별거 아니고
그냥 단순한 호기심때문입니다.
전라도나 충청도에도 병원선이 있지만
그 배로 갈 수는 없고 경남 소속인 섬은 다 돌아보자는 생각\
결국 호기심 때문에 더 고생을 하긴 햇지요

호기심은 인생을 힘들게 하는 게 맞긴 한가봅니다.
오디오 생활에서도 바꿈질의 원동력은 음악에 대한 열정 보다는 호기심때문일겁니다..
하지만 호김시은 인생을 디채롭게  만들어 주기도 하죠.

제가 처음 병원선을 지원한 가장 큰 이유는 근무 일수 때문이엇습니다.
한달에 보름 진료 나갑니다.
그리고 일년에 한달은 배 점검으로 쉽니다.
결국 일년에 165일 일하는 셈이니 반쯤은 쉬는 셈입니다.

지난 몇년간 보름 일하고 보름 쉬는 반백수였지요
여기 게시판에도 반백수라고 열심히 일하시는 회원님들 염장질하기도 했지요.
병원선 생활 마치고 여지껏 까지 직장을 19번 옮겼습니다.
옮길 때마다 한달정도 쉬엇지요.
이렇게 많이 옮긴 이유는 따로 있지만 어쩌면 이렇게 사이사이 놀려고 그랫는 지도 ㅎㅎ
어쨌던 평생을 일 조금 하다 직장옮기면서 한달 쉬고 하는 반백수로 지낸 세입니다.
그러다 지난 몇 년간은 진짜 반백수였고요
그러고 보면 저의 반백수생활은 그 역사가 오래도 된 셈입니다.

 
암튼 이런 이유로 병원선 지원을 햇고
일하는 날 외 약 열흘정도 (보름 사이에 일요일이 두번 정도 있고 날이 궂어서
출항 못하면 순연되기 때문에 연이어 쉬는 날은 열흘 정도 )는 산으로 가거나
혼자 여행을 다녔습니다. 당시는 해외 여행은 금지 된 터라 기차타고 버스타고 구석구석 돌아 댕겼죠.
당시 힝싱 가지고 다녔던 책이 시각표한 월간 잡지
잡지라기보다 전국 역과 항구 버스터미널 운행 시각료 모아둔것입니다.

그러니 한달 중 반은 바다로 반은 산으로 들로
참 좋은 시절이었네요.

일하는 날에는 거제 병원에서 알바를 했습니다.
육군 중위 봉급으로는 여행다니기 힘듭니다.
그래서 쉬는 날 돌아 댕길려면 알바를 해야죠.
 
고현에 있는 병원은 야간 응급실 당직 구하기 힘들었다가 제가 거의 일년간
붙박이로 당직을 하여 좋아라 했지요
저도 그 병원 당직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그 병원은 각과 과장님 사택이 병원뒤에 있어 제가 해결하기 힘든 문제는 언제든
콜이 가능해서 불안감도 덜어주고 또 과장님이 오셔서 해결하시는 거 보면서
많이 배웠지요.  

근처에 대형 조선소가 있었고 당시 그곳에서 30 분거리 지세포란 곳 외곽에
대규모 석유 비축 동굴 공사 중이라 대형사고도 몇번이나 있어 드라마에 나오는
응급환자 러쉬같은 풍경도 연출 하기도 했습니다.
때론 과장님도 해결하지 못하면 부산이나 마산으로 후송합니다.
같은 응급환자라도 우리나라 근로자 경우 앰블란스
(당시 앰블란스 참 후집니다.)로 삐뽀삐보 하면서 가지만
조선소 있던 외국 기술자 경우 바로 헬기가 뜹니다.
참 이건 병원선 얘기가 아니니 이정도로만

암튼 결혼 전이었고 여친도 없었던 서른이 아직 채 못된 젊은 청춘은 누구의 간섭도 없이
바다로 산으로 잘 돌아댕기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년 동안의 병원선 근무 마치고 수련하기 위해 부산으로 오고 난 후에도
바다에서 배타고 돌아댕기는 꿈 
물 반 고기반인 바다에서 낚시하는 꿈
산으로 들로 돌아댕기는 꿈을 참 오래동안 꾸었습니다.
꿈 꾸다 소란 스런 소리에  깨어나면 인턴 숙소
그리고 병실에서 날 부르는 벨소리


요즘 드라마 보다  옛생각이 나서 사진까지 찾아 스캔하며 회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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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i800@naver.com 2017-09-28 23:12:36
답글

저 병원선 하나도 안 변하고 우리집 앞을 지나는 거 가끔 봅니다.

어디를 둘러서 오는진 몰라도 우리나라가 그래도 의료 인프라는 그럭저럭 괜찮은가 보다.

요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몇척으로 운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생각은 못하고 있었고요.

한참 오래전 일이었으니 제가 쪼맨하던 시절 저 병원선을 바라봤을 때 성기 얼쉰은 벌써 국가에

봉사를 하고 계셨군요.

얼쉰의 글을 읽고 나니 저도 뭔가 국가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싶단 열망이 쏟구칩니다.

늘 뭔가 풀리면 하고싮다 이러고 있었는데 뭔가가 꼭 안 풀리더라도 하고자 하는 우지만 있다면

할수 있겠죠.

먼 미래에 내 딸을 위해서라도 그런 일은 꼭 하고 싶습니다.

황준승 2017-09-28 23:39:03
답글

제 친구 중 의사가 있어서 2005년도에 통영에 가서 병원선에 타 봤습니다.
병원선이 깨끗하기에 물어봤더니 그 해인가 그 전 해인가 기존 배가 낡아서 새 배로 교체 했다 합니다.
안에 들어가 봤더니 좁지 않고 침실도 답답하지 않았습니다.
출항 해서 섬으로 가는데, 많이 흔들리지도 않았고, 섬에 정박한 동안에는 선상에서 낚시도 했습니다.
선장님과 직원들이 밥 짓고 매운탕 끓이고 반찬을 내어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선장님은 어선 선장 같은 분위기였어요. 탕도 잘 끓이시고요.
병원선이 접안 하기 힘든 섬에는 모터보트를 내려서 주민들을 태워와서 진료 한다고 했어요.
사진에 보이는 목선이 아니라 세련된 레져용 보트였어요.

그 친구는 통영시 외곽 고개 너머에 관사가 따로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절반은 배 안에서 생활 하는게 편하다고 할 정도로 나름 쾌적하다고 했습니다.
그 전에는 배가 낡아서 고생스러웠다고 하네요.

거기서 1년 근무하고는 경상남도 내 원하는 지역으로 옮길 수 있다고 합니다.

soni800@naver.com 2017-09-28 23:43:21
답글

바꼈나요?

내나 저 배 아직도 돌아다니는 것 같던데?

요즘 스맛폰을 너무 마이 해서 눈이 좀 안 좋습니다.

이상길 2017-09-29 04:11:22
답글

병원선이야기 긴글 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며 잘 읽었습니다...

얼마전까지 아들녀석이 도서지방에서 공보의를 했었고 저 또한 오래전 결혼전에 선박생활 을 해서
오래전 추억들이 생각나게 하는 글이네요

그리고 선박생활후 직장을 옮기면서 서해5도의 대청도에 1년간 근무한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생각나네요

이민재 2017-09-29 04:58:55
답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배낭하나 달랑 메고(역마살이 끼었는지) 무작정 어디론지 떠나는 것을 좋아해서 무던히도 부모님 속을 썩혔습니다. 어느때는 하도 소식이 없어서 경찰서에 가출 신청까지 하셨더군요. 강원도 모처에서 낚시와 등산으로 밤낮없이 보내다 보니 나중에 서울에 오니 서울 시내 사람들이 동남아 사람으로 오인을 했던 적도 있고요.

손은효 2017-09-29 09:42:37
답글

길지만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진성기님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되었고...
귀촌의 여유를 더 행복하게 누리시길 바랍니다.

126.209.***.138 2017-09-29 11:03:06
답글

추억의 빛바랜 사진 덕분에 잠시 옛생각에 잠겼습니다.
한편의 수필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창욱 2017-09-29 12:40:00
답글

진선생님께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모르던 분야라 나름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

진성기 2017-09-29 13:55:44
답글

오래 된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저의 리즈시절이었죠.

정정훈 2017-09-29 13:59:03
답글

저는 병원선에 대한 얘기는 공중파 다큐 프로그램에서만 보았지 직접 들어 보기는 처음인것 같습니다^^
특히 빛바랜 사진들을 보니 얘기가 더욱 실감나는군요!
정성들인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이수영 2017-09-29 16:59:19
답글

재밌는 추억을 가지고 계시네요~

섬마을 처자들 가슴에 불을 지피고 다니셨겠네요 ㅎ

채경래 2017-09-29 17:31:55
답글

잔잔한 옛이야기글... 잘 읽었습니다.
병원선은 힘들어서 일부러 지원하기 어려운데..의미있게 잘 보내셨네요..

yhs253 2017-09-29 19:27:20
답글

느긋한 선비 같은 분이 의사샘 이었다니,,,
과연 훌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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